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에 밥을 먹나요…쌀값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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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문제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은 크게 4가지로 나뉜다.
가격변동으로 자원이 신축·효율적으로 배분돼야 하며 균형가격이 왜곡되면 시장의 가격 신호가 뒤틀려 인간 선택행동에서 선호·유인이 뒤바뀌게 된다는 쪽과, 시장가격의 급변동을 제약하는 제도가 기회주의적 행동이나 시장 불확실성을 완화해 시장 실패를 치유하고 오히려 경제·사회적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쪽, 이 둘 사이에 쌀값의 정치경제학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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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완의 글로벌 경제와 사회
민주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문제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은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시장 가격기구, 이해집단 간 교섭, 공공관료(정부)에 의한 결정 그리고 다수결을 통한 정치적 의사결정이 그것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 중에 어떤 방식을 적용하는 편이 민주적이면서도 동시에 전체 사회구성원에게 ‘파레토 최적’(사회 자원의 가장 적합한 배분 상태)에 근접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효율적인 선택일지 결정해야 한다.
한국에서 쌀은 ‘특수한’ 상품이다. 2021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농림업 부가가치생산액(34조280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64%에 불과하다. 우리는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개방 협상 타결(WTO 출범) 이후 해마다 시장 쌀값을 둘러싼 농민과 정부, 정치인 사이의 갈등과 타협을 대면한다. 쌀은 기초식량작물·식량안보라는 특수성과 쌀농민 소득안정이라는 경제 요인, 선거에서 표라는 정치적 이해가 얽히고설키면서 시장과 정치가 충돌하는 상품이다. 한쪽에선 가격조정기구로서 시장의 논리가 작동하고, 다른 쪽에서는 쌀 가격을 지지하려는 국가의 제도·정책이 개입한다.
경제학자 밥 로손은 1980년에 펴낸 책에서 “갈등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서 풍토병처럼 항상 발생한다”고 말했다. 가령 노동과 자본 사이에는 사용할 생산기술, 하루 노동시간, 그리고 분배몫을 어떻게 정할지를 놓고 늘 갈등이 생긴다. 한 영역에서의 갈등은 다른 영역의 갈등에 영향을 미치고, 모든 갈등은 가격(상품·노동)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의 자원(재정) 배분과 농민 소득분배몫을 둘러싼 쌀값 갈등 역시 모든 자본주의 경제가 맞닥뜨려온 시장과 제도 사이의 오랜 논쟁을 함축하고 있다.
쌀농가는 생산비와 물가 수준을 감안할 때 쌀값이 80kg(정곡)당 대략 20만원은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0년대 중반에 농업경제학자들은 국내 쌀과잉을 고려할 때 완전경쟁시장이라면 쌀 균형가격은 80kg당 10만∼12만원선이라고 추정했다. 농산물도 시장거래 상품이고 쌀 소비량이 해마다 급감하지만, 쌀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농업·농촌은 시장 교환가격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환경적 의미를 비롯한 여러 지속가능성 가치를 내포한다.
농업 분야에 투입되는 국가보조금은 변동·고정·전략작물 직불금을 위시해 연간 7조~8조원에 이르는데, 농업이 생산해내는 부가가치를 돈으로 따지고 그 시장가치에 비례해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곤란하다. 몇백 평에 불과한 쌀 소농에게 지불하는 각종 보조금은 농사짓는 일의 가치를 사회가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단지 농부라서가 아니라 대부분 가난한 노인 농가라는 점에서 사회가 도와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정부의 쌀 초과생산량 매입의무 부과) 파동을 놓고 한쪽에서는 “과잉쌀 강제 매입은 시장의 수급 조절 기능을 무력화하고 벼 재배 면적을 오히려 늘려 과잉생산과 쌀값 하락을 더 부추기게 될 것”이라 말한다. 다른 쪽에서는 “과잉쌀을 의무 격리하는 처방이 받쳐줘야 쌀값 폭락을 막고 농가 소득 안정을 높여 쌀농사 기반을 지켜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격변동으로 자원이 신축·효율적으로 배분돼야 하며 균형가격이 왜곡되면 시장의 가격 신호가 뒤틀려 인간 선택행동에서 선호·유인이 뒤바뀌게 된다는 쪽과, 시장가격의 급변동을 제약하는 제도가 기회주의적 행동이나 시장 불확실성을 완화해 시장 실패를 치유하고 오히려 경제·사회적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쪽, 이 둘 사이에 쌀값의 정치경제학이 있을 것이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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