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3년 4개월 만에 해제…코로나19와 함께 할 이후
제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하던 지난해 7월만 해도 한국은 여전히 코로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건물에 들어가도 지하철을 타도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길거리에서도 마스크를 벗은 사람은 보기 어려웠습니다.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10시간 넘게 마스크를 썼습니다. 다만, 식사 시간 동안은 예외였는데, 다닥다닥 붙어 앉은자리에서 마스크를 벗고 밥을 먹자 한편으로는 편하게 숨 쉴 수 있어 좋으면서도 '이래도 되나?'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WHO, 코로나19 비상사태 해제…위험도 낮아졌다지만
공항을 빠져나오자 미국은 거의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실내에서는 마스크 쓴 사람이 종종 눈에 띄었지만 바깥에서는 그런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한국도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일상을 되찾았고, 미국의 경우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 관련 공중보건 비상사태 종료를 선언하는 법안에 서명하면서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알렸습니다.
그리고 5일, 국제보건기구 WHO도 마침내 코로나19 비상사태를 해제했습니다. 3년 4개월 만입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코로나19에 대한 PHEIC(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를 해제하자는 국제 긴급 보건규약 위원회의 의견에 동의했다고 밝혔습니다. PHEIC는 WHO가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공중 보건 경계 선언으로, PHEIC 해제는 사상 유례없는 보건 위기였던 코로나19 대유행이 사실상 일반적인 유행병 수준이 됐음을 의미합니다.
테워드로스 총장은 이번 결정은 코로나19와 관련한 사망자와 중환자실 입원환자 등이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고 면역력을 가진 인구가 높은 수준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자는 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코로나19가 변이를 일으키며 진화할 잠재적 가능성 등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이제는 코로나19를 장기적 관리 체제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위원회는 조언했고 이에 동의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코로나19, 미국 내 사망 원인 4위…위험성 여전
WHO가 코로나19 비상사태를 해제하기로 한 건 반가운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비상사태가 해제된 것일 뿐 코로나19 위험이 사라졌다는 건 아닙니다. 앞서 코로나19 비상사태 해제 법안을 처리한 미국에서도 코로나19는 여전히 가장 위험한 질병 중 하나인 걸로 확인됐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질병통제예방센터 CDC의 예비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미국에서 기록된 사망 원인 중 코로나19가 4번째로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심장병 사망자가 69만 9천659명으로 가장 많았고 암 사망자 60만 7천790명, 약물 과다복용을 포함한 '비의도적 부상'에 따른 사망자 21만 8천64명의 순이었습니다. 이어 코로나19 사망자가 18만 6천702명이었는데, 이는 전년도보다는 47% 급감한 숫자이지만, 여전히 하루 평균 500명 이상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고 있다는 뜻으로 코로나19의 위험이 여전하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가장 사정이 낫다는 미국이 이런 상황이니 의료나 방역 체계가 취약한 나라들로서는 안심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WHO의 코로나19 비상사태 해제에 부정이었던 쪽에서는 세계 각국의 의료 역량에 편차가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아직 PHEIC를 해제하기보다 각국의 의료 대비 체계가 잘 갖춰졌는지 점검해야 할 때라는 의견에 무게를 뒀습니다. 전파력이 강하고 면역 회피 특성도 큰 XBB.1.16 등 오미크론 하위 변이 바이러스가 몇몇 국가를 중심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 등도 이런 의견의 근거가 됐습니다.
하지만 모든 결정이 그렇듯 모든 걸 만족시킬 수 있는 선택이란 있을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일단 결정했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가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WHO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전문가들이 우려한 대로 의료 역량이 취약한 지역이 코로나19 신종 변이의 새 발원지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여기에 필요한 지원을 회원국들로부터 이끌어 내야 합니다. 코로나19 초기 우왕좌왕하며 늦장 대응 논란을 빚었던 WHO의 행태가 반복돼선 안됩니다.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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