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슈리의 말』 다카야마 하네코 “기록을 보존하는 것이 희망, 윤리가 어떻더라도”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를 비롯해 일본 프로야구팀의 훈련캠프나 연습경기를 직관하기 위해 오키나와를 자주 찾았다. 고교 시절 야구를 좋아한 이래 요코하마를 연고로 하는 DeNA 베이스타스의 광팬이었다. 오키나와는 일본 프로팀은 물론 한국 프로야구팀 삼성 라이온즈 등도 비시즌 훈련캠프를 활발하게 여는 곳이다.
더구나 한창 소설을 쓰고 있는 도중, 오키나와 나하시에 위치한 전통의 슈리성에 화재가 발생했다. 작품을 계속 써나가는 것에 용기가 필요했다. 마침 슈리성을 복원하는데 관광객들의 사진이 도움이 됐다는 사실이 화제가 됐을 때, 확실히 이 이야기가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류큐 경마에서 최후결전 및 기지문제에 이르기까지 오키나와의 현재와 굴곡진 역사를 응시한 다카야마 하네코의 『슈리의 말』(손지연 옮김, 소명출판)은 이렇게 태어났다. 2020년 3월 잡지 『신초』에 처음 발표됐고, 같은 해 7월 제163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주인공 미나코는 중학교 때부터 오키나와 역사와 문화가 담긴 ‘오키나와 도서자료관’에서 자료 정리 자원봉사를 해왔다. 그녀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자료를 촬영해 화상 데이터를 축적해 나간다. 이와 함께 나하 시내의 스튜디오 사무실에 나가선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퀴즈를 출제하는 오퍼레이터 일도 한다.
두 개의 태풍 사이에 끼인 어느 날, 집 마당에 오키나와 재래종인 미야코산 말 ‘히키코’가 들어와 있다. 미나코는 히키코를 훈련해 히키코를 타고서 산책한다. 태풍으로 자료관이 파괴되자, 방대한 화상 데이터를 보존하는 아카이브를 고민하는데.
“미나코는 섬의 역사에 아로새겨진 일들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지 못한다. 윤리라는 것도 본래 역사의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미나코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을 기록한 것을 아카이브화하고 보존하는 일이다.”(147쪽)
“아카이브를 보존한다는 것은 희망이다, 라고 하는 것과, 지식이 집적하는 장소(그곳이 아무리 벽지였다고 하더라도)에 의식이 머물고 있다, 라고 하는 이야기는, SF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극지의 해저나 우주, 전장라고 하는 것은, 구글 어스나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는 장소이죠. 그런 곳에 오키나와라는 좌표에 있는 모든 역사 데이터가 카피되고 있다면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주인공 미나코를 비롯해 자료관을 운영해온 요리, 미나코의 퀴즈 고객인 반다와 폴라, 기바노 등 모두 매력적인 인물들인데, 혹시 롤 모델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원래 등장인물의 윤곽을 자세히 쓰는 편이 아닙니다. 특히 외형의 모습은요.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의 이력를 이야기 속에 지나치게 많이 적지 않은 채 인생을 말하게 하는 것에 주의했어요. 인물들이 매력적으로 읽혀졌다면, 매우 고마운 일이겠지요.”
―왜 하필 미야코산 말이 미나코의 앞에 나타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오키나와 미야코산 말은 크지 않습니다. 사라브레드종(Thoroughbred)에서 보면 매우 작지요. 물론 실제로 보면 놀라울 정도로 크지만요. 그다지 크지 않을 미나코에게, 자신이 직접 맞아서 얻는 가족으로선 딱 좋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한번은 뜻밖의 형태로 뛰어들지만, 두 번째는 강탈을 합니다. 나는 이 두 장면을 아주 좋아하죠.”
―소설에는 1879년 ‘류큐 처분’과 1945년 최후결전과 옥쇄, 1972년 일본 복귀의 굴곡진 오키나와 역사가 담겨 있는데요.
“지금은 리조트적 관광지이지만, 슬픈 기억을 가진 장소는 세계에서 몇 곳이 있습니다. 사이판과 인도네시아, 제주 등도 그렇지요. 이것들은 과거의 장소가 아니라, 지금의 섬과 연결된 것이죠. 기록을 남길 수 있다면, 만약 잊거나 본인이 늙고 망각하더라도 그것을 남길 수 있습니다.”
‘취업 빙하기’ 세대였던 직장인 다카야마 하네코는 30대 중반이 돼서야 비로소 ‘나인 투 파이브’(오전 9시 출근~오후 5시 퇴근)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이후 몇 해 동안 투 잡, 쓰리 잡을 뛰었다.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지도 만들기, 편집 프로덕션, 회화교실 강사, 이벤트 행사 진행 등등. 새벽부터 늦은 밤은 물론 주말까지 체력이 버틸 때까지 일했다. 미술관이나 전람회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시에 퇴근하게 되면서 연극을 볼 수 있었고, 일요일에는 미술관에 갈 수 있었다. 여러 취미 활동을 생각하다가 선택한 것은 문장 교실이었다. 어릴 적 소설 『라쇼몽』을 읽었고, 대학생이 된 뒤에는 폴 오스터의 『유령들』을 읽고 감동했지만, 그렇다고 문학소녀는 아니었다. 중학교 때에는 취주악부에서 동아리 활동을 했고, 중고교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게 되면서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다마(多摩)미술대학에 입학해 미술을 배웠고 특히 일본화 가운데 생물을 잘 그렸던 그녀였다.
그녀는 많은 작가를 데뷔시킨 문예편집장 출신의 네모토 마사오(根本昌夫)씨가 진행하는 사회인 대상의 문예창작교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 달에 2회 페이스로 진행된 문예창작교실에서 작품을 쓰고 작품에 대해 동료들과 자유롭게 토론했다. 수업이 끝난 뒤 동료들과 차도 마시고 영화를 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소설가가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카야마씨는 이상한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이런 데에 응모하면 어때? 어느 날 문예창작교실에서 함께 소설쓰기를 하던 동료가 새로 생긴 소겐(創元)SF단편상을 소개한 뒤 그녀에게 응모해보라고 권했다. 작품을 써서 응모했다. 소설가 다카야마 하네코의 원점이었다.
1975년 일본 도야마(富山)현에서 태어난 다카야마는 2009년 「유부가 들어간 우동(うどん キツネつきの)」 으로 제1회 소겐SF단편상 가작을 수상, 작품이 앤솔로지 『원색의 상상력(原色の想像力)』에 수록되면서 데뷔했다.
“저는 처음 SF작가로서 소설을 게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은 받지 못했지만, 가작이 된 것이죠. 대학에서 미술을 배우고, 졸업 후에도 그림을 계속 그렸어요.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조금 나이를 먹고 나서, 34세 정도입니다.”
“SF소설도 전문적인 지식이 포함돼 있는 것은 쓰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각에 관심이 있고, 뇌의 우주에 관심이 있어요. 풍경이나 조각 등 시각적인 것에도 흥미가 있어서 그것에 신경을 써서 쓰고 있고요.”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이 있는지요.
“매번 주목해야 할 사항은 유동적입니다. 사회적 이슈, 다양한 입장에 선 사람들의 시선, 그것들을 직접적인 형태가 아니라 허구로서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상 중인 차기작이 있다면.
“감염증이나 개인이라는 것, 청결하다는 것, 사회적 문제, 한동안 도쿄를 나갈 수 없어서(국내 지방에 가는 것도 이뤄지지 않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도쿄라고 하는 도시의 특수성에 마주보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올림픽도 있었고, 거리 풍경도 바뀐 곳이 많고요. 세계의 어느 대도시나 그렇겠지만요.”
혹시 그녀가 보일지 모른다. 어느 날 오후 야구장에서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홈런 볼의 궤적을 주시하거나, 한적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찬찬히 둘러보는 그녀가. 세상의 표정과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혹시 그녀를 만날지도 모른다. 어느 아침 공원에서 개와 산책하면서 발상과 구상을 가다듬거나, 집필실에서 영화나 드라마, 야구가 나오는 텔레비전을 켜놓고 뭔가를 집필중인 그녀를. 삼십대에 그림의 세계에서 소설의 세계로 넘어온 다카야마 하네코를.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다카야마 하네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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