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마다 기후 뉴스를 보도하라? [기후위기 대응 선진국 독일의 고민 ③]
지난 3월, 독일 일간지 〈빌트〉는 경제기후부 장관 로베르트 하베크가 계획하고 있는 ‘난방시설 전환’에 대한 비판 기사를 다수 내보냈다. 경제기후부는 2024년부터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난방시설의 신규 설치를 금지하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기반 난방시설을 지원하는 법률안을 발표했다. 해당 안에 따르면 2045년까지 모든 난방시설은 재생에너지 기반 설비로 교체되어야 한다. 〈빌트〉는 해당 계획이 독일인에게 비용 1조 유로(약 1443조원)를 전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사는 해당 내용의 출처가 독일 RWI 경제연구소 소속 마누엘 프론델 교수의 연구라고 밝혔다. 독일의 또 다른 일간지 〈타츠〉는 〈빌트〉의 이 기사가 사실을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타츠〉 취재에 따르면, 프론델 교수는 〈빌트〉 기자와 긴 인터뷰 중에 해당 숫자를 언급했지만 이는 한계가 있는 분석임을 분명히 했다. 이 금액은 오래된 모든 건물의 난방시설을 열펌프로 교체하고 적합한 단열 공사를 한다는 전제하에 대략 산정한 것이었다. 해당 숫자는 자연스럽게 난방시설의 교체가 필요한 경우 발생하는 비용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새로운 법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낡은 난방시설을 교체하거나 단열 공사를 하게 되는데, 이런 게 포함된 것이다. 〈빌트〉를 비롯한 독일의 몇몇 언론은 산업계의 로비나 해당 언론이 지지하는 정당의 입장에 맞춰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 대해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논조를 고수해왔다.
일부 편파적인 보도뿐만 아니라 독일 언론이 기후위기나 기후보호 정책에 대한 보도량 자체가 많지 않다는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되어왔다. 특히 영향력이 큰 공영 TV 방송이 기후위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미하엘 브뤼게만 교수(함부르크 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연구팀이 언론 전문지 〈미디어〉 의뢰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21년과 2022년 독일 공영 TV 방송은 전체 방송 시간 중 겨우 2.4% 정도만 기후위기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브뤼게만 교수는 이 정도의 방송 시간도 과거에 비해서는 많아진 것이지만 공영방송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2007년부터 2017년까지 독일 공영방송의 대표적 뉴스 프로그램인 〈타게스샤우(Tagesschau)〉를 조사한 결과 기후 관련 언급이 전혀 없었던 방송 일수가 전체의 82%에 달했다. 10년 중 약 8.2년 동안 기후위기 관련 보도가 없었던 셈이다. 이 시기 기후위기 보도는 국제회의나 선거, 재난 등 특별한 이슈에 맞춰서만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기록적 폭염이 있었던 2018년 여름을 기점으로 기후위기 보도 횟수는 크게 늘어났다. 특히 ‘프라이데이 포 퓨처’의 기후위기 대응 시위가 뜨거웠던 2019년은 기후위기에 관한 언급이 있었던 날이 204일로, 없었던 날(161일)보다 훨씬 많았다.
언론인, 관련 업계 종사자, 학자 등이 모여서 만든 ‘8시 이전의 기후(Klima vor acht)’는 TV 방송사, 특히 공영방송이 가장 중요한 시간에 기후위기를 정기적으로 다룰 것을 요구하는 단체다. 단체 이름은 독일 공영방송 ARD가 매일 저녁 7시55분 방송하는 ‘8시 이전의 증시’를 모방한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2000년 11월부터 세계의 증시 상황을 방송해왔다. ‘8시 이전의 기후’ 측은 공영방송 ARD가 팬데믹에 대응해 코로나19 소식을 매일 가장 중요한 시간대에 방송해서 독일의 코로나19 대응에 기여한 것처럼 공영방송이 기후보호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단체는 2022년 5월 기후위기에 대한 미디어 대응의 중요성과 방법 등을 담은 〈기후위기 속의 미디어(Medien in der Klima-Krie)〉라는 책을 출판해 여러 언론사에 보냈다. 공영방송 ARD는 이들의 요구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책도 반송했다. 하지만 ‘8시 이전의 기후’가 벌인 활동이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영방송사 RTL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에 관심을 보였다. RTL은 2021년 7월부터 일주일에 두 번 ‘8시 이전의 기후’와 협력해 저녁 뉴스 시간에 60초짜리 ‘기후 업데이트’라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2022년 독일 방송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그리메상(Grimme-Preis)’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18년 이후 RTL뿐 아니라 〈쥐트도이체차이퉁〉 〈슈피겔〉 〈차이트〉 같은 독일 주요 언론들은 기후위기 관련 뉴스레터나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기후위기 보도 위한 독일 언론인들의 노력
이와 함께 기후위기를 어떻게 보도하고 전달해야 할지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공영방송 ZDF의 기상캐스터이자 기상학자인 외츠덴 테를리도 이런 논의를 주도해온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단기적인 소식에서 벗어나 기후위기와 관련해 기상예보를 설명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테를리는 일기예보 시간에 그날의 날씨를 설명하고 “기후위기와 날씨는 더 이상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같은 말을 함으로써 시청자에게 기후위기를 다시 한번 환기시키려 노력한다. 일기예보 시간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는 트위터를 통해 현재 기후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한다.
일부 언론과 시청자들은 테를리가 시청자를 가르치려 하며 특정 정당에 유리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기후활동가라고 비판한다. 그는 〈차이트〉와 인터뷰를 통해 “나는 기상학자이기도 하지만 우선 언론인”이라며 만약 언론인이 자신의 직업을 통해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을 한다고 해서 아무도 그를 민주주의 활동가라고 비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위기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자신의 직업상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언론이 기후위기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테를리만이 아니다. 2021년 결성된 ‘독일 기후저널리즘 네트워크(Netzwerk Klimajournalismus)’는 이런 언론인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언론이 기후위기를 어떻게 다룰지에 관해 교육하거나, 기후위기를 더 많이 다룰 것을 촉구하는 활동을 해왔다. 이 단체는 지난해 4월26일 ‘독일 기후저널리즘 네트워크 헌장(이하 헌장)’을 발표해 기후위기를 대하는 언론의 기본 태도와 방향을 제시했다. 지난 3월까지 이 헌장에 서명한 관련 업계 종사자는 총 297명이다.
헌장은 향후 몇 년 안에 결정적인 변화가 없다면 전 세계가 돌이킬 수 없는 재난 상황에 빠질 것이며, 여기에 언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다양한 주제 가운데 하나에 그치지 않으며 민주주의나 인권처럼 모든 주제와 연관이 있다고 밝힌다. 헌장에 따르면 기후위기 보도는 특정 행사나 사건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독일 기후저널리즘 네트워크의 대변인 라파엘 텔렌은 〈타츠〉 인터뷰에서 문화 담당 기자나 경제 담당 기자도 자신의 일상적 작업에서 기후위기를 고려해야 한다고 헌장의 내용을 설명했다.
이 밖에도 독일 언론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저널리즘의 태도 등 다양한 견해가 소개되고 있다. 베른하르트 푀르크센 교수(튀빙겐 대학 미디어학과)는 독일 공영 라디오 방송 ‘도이칠란트 풍크’와 한 인터뷰에서 언론이 기후위기를 다룰 때도 뜨거운 쟁점이나 갈등 위주의 정치 보도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후위기가 일반적인 사회 위기나 재난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도에서도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푀르크센 교수는 언론이 기후위기를 다룰 때 특정 사건이나 새로운 소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며, 단기적 정책이 아닌 장기적으로 대응 가능한 방법 혹은 국제적으로 실현 가능한 해법을 더 많이 보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푀르크센 교수는 언론이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방식을 통해 중립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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