추락한 전북 현대 몰락한 수원 삼성…K리그 명가의 모습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K리그에서 왕조를 구가했던 두 명문 구단이 동반 추락하고 있다.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부진이 심상치 않다. 재계 서열 1·2위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라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후원하고 있음에도 운영비에서 한참 뒤처지는 팀들에 무너지는 모습이다. 전력상 약체인 언더독의 반란은 스포츠가 주는 가장 큰 재미지만, 두 팀의 부진은 반성할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승리 DNA 사라진 전북, 팬들과 갈등 심화로 관중 반 토막
전북은 4월29일 홈에서 열린 강원FC와의 K리그1 10라운드에서 종료 직전 양현준에게 실점하며 1대0으로 패했다. 올 시즌 여섯 번째 패배였다. 강원은 직전 9라운드에서야 시즌 첫 승을 기록할 정도로 올 시즌 흐름이 좋지 않았는데, 그런 강원에 전북은 홈에서 일격을 맞고 무너졌다. 사흘 전에는 2부 리그에서 승격한 대전 하나시티즌에도 같은 장소에서 1대2로 패했다. 당시 대전은 앞선 주말 경기에 나선 선발 라인업 멤버를 10명이나 바꾼 상황이었다.
5월4일 현재 3승1무6패로 승점 10점을 기록 중인 전북은 12개 팀 중 10위를 기록 중이다. 최근 3년간 전북은 리그 38경기에서 평균 6패를 기록했는데, 10경기 만에 1년치 패배를 기록했다. 최대 라이벌 울산뿐만 아니라 대구·포항·수원FC·대전·강원 등에게 차례로 무릎 꿇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전무후무한 K리그 5년 연속 우승을 달성한 포스는 온데간데없다.
FIFA 월드컵 후원을 비롯해 스포츠 마케팅을 통한 홍보에 열을 올리던 현대자동차는 2006년 전북 현대가 극적인 역전승을 거듭하며 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르자 축구단에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2010년대를 지배하며 무려 9회 우승에 성공했다. 전북 왕조를 이끈 최강희 감독이 2018 시즌을 끝으로 중국 무대로 떠나며 팀은 시험대에 올랐다. 포르투갈 출신의 조세 모라이스 감독이 후임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전북 특유의 공격 축구가 약해졌다는 지적 속에서도 모라이스 감독 체제 2년 동안 전북은 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1회에 성공하며 연착륙했다.
2021년 팀의 지휘봉을 잡은 이는 김상식 감독이었다. 2009년 이동국과 함께 이적해 와 전북을 강팀 반열에 올려놨고 2013년 은퇴 후에는 코치로 재직한 레전드다. 구단 역사상 첫 선수 출신 감독이었던 만큼 기대 속에 출발했고, 2021년 홍명보 감독이 부임한 울산과 치열한 경쟁 끝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22년에도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9년 연속 주요 대회 트로피를 들었다. 하지만 김상식 감독 체제의 전북은 경기 내용 면에서 꾸준히 지적을 받았다. 울산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스쿼드를 보유했지만 그에 걸맞게 상대를 압도하는 흐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불안감이 2023 시즌 터져 나왔다. 전북은 울산에 내준 리그 우승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겨울 동안 이동준, 하파 실바, 아마노 준, 정태욱, 김건웅, 안드레 루이스 등을 영입했다. 유럽 진출을 타진하던 조규성도 구단의 설득으로 타이밍을 여름으로 미루고 잔류했다. 스쿼드는 더 강해지고 두터워졌지만 고착화된 전술, 약한 압박 플레이, 세밀하지 못한 전개로 주도권을 내주는 양상이 늘어났다.
최근 K리그는 상대의 약점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자신들의 장점을 통해 그것을 공략하는 전술가 유형의 감독이 늘어났다. 홍명보(울산)·김기동(포항)·안익수(서울)·남기일(제주) 감독에 새롭게 이정효(광주)·이민성(대전) 감독이 1부 리그로 오며 역대급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데, 전북은 이 흐름에서 밀리고 말았다. 박지성 테크니컬 디렉터가 과거 첼시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로베르토 디마테오 감독을 기술고문으로 영입했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이나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구단 운영도 이전 같지 않다는 평이 나온다. 전북은 2015년 지방 구단의 한계를 뚫고 평균 관중 1만6000명을 넘어서며 전국구 클럽으로 올라섰다. 최강희 감독 시대에 펼치던 화끈한 공격 축구가 불러모은 팬과 더불어 구단은 경기장을 팀 컬러인 초록색으로 만들자는 캠페인을 펼쳤다. 유럽의 홈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후반에 수많은 역전극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허병길 대표이사 체제에서는 구단과 팬의 혼연일체는 사라진 모습이다. 팬들의 불만에 구단이 적극적으로 화답하지 않는 소통 부재가 길어지며 올 시즌 들어 응원 보이콧이 시작됐다. 구단은 팬들의 침묵에 앰프로 응원가를 트는 대응을 했는데, 오히려 이것이 팬들의 분노를 더 자극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응원은 사라지고 김상식 감독과 허병길 대표이사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만 울려 퍼졌고, 결국 김상식 감독은 5월4일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이미 강등 위기 겪은 수원, 시즌 1호 감독 경질에도 최하위
수원 삼성의 상황은 더 나쁘다. 5월4일 현재 10라운드까지 승리 없이 2무8패, 승점 2점으로 최하위다. 11위 강원과는 벌써 승점 8점 차다. 현재 상태대로면 수원은 다음 시즌 2부 리그인 K리그2로 강등된다. 7라운드 홈경기에서 제주에 2대3 역전패를 당한 후 이병근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올 시즌 K리그1, 2 통틀어 가장 먼저 사령탑을 내보냈다. K리그 팀 중 유일하게 감독을 조기 교체하는 초강수를 썼지만 부진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올 기미가 없다. 이병근 감독이 떠난 후 서울·포항·대구에 3연패를 당했다.
이미 지난해에도 수원은 위기를 겪었다. 박건하 감독 체제로 출발했지만 9라운드 만에 교체했다. 그렇게 지휘봉을 잡은 게 이병근 감독이었다. 결국 10위로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가게 된 수원은 홈에서 열린 2차전 연장에서 나온 오현규의 극적인 골에 힘입어 가까스로 잔류했다. 만 21세에 팀의 에이스가 된 오현규가 유럽 무대(셀틱)로 향하자 전방의 위력은 다시 약해졌고 올해는 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강등 위기까지 갔지만 팀이 크게 반성하고 대대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실망한 팬들을 위로할 반성의 목소리는 없었다. 오현규가 40억원가량의 이적료를 남겨주고 떠났지만 팬들이 기대한 대대적인 보강도 없었다. 성남에서 방출 위기에 있던 외국인 공격수 뮬리치를 영입하는 것으로 끝났다. 지난해부터 오현규에게 의존해온 골 결정력이 더 부족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음을 알면서도 소극적인 영입에 그쳤고, 그 결과는 현재 두 번째로 낮은 팀 득점력이다.
이병근 감독이 떠난 후에도 너무 느긋한 모습을 보였다. 보통 시즌 초반 경질을 선택하면 빠르게 감독 선임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최성용 감독대행 체제를 택하고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사이 수원은 태생적으로 리더십이 약할 수밖에 없는 감독대행 체제에서 허무한 3연패를 기록했다. 결국 팬들의 불만과 언론의 지적이 이어지자 감독 선임을 서둘렀고, 5월4일 김병수 전 강원 감독을 영입했다. 최근 5년 사이 3명의 감독이 평균 2년의 재임 기간도 채우지 못한 만큼 구단이 감독에게 확실한 권한을 주고 나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수원의 문제는 팀 내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삼성스포츠단 전체의 분위기가 패배의식이 커지는 중이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일등주의를 이식했던 삼성스포츠단은 2014년을 기점으로 운영주체가 제일기획으로 이관됐다. 여전히 삼성전자 등 그룹 주요 회사가 지원하고 있지만 우승을 해야 한다는 목표보다 생존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원뿐만 아니라 삼성 라이온즈(야구), 삼성화재(배구), 서울삼성(농구) 등 각 종목을 호령하던 구단들이 일제히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수원 팬들은 코칭 스태프, 선수단, 프런트에 대한 비판을 넘어 야망을 잃은 모기업에도 실망했다는 메시지를 표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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