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줬다가 약줬다가···美, 中 겨냥 반도체 압박에 삼성·SK "등 터지네" [biz-플러스]
대중 수출 압박 수위 높여···韓 기업에 위기
동참 요구 거세지지만···핵심 생산기지 어쩌나
中 공장 장비 반입은 1년 유예해줄 듯
당장 한숨 돌렸지만···근본적 불확실성은 여전
미국이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에 중국 반도체 공장에 대한 장비 반입 유예를 1년 연장한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지 하루 만에 이번에는 대(對)중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중국 경쟁 법안 2.0’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미국의 결정에 따라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모습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 속에서 끼인 신세가 된 한국 기업들은 대처할 수조차 없는 불확실성으로 울상 짓고 있다.
척 슈머 미국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3일(현지시간) 상원 상임위원장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정부의 첨단 기술 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중국 경쟁 법안 2.0 제정 계획을 밝혔다.
외신에 따르면 이 법안은 미국 자본이 중국 기업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한 투자 제한 조치 등을 담았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해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규제한 데 이어 의회에서도 추가적인 수출 통제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법안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반도체 뿐 아니라 바이오, 배터리 등 핵심 첨단 산업 분야에서 중국 기업에 투자를 더욱 강력하게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구상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에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을 핵심 시장으로 삼고 있다. 삼성전자는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과 쑤저우에 패키징(후공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우시의 D램 공장과 충칭의 후공정 공장, 다롄의 낸드 공장을 돌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낸드 생산량의 41%를, SK하이닉스는 D램 생산량의 47%를 중국에서 만들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견제 의지를 강화할수록 한국 기업들을 향한 직·간접적 동참 요구가 강해질 수밖에 없지만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중국을 포기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이날 잭 리드 상원 군사위원장은 “한국, 일본, 인도 등 모든 동맹국을 결합한 안보 체계를 창설하고 싶다”며 중국과의 대립각을 더욱 날카롭게 세웠다. 중국을 겨냥한 안보 동맹에 참여한다는 건 핵심 수출 시장인 중국을 사실상 포기한다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중국 견제 동참 요구가 거세지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로 시간을 벌고 있던 국내 기업들은 중장기 사업 계획을 짜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임원은 “미국이 ‘같은 편’인 한국을 상대로 직접적인 피해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국제 정세의 변화는 기업 입장에서 대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반기 반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지정학적 변수가 워낙 커서 대응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의 중국 내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유예 전망에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미국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내년 하반기까지 중국 공장에 반도체 장비를 반입할 수 있도록 올 10월 만료되는 장바 반입 기간을 1년 연장할 방침을 정하고 각 기업에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FT는 미래가 불분명한 ‘1년 추가 유예’ 대신 무기한적 최종 사용 승인을 발급할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 반입을 금지하도록 하는 규제안을 발표했다. 미국 장비 기업이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제조용 중국에 판매하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서는 미국 허가를 받아 1년 간 규제를 유예해줬다. 하지만 오는 10월이면 유예 조치가 끝나 새로운 장비를 중국 공장에 들일 수 없게 될 상황이었다.
업계에서는 이번 보도 내용과 같이 미국이 한국 기업에 대한 장비 반입 유예 조치를 실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는 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단기적인 유예 조치는 근본적인 해법이 아닌 데다 미국의 대중 압박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기업의 부담은 여전하다는 반응이다.
특히 네덜란드 ASML이 세계에서 독점으로 생산하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중국으로 들일 수 없다는 점에서 중국 공장 운영 방안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SK하이닉스는 10나노급 4세대(1a) D램 제조를 위해 EUV 장비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지만 미국의 대중 제재로 우시 공장 업그레이드가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결정에 따라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울고 웃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 나설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만큼 정부가 외교력을 동원해 국내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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