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핵협의그룹(NCG) 설치가 나토식 핵공유보다 강력? 실상은…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2023. 5. 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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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핵무기 사용 의사결정에 참여 못 해… 전략원잠 전개도 ‘외교적 수사’로 봐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집권 3년 차인 바이든 행정부의 두 번째 국빈 초청 형식으로 진행됐다. 4월 24~30일 5박 7일의 방미 일정에서 윤 대통령은 미국 측으로부터 극진한 환대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4월 26일 나온 '워싱턴 선언' 내용에도 이목이 쏠렸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한미 양국이 새로운 협의체인 핵협의그룹(NCG)을 설치하고 미 전략원자력잠수함(원잠)을 한반도에 전개한다는 게 뼈대다. 윤 대통령은 이번 방미의 마지막 공개 일정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설 및 대담에서 '워싱턴 선언'의 의미에 대해 "1953년 재래식 무기를 기반으로 한 상호방위조약에서 핵이 포함된 한미상호방위 개념으로 업그레이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선 "워싱턴 선언은 '제2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26일(현지 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공동기자회견에 나섰다. [뉴시스]

확장억제 협의체 이미 4개나 있는데…

이번 정상회담은 국제정치 측면에서나 한반도 안보 상황 측면에서나 대단히 중요한 시기에 열렸다. 한국은 당장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하는 수많은 안보 과제를 안고 있었다. 우선 윤 대통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더욱 뚜렷해진 신(新)냉전 체제에서 대한민국이 전체주의 진영과 자유민주주의 진영 중 어느 쪽에 설 것인지 분명한 메시지를 내고, 자유진영 우방국 사이에서 지위와 역할을 굳혔어야 했다. 최악으로 치닫는 북한의 핵위협과 미국의 불완전한 확장억제 공약에 불안감을 느끼는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해법도 가져와야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안보 과제 측면에서 이번 방미 성과는 상당히 아쉽다는 게 필자의 분석이다.

정부는 이번 방미 결과, 미국과 NCG를 설치하고 전략원잠을 한반도에 수시 전개하기로 약속받았다며 자화자찬한다. 기존 '핵우산'을 '핵방패'로 강화했다는 것이다. 굳이 NCG를 설치하지 않더라도 한미 양국이 확장억제를 논의하는 협의체가 이미 4개나 가동되고 있다.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와 억제전략위원회(DSC), 통합국방협의체(KIDD)와 한미군사위원회(MC)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신설될 NCG는 다른 4개 협의체와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 워싱턴 선언 전문을 들여다보면 NCG는 옥상옥 조직이 될 우려가 크다.

이번 워싱턴 선언에는 "미국은 미국 핵태세보고서의 선언적 정책에 따라 한반도에 대한 모든 가능한 핵무기 사용의 경우 한국과 이를 협의하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임을 약속하며, 한미동맹은 이러한 협의를 촉진하기 위한 견실한 통신 인프라를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유사시 한국과 '핵무기 사용을 협의할 것'이라는 내용이 아니라 '핵무기 사용을 협의하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명시한 대목을 보자. 유사시 핵무기 사용과 관련해 한국과 협의를 강제한 것은 아니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워싱턴 선언에는 "(NCG를 통해) 유사시 미국 핵 작전에 대한 한국 재래식 지원의 공동 실행 및 기획이 가능하도록 협력한다"는 문장도 담겼다. 다만 선언 어디에도 한국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공유처럼 작전 의사결정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은 없다. 단지 '미국의 핵 작전'을 한국이 재래식 전력을 통해 지원하며, 작전을 기획하고 공동으로 실행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데 양국이 협력한다는 말뿐이다. 실제로 워싱턴 선언 발표 직후 한국 언론에서 이 협력을 '나토식 핵공유'에 빗대어 확대 해석한 보도가 쏟아지자 미 정부 고위 관계자가 "미국은 한국에 전술핵을 포함한 그 어떤 핵무기도 전개할 뜻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미 공군이 2020년 8월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우주군기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3를 시험발사하고 있다. [뉴시스]

美 당국자 "한국에 핵무기 전개할 뜻 없다"

워싱턴 선언에 등장하는 "미국 핵태세보고서의 선언적 정책에 따라"라는 구절도 살펴보자. 지난해 10월 발표된 미 핵태세검토보고서(NPR) 8쪽에는 이번 워싱턴 선언에 언급된 핵태세보고서의 선언적 정책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 미국은 NPR에서 핵무기의 근본 역할을 '억제'로 규정하고 "오직 극단적 상황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The United States would only consider the use of nuclear weapons in extreme circumstances)"이라고 명시했다. '선언적 정책' 내용과 워싱턴 선언을 종합해보면 "미국은 오직 극단적 상황에서 핵무기 '사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을 고려'한다. 한반도 유사시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는 것을 협의하기 위해 한국과 노력한다" 정도로 내용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유사시 한국과 핵무기 사용을 협의한다고 못 박은 게 아니라 "유사시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는 것을 한국과 협의할지 노력해보겠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 [뉴시스]
이번 NCG 설치에 대해 "한미는 나토처럼 한국 땅에 핵무기를 갖다 놓지는 않지만, NCG 설치로 협의의 깊이와 폭은 훨씬 강력해질 것"이라는 대통령실 일각의 평가는 어떻게 봐야 할까. 나토식 핵공유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 우선 핵공유 대상국 군사기지에 핵무기를 배치해놓는다. 그리고 유사시 핵무기 사용 여부를 미국과 해당국이 협의한다. 구체적으로는 해당국 전투기에 핵무기를 탑재해 실제 투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한국은 전술핵 재배치를 약속받은 것도 아니고, 핵무기 사용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한미 NCG 설치가 진짜 '핵공유'를 명문화한 나토식 핵공유보다 협의의 깊이와 폭이 훨씬 강력하다는 인식은 근거가 없다.

이번 방미 성과로 조명되는 미 전략원잠 배치도 현실을 따져보면 실효성이 크지 않다. 전략원잠 배치에 대해 대통령실은 "1980년대 초 이후 처음으로 한반도 주변 해역에 핵미사일을 갖춘 잠수함을 정기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다"면서 "한반도 상공에 전개 시 눈에 띄는 전략폭격기 등과 달리 위치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핵잠의 경우 '정기적 전개'만 합의해도 사실상 '상시 배치' 효과를 낸다"고 주장했다.

현재 미 해군은 오하이오급 전략원잠 14척을 보유하고 있다. 8척은 태평양에, 6척은 대서양에 배치돼 있다. 이 14척이 항상 작전에 투입될 수 있는 여건은 아니다. 미 전략원잠의 동선은 극비 사항이지만, 모항이 있는 지역의 언론, 승조원이나 가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미 해군 보도자료와 잠수함 정비를 맡은 조선소의 홈페이지 등을 추적해보면 대략적인 동선 추적이 가능하다. 태평양 지역에서 현재 작전 중이거나 작전 대기 중인 전략원잠은 '메인' '켄터키' 등 2척으로 파악된다. 전략 초계 임무를 마치고 복귀한 '헨리 M. 잭슨' '네바다' '앨라배마' '펜실베이니아'는 수리 중이거나 조선소에 입고된 상태로 보인다. '네브래스카'는 30~40개월 일정으로 진행되는 핵연료 교체 및 수명 연장을 위해 도크에 있고, '루이지애나'는 최근 41개월 일정의 핵연료 교체 및 수명 연장 공사를 마치고 시험운항과 부대 재편성, 훈련 일정을 소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美 전략원잠 수시 전개, 협정 같은 강제력 없어

미 해군 태평양함대가 4월 26일(현지 시간) 공개한 전략원자력잠수함 ‘메인’의 괌 기지 입항 모습. [미 해군 제공]
미국 전략원잠은 중국·러시아 등 적성국의 핵공격이 있을 경우 끝까지 생존해 보복 타격을 가하는 최고급 전략자산이다. 유사시 적 공격원잠의 감시 및 추적 1순위가 되기 때문에 입출항 일정과 초계 해역은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현재 태평양에 단 2척만 있는 전략자산을 오로지 북한에 대한 가시적 압박을 위해 한국에 수시로 전개하게 한다는 말은 '외교적 수사'로 보인다. 협정 같은 강제력이 있는 합의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얘기다.

필자는 이번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북핵 대응과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실질적인 억제력 강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본다. 한국이 북핵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위적 수단 확보의 길을 스스로 막아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된다. "한국의 미국 핵억제에 대한 지속적인 의존의 중요성, 필요성, 이점을 인식한다"는 워싱턴 선언 내용은 북핵 대응 전략 수립과 이행에서 한국의 자주적 의사결정권에 족쇄를 채워버린 것으로도 읽힐 수 있다.

올해는 한반도는 물론, 세계 안보·경제 지형이 요동치는 중요한 시기다. 각국은 구체화되는 신냉전 구도에 맞춰 헤쳐 모이며 역할 분배에 나섰다. 지난 냉전 때 서독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최선봉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대가로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 결과 두 나라는 20여 년 만에 잿더미만 남은 패전국에서 세계 정상급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과거 서독과 일본보다 유리한 지정학적 가치를 가졌다. 한국 덕에 미국은 중국 심장부로부터 1000㎞ 떨어진 곳에 군사기지를 구축했다. 한국은 유사시 미국과 협력해 병력 재배치 없이도 중국 연안의 핵심 군사 전략 거점을 일격에 쓸어버릴 잠재력을 지녔다. 미 본토를 위협하는 중국 전략원잠이나 태평양 배치 러시아 '핵어뢰' 위협을 최일선에서 일찌감치 차단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경제, 산업 측면에선 미국 주도의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재편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 정부가 미국 주도의 반중(反中) 동맹에 어떠한 역할과 기여를 하겠다고 유의미한 제안을 했는지 의문이다.

미국 중심 反中 동맹에서 한국 역할 천명해야

윤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은 이익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거래 관계가 아니다. 한미동맹은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가치동맹이다"라고 말했다. 외교적 수사로선 듣기 좋은 말이지만, 이를 실제 정책에도 그대로 투영하는 것은 곤란하다. 국제관계는 철저한 '기브 앤드 테이크'다. 한국이 미국에 어떤 선물도 주지 않는다면 미국 역시 우리에게 선물을 줄 이유가 없다. 한미동맹이 거래 관계가 아닌 가치동맹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중국 문제 대응에선 실효성 있는 조치를 내놓지 않은 한국 정부를 미국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워싱턴 선언에 대한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확대 해석' 발언을 미 정부 당국자들이 반박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지금이라도 외교안보 라인을 대대적으로 쇄신하고, 곧 있을 G7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우방국들에 전향적 입장을 천명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전위'가 아닌, '고래 싸움에 등 터질 새우' 꼴을 면치 못하고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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