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인물’은 ‘마녀사냥’처럼 환영받지 못할까?[엔터 톡]

안진용 기자 2023. 5. 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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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잃은 연출로 ‘공감대’ 형성 못해
대한민국 사회에 ‘性 담론’ 던진 것은 의미 커
넷플릭스 ‘성+인물’

10년 전 JTBC에서 ‘마녀사냥’이 방송됐습니다. TV에서 이례적으로 성(性) 담론을 자유롭게 펼치던 이 프로그램은 ‘19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곤 했죠.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분명 새로운 시도였고, 유사 프로그램도 등장하는 등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유 없이 금기시되던 성 담론의 물꼬를 텄죠.

그리고 10년이 흘러, 지난 4월 말 넷플릭스 ‘성+인물’이 공개됐는데요. ‘마녀사냥’을 잉태했던 정효민 PD가 연출하고, 핵심 출연진이었던 방송인 신동엽과 가수 성시경이 다시 참여해 기대가 높았죠.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은 ‘화제’보다는 ‘논란’에 가까웠는데요. 프로그램을 향한 비판을 넘어 신동엽이 진행하는 다른 프로그램의 하차를 요구하는 촌극까지 빚어졌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성+인물’은 일본편입니다. 6부작에 걸쳐 일본의 다양한 성문화를 다루죠. 하지만 대부분의 논란과 관심은 2부에 등장한 AV(Adult Video) 콘텐츠와 그 출연진에 쏠렸는데요. 최근 정 PD가 문화일보와 나눈 인터뷰에서 "일부 회차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쉽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여론과 언론이 AV 이야기에 집중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 왜 이런 논란이 불거졌는지 푸는 열쇠라 할 수 있는데요. 여기에 출연한 몇몇 AV 여배우들은 직업인으로서 AV 출연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며 자부심도 드러냈습니다. 그런 콘텐츠가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의 성적 대리 만족을 충족시켜 준다고 강조했고, AV 여배우들과 MC 간 수위 높은 대화도 오갔죠.

하지만 "이 산업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적잖은 AV 콘텐츠가 성 착취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1조 원 규모의 이 산업 이면에는 원치 않는 촬영과 유포로 피해를 보는 여성이 적지 않다는 실태 조사가 있기 때문인데요. 국제인권기구 휴먼라이츠나우(HRN)의 ‘일본 성인물 산업에서 나타나는 인권침해 보고서’(2016)는 "연예인이나 모델을 시켜주겠다는 말에 동의했다가 포르노에 출연하도록 강요되는 젊은 여성들의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고 문제를 제기했죠.

결국 ‘성+인물’은 균형을 잃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AV 여배우들은 "하기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다", "남자 배우가 멋대로 구는 일은 없다"고 이야기했는데요. 게다가 "AV가 성욕을 해소시켜 성범죄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검증되지 않은 발언까지 고스란히 노출됐죠.

이런 지적에 대해 정 PD는 "성인 산업의 명과 암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일부 암이 있다고 해서 이 분야를 전혀 다룰 수 없는 건가?’ 싶었다. 우리가 가치 판단을 하기보단 이 분야에서 한 길을 걸어왔고.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우리가 궁금해하는 가치 판단을 할 수 있지 않나 싶었다"고 해명했는데요. ‘성+인물’은 논란을 파헤쳐 실체적 진실을 좇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웃음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예능의 영역에 속하고, AV 산업 자체 보다는 이 산업에 종사하는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는 뜻이죠. 이는 ‘성+인물’이라는 제목에도 부합하는 설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작진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국적을 따져봤을 때 ‘성+인물’의 주된 소비층이 한국 시청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요. AV 산업을 불법으로 인식하고 있는 그들로부터 ‘어떻게 공감대를 이끌어 내느냐’가 프로그램의 성패를 가누는 기준이라 봤을 때, 그리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AV를 유포·판매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어둠의 경로’를 통해 암암리에 이를 시청하는 이들이 있다지만, 사회적 정서상 환영받는 행위라 볼 수는 없죠. 결국 ‘성인+물’ 인터뷰에 참여한 AV 배우들이 ‘자발적 참여’를 강조하더라도, 이런 문화에 익숙지 않은 한국 시청자들이 이를 정서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건데요. 그래서 더욱 더 명과 암을 동일하게 짚는 균형적인 시선이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겁니다.

정 PD는 "부모가 (AV배우 활동을)반대했다는 내용, 아이한테 (부모의)직업을 말하지 못했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암’을 완전히 배제하고 ‘명’만 다뤘다는 평가는 서운하다"고 항변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는 반응이 지배적인데요. MC의 입을 통해 "원치 않는 촬영과 성 착취를 당했다는 피해자도 있다" "이런 콘텐츠가 성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심어주기도 한다" 등 몇몇의 질문만 담겼어도 ‘성+인물’을 바라보는 여론과 언론의 시선은 달라졌을 것이란 아쉬움이 듭니다.

프로그램 속에서 오가는 대화의 수위만 높고 봤을 때, ‘성+인물’이 ‘마녀사냥’보다 세다가 볼 순 없는데요. ‘마녀사냥’은 여러 은유나 비유를 사용해 더 수위 높은 대화도 주고받았죠. 그런 신동엽의 ‘섹드립’에 성시경이 "이 형 미쳤나봐"라고 당황하는 모습도 여럿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장면을 대중이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수용할 만한 ‘공감대’가 형성된 대화였기 때문이죠. 감추며 ‘아닌 척’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나도 그렇다’는 암묵적 동의가 깔린 겁니다. 하지만 일본 AV 산업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그 산업 종사자들의 긍정 일변도 반응과 이를 비판없이 수용하는 MC의 모습은 대중의 공감을 얻기 어려웠던 거죠.

하지만 이런 논란을 차치하고, ‘성+인물’이 대한민국 사회에 커다란 성 담론을 던졌다는 것은 의미있습니다.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체면’ 문화가 강한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성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래서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성인물’ 콘텐츠조차 성인이 이를 보는 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곤 하죠. ‘성’을 무조건 ‘야하다’는 식으로 도식화하는 경직된 사고가 여전히 팽배한 탓입니다.

이에 대해 정 PD는 "성인이 누리는 장르들이 있다"면서 "음주와 흡연도 그렇다. 각 나라마다 그 기준이 다르다.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권마다 다양한 잣대가 있다. 이미 AV 제작과 유통을 합법화한 나라가 많다. 여성향 콘텐츠에 출연하는 남성 배우를 만난 이유도 ‘AV가 남자만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논의의 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1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정 PD의 기획의도를 듣다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대목이 많았는데요. 특히 "이 채널(넷플릭스)은 지상파처럼 누구나 볼 수 있는 채널이 아니다. OTT라는 플랫폼에서 유료로 시청할 수 있다. 그 안에서도 성인만 시청할 수 있다"는 설명이 와 닿았습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지 않는 이 콘텐츠를 전체 관람가 혹은 12∼15세 이상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지상파 콘텐츠를 바라보는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는데요. ‘성+인물’이 AV 논란에 매몰된 시선에서 벗어나려면 LGBT, 동성 결혼 등을 다루게 되는 대만편에서 보다 진일보한 시선을 담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작진이 일본편을 공개한 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기획의도를 이해시키려 노력했듯, 제작진 역시 일본편을 향한 질타와 문제제기를 전향적 시선으로 수용하고 성찰의 기회로 삼으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울러 ‘성+인물’의 진행자인 신동엽을 향한 과도한 비판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몇몇 네티즌은 그가 장기간 MC로 활약 중인 SBS ‘TV 동물농장’ 시청자 게시판에 하차를 요구하는 글을 올리고 있는데요. ‘성+인물’에 출연한 신동엽이 온 가족이 보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은 논거를 찾을 수 없는 일방적 외침일 뿐입니다. 또한 이런 일부의 비논리적인 주장을 마치 전체의 이야기마냥 과대 포장하는 언론의 취재 행태 역시 지양해야 마땅합니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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