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잃은 강아지에게…'엘베 버튼' 눌러준 아저씨[인류애 충전소]
[편집자주] 세상도 사람도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날은 위로받기도 하지요.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도, 선한 이들도 꽤 많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산책하고 마트에 함께 온 반려견 '진솔이'가 없어져서였다. 잠시 묶어뒀는데 버둥거리다 목줄이 빠진 모양이었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손이 덜덜 떨렸다. 남편은 야근하다 전화를 받고 전속력으로 오고 있었고, 혜율씨는 동네 중고마켓에 실종됐단 글을 빠르게 올렸다.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를 돌았다. 진솔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차로 다니며 찾아야겠단 생각을 했다. 차 키를 가지러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내렸을 때였다.
글쎄, 잃어버렸던 진솔이가 집 앞에 와 있었다.
진솔이는 어떻게 온 걸까. 자초지종을 물었다.
형도 : 일단 너무 다행이에요. 얼마나 놀라는지 잘 알거든요. 어떻게 잃어버리신 걸까요.
혜율 : 마트 정문 앞에 화물 카트 2대가 있었거든요. 롤 휴지가 담겨 있었고요. 거기에 잠깐 묶어뒀었어요. LED로 된 가슴줄을 착용하고 있었고요. 종종 묶어뒀던터라 걱정이 없었어요.
형도 : 그런데 어떻게 풀린 건가요.
혜율 : 밖에 진열된 고기를 3초만에 골라 계산대로 갔어요. 그런데 진솔이를 묶어둔 화물카드 2대가 저절로 움직이는 거예요. 약간 내리막경사여서 스스로 움직이다 속도가 빨라졌나봐요. 너무 놀라서 뛰쳐나갔죠.
형도 :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혜율 : 화물카트는 굴러서 다른 차에 박았고요. 진솔이는 격렬히 버둥거리다 결국 목줄이 빠졌어요. 순식간에 사라졌고요. 차가 시야를 가려서 진솔이가 어디로 갔는지 못 봤어요.
형도 : 너무 놀라셨겠어요. 어떡하나요.
혜율 : 카트가 부딪힌 차주에 연락처를 줬고요. 동공지진에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더라고요. 진솔이 성향상 무서웠던 장소는 다시 안 올 거라 생각했어요. 집으로 갔을 것 같아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았죠. 진솔이가 휘파람 소리에 빨리 반응해서, 휘파람 불며 다녔는데 안 보이더라고요.
혜율 :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문 앞에…진솔이가 있는 거예요.
형도 : 신기하네요. 진솔이가 대체 집에 어떻게 온 걸까요.
혜율 : 그러니까 저희 집이 1층이 아니고, 복도식 아파트고요. 누가 문을 열어줘야 공동 현관에 들어올 수 있고, 누군가 엘리베이터 층수를 눌러줘야 내릴 수 있잖아요. 너무 신기해서 아파트 CCTV를 보고 왔지요.
CCTV 화면을 봤다. 잃어버린지 15분 만에 공동현관 앞에 진솔이가 등장했다. 마침 한 아저씨가 뒤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진솔이는 "아저씨, 문 좀 열어주세요" 하듯 그를 쳐다봤다. 진솔이와 아저씨는 함께 들어왔다.
형도 :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거군요.
혜율 : 맞아요. 그런데 아저씨네 집과 저희 집이 다른 층수거든요. 의아해서 계속 지켜봤지요.
혜율 : 엘리베이터 CCTV를 봤어요. 아저씨가 먼저 자기 집 층수 버튼을 누르셨지요.
형도 : 그럼 진솔이도 거기서 같이 내린 걸까요?
혜율 : 왼편에 탄 진솔이가 아저씨를 바라보더라고요. "저희 집 층수 좀 눌러주세요" 하듯이요. 아저씨와 진솔이가 눈을 마주쳤고요.
형도 : 진솔이도 너무 똑똑하네요. 그런데 아저씨가 진솔이네 집이 몇 층인지 아셨을까요.
혜율 : 아저씨가 잠시 고민하시더니, 저희집 층수 버튼을 누르시는 거예요. 어떻게 아신 건지 신기하더라고요. 제가 내려갈 땐 엘리베이터에 사람 있으면 평소 안 탔었거든요. 얼굴을 아는 분도 아녔고요.
형도 : 그건 정말 신기하네요. 진솔이를 평소에 좋아하신 분이실지…
혜율 : 진솔이는 그걸 보고 엘리베이터에서 빨리 내리려고 문 사이에 코를 박았고요. 열리자마자 바로 내려서 집 앞에 온 거지요.
형도 : 진솔이도 정말 똑똑하고, 아저씨도 너무 감사하네요. 안 눌러주셨으면 다른 층에서 또 헤매고 잃어버렸을 수 있잖아요.
혜율 : 그러니까요. 너무 감사해서, 작게나마 사례를 하고 싶어서 아저씨가 내린 층에 벽보를 붙였어요. 그런데 연락이 없으시더라고요. 벽보는 누군가 뗐고요.
홀로 있는 개를 모른척하지 않은 사람. 그 개가 몇 층에 사는지 알고 있던 사람. 그 덕분에 진솔이가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혜율씨는 아직 그를 찾지 못했으나, 기사로나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감사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돼요. 그만큼 크나큰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죽어가던 저를 살려주신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꼭 다시 만나길 바라고, 진솔이를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횡령 의혹' 이선희, 회삿돈으로 고친 아파트…"소유주는 권진영" - 머니투데이
- '이병헌♥' 이민정, 훌쩍 큰 아들 공개 "이제 곧 나보다 커지겠지" - 머니투데이
- 'SNS 재개' 이효리 "노리고 사진 찍는다…화사와 가슴 대결도" - 머니투데이
- 추성훈, '스테로이드' 의혹에 입 열었다…"기분 좋아" - 머니투데이
- 안정훈, 가족과 생이별→4년 만에 中서 '눈물' 상봉…무슨 일? - 머니투데이
- "지금까지 후회"…윤하, 16년 전 '신인' 아이유에 한 한마디 - 머니투데이
- '기적의 비만약' 상륙에 주가 살 찌우더니…이 종목들, 지금은? - 머니투데이
- 베트남 가서 맥주만 마셨을 뿐인데…정일우에게 일어난 일 - 머니투데이
- 안개 낀 주말 아침 날벼락…삼성동 아파트 충돌한 '헬기' [뉴스속오늘] - 머니투데이
- [르포]과수원 주인 졸졸 따르다 300kg 번쩍…밥도 안 먹는 '막내'의 정체 -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