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년, 피란수도 부산] ⑥ 산복도로에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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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는 '산복도로'라고 불리는 부산만의 특성 있는 도로가 있다.
6일 부산시에 따르면 현재 산복도로 길이는 30㎞를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산복도로는 6·25전쟁과 1960∼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났다.
산복도로는 이들 마을을 연결하는 교통망을 구성하면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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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부산에는 '산복도로'라고 불리는 부산만의 특성 있는 도로가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산의 배(腹)를 연결한 도로'라는 뜻이다.
6일 부산시에 따르면 현재 산복도로 길이는 30㎞를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산복도로는 6·25전쟁과 1960∼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났다.
전쟁 중 부산에는 크게 2차례 피란민이 대거 유입되는 일이 있었다.
전쟁 발발 직후 16만명에 달하는 피란민이 한차례 몰렸고, 그 이후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했다가 중공군이 개입하며 뒤로 밀리는 1·4 후퇴 때 26만명이 들어 왔다.
당시 정부와 부산시는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극장, 공장, 여관, 소막사 등 가용할 수 있는 시설들을 피란민을 위해 내놓았지만, 피란민 수에 비춰보면 역부족이었다.
부산시는 당시 피란민에게 방 한 칸을 내어주자며 '한방 내어주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하기도 했다.
수용시설에 들어갈 수 없고 셋방을 구할 수도 없는 피란민들은 주인이 없는 공터나 산비탈의 땅을 다듬은 뒤 임시로 집을 짓고 살았다.
도심 주변에서 구한 박스나 판자, 거적때기 등을 이용해 집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소재는 불에 잘 타 대형 화재로 여러 차례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피란민이 집을 지을 방법은 이것밖에는 없었다.
판잣집은 영주동, 초량동, 수정동 등 부산항 주변과 대청동, 아미동, 대신동, 보수동 등 국제시장 주변 지역의 산비탈에 집중적으로 들어섰다.
이곳들 외에도 범일동, 감천동, 연산동 등 비교적 도심과 떨어진 지역의 고지대에도 판잣집들이 계속 만들어지기도 했다.
산비탈 마을은 전쟁 이후에도 계속 늘어났다.
부산은 전쟁 이후 각종 산업과 수산 분야의 발전이 이뤄지면서 인구가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했다.
산복도로는 이들 마을을 연결하는 교통망을 구성하면서 만들어졌다.
1964년에 동구 초량동에 첫 산복도로가 만들어져 개통된 것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만들어져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은 "산복도로 주변의 마을은 피란민의 생활문화가 현재에도 원형적 경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지역"이라면서 "마을 골목마다 피란 시절의 기억이 묻어 있다"고 말했다.
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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