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발언' 땐 참았지만… '녹취 의혹'까지 터지자 '손절' 분위기

조병욱 2023. 5. 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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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사에서 탈북민 첫 지역구 의원
“대한민국 만세” 외치며 與 최고위원
21대 총선, ‘태구민’으로 58.4% 득표
제주 4·3 발언 시발점, 정치적 위기
대통령실 공천 언급 의혹 녹취 파문
쪼개기 후원금·청년인턴 특혜채용 의혹
8일 윤리위, 정치적 돌파 가능할까

“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통일이 이뤄지는 순간까지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 대한민국 만세.”

지난 3월8일 이같은 수락연설을 하며 탈북민 최초 여당 최고위원에 오른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정치적 최대 위기를 맞았다. 제주 4·3사건 김일성 지시설 등으로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된 데 이어 대통령실의 공천 언급 의혹 발언 녹취까지 윤리위에 추가 징계대상에 오르면서 사면초가에 빠졌다. 여기에 쪼개기 후원금 논란과 인턴 특혜채용 의혹까지 더해졌다.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공천 녹취록 사태와 쪼개기 정치후원금 의혹에 대해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뉴스1
태 의원 측은 대부분의 의혹이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됐다고 반박했지만 그의 앞에 놓인 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2016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에서 사선을 넘어 탈북민 출신 첫 지역구 국회의원(서울 강남갑)이자 최초 여당 최고위원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6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태 의원은 망명한 이후 ‘북한 형제자매들(民)을 구(救)하겠다’는 의미로 처음 ‘태구민(太救民)’이란 이름으로 개명했다. 이 때문에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태영호가 아닌 태구민으로 출마했다. 당선 후 다시 개명해 본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그의 공천은 과정부터 화제였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그 사람이 강남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라는 발언을 했다고 할 정도로 당시 파격적인 공천이었다. 태 의원은 3년 전 총선에서 58.4%의 득표로 당선됐다. 보수당의 지지가 높은 강남구였지만 탈북민 출신 첫 지역구 국회의원이 수도 서울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구 강남에서 선출됐다는 점에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었다.

태 의원의 두 번째 정치적 승부수는 지난 3·8전당대회 최고위원 출마였다. 그는 모두가 첫 컷오프에서 탈락할 것이란 예상을 뒤집고 결선까지 올랐다. 당내 지지 기반이 불투명한 데다 당시 친윤계 현역 의원과 이들의 지원을 받는 후보들이 대거 출마해 경쟁이 치열했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컷오프 통과 여세를 몰아 최고위원 자리에까지 오르며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북한에서 노동당 고위 간부를 지낸 후 남한으로 와 보수당의 지도부에까지 오르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가 된 것이다.

사선을 넘어온 그의 절실함이 화를 불렀을까. 최고위원 선거 유세 과정에서 제주 4·3사건이 북한 김일성의 지시로 촉발됐다는 취지의 발언이 화근이었다. 당시 많은 언론에서 이를 비판했지만 태 의원은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이와 관련한 추가 발언을 이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평생을 엘리트로 지내며 살았기 때문에 그의 역사관이 남한의 상식과 다를 수 있다는 취지의 여론이 우세했다. 첫 윤리위 회부 논의 당시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김재원 최고위원의 문제 발언과 태 의원의 발언은 사정이 다르다. 징계까지 가더라도 그 수위가 다를 것”이라고 말하는 등 태 의원을 옹호하는 기류가 강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어린이 안전 헌장 선포식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우호적이던 당내 여론도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공천을 언급했다는 녹취가 공개된 이후부터는 기류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윤리위 징계 수위가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해졌고, 이어 쪼개기 후원금 의혹과 청년인턴 특혜 의혹 터져 나오자 그를 엄호하던 분위기도 식어갔다. 특히 태 의원의 지난 3일 기자회견이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보좌진을 안심시키고 독려하는 차원에서 나온 발언”이라며 “회의 참석자 중 누군가가 녹음해 불순한 의도로 유출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날 태 의원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데 치중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사과나 반성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평가가 많았다. 당내 의원들도 이때부터는 태 의원을 향한 동정표를 거둬들였다. 하태경 의원은 CBS라디오에 나와 “(태 최고위원은) ‘내 책임이 아니고, 나를 죽이기 위해서 이런 걸 유출시키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데 이게 국민 상식과는 좀 안 맞다. 왜냐하면 당신 직원, 당신 비서이기 때문에 당신의 지휘 통제 책임이 있는 것”이라며 “그 점에 대해 좀 안타까운 면이 있어서 참 딱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는 태 의원에 대한 징계 심사를 신속하게 처리할 방침이다. 당 윤리위 부위원장인 전주혜 원내대변인은 태 최고위원 징계 심사에 대해 지난 5일 “저희는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 대변인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충분한 소명 기회는 줘야 한다”며 “윤리위 회의가 예정된 8일 원칙대로 충분한 소명할 기회를 주면서 그날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면 내릴 것이고 숙고가 필요하다면 한 번 더 (할 수도 있다)”라며 “결정이 내려질지 말지는 그날 상황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비윤(비윤석열)계에서는 태 의원의 중징계 가능성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는 5일 MBC라디오에 나와 “당원들의 선택으로 두 달 전에 선출된 사람의 총선 출마를 봉쇄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사실 태영호 의원은 징계를 왜 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며 “애초에 ‘4·3 발언’ 같은 걸 할 때는 왜 가벼운 경고 정도로 끝냈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한메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상임대표가 지난 4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공수처로 향하며 관련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김한메 대표는 태영호 의원·이진복 정무수석 녹취록 의혹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과 이진복 수석이 공천개입을 해 직권남용,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며 공수처에 고발장을 접수한다고 밝혔다.   뉴시스
또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돈봉투 의혹을 비판하기 위해 보좌진이 올린 것으로 알려진 JMS(Junk, Money, Sex)에 대해선 모욕보다는 말실수에 가깝다고 봤고, 녹취 파문에 대해서도 “유출된 내용상 태 의원이 잘못한 것인지, 이진복 수석이 잘못한 것인지, 뭘 갖고 징계하는지도 불분명하다”며 “윤리위가 머리가 아플 것이고 징계 수위 자체도 상당히 논란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윤계의 비판과 달리 당내 주류에서는 여전히 중징계의 목소리가 높다. 김병민 최고위원은 SBS라디오에 나와 7∼8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방한과 10일 윤석열정부 출범 1주년 등 여러 정치적 일정을 언급하며 “이런 주요한 이슈와 의제들이 이른바 최고위원 문제, 정치 뉴스로 전부 가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걸 그냥 없던 일처럼 지나갈 수 있냐고 하는 문제의식에는 많은 당원과 지도부 내에서 공감 정도는 있지 않나 싶다”고 내다봤다.

태 의원은 2018년 쓴 회고록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내 삶에 녹아 있는 북한의 시대상, 사회상, 생활상과 그 변천사를 한국 사회라는 스크린에 투영하고 싶었다. 북한 사회라는 거울로 보면 한국인 스스로는 알기 힘든 한국의 위상이 비춰진다”고 썼다. 그가 투영한 말들이 이번 윤리위라는 1차 검증 시험대에 올랐다. 그 결론이 태 의원의 정치적 행보의 끝이 될지 아니면 그의 인생처럼 반전의 드라마를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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