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북 명맥 끊긴 ‘평양검무’, 우리가 이어요”
[앵커]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 무예나 춤, 공예기술 같은 문화적 유산들은 국가나 지자체가 무형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고 있죠.
이런 무형 문화재엔 이북 5 도의 문화유산도 포함되는데요.
오늘 <통일로 미래로>에선 평안남도 무형 문화재 제 1 호인 ‘평양 검무’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평양에서 시작한 검무, 즉 칼춤이 이제 북녘땅에서는 거의 사라졌고, 남한에서만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데,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예, 힘겹게 후대에 전승은 되고 있지만, 제대로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서 앞으로가 큰 걱정이라고 합니다.
‘평양 검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
최효은 리포터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날렵하게 허공을 가르는 검의 자태, 장단을 타며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움직이는 춤사위가 돋보입니다.
한국의 전통춤 가운데 하나로 북쪽에서 추었던 평양 검무입니다.
조선시대 풍속화의 대가 단원 김홍도의 연회 그림에도 등장하고, 무용계의 전설적인 인물.
최승희도 이 춤을 췄다고 전해집니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무용입니다.
[하응백/문화재청 무형문화재 전문위원 : "삼국시대부터 검무가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여러 가지 변형을 거쳐서 영정조 시대에 지금의 형태로 교방검무 형태로 전승이 된 것이 바로 평양검무입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의 검무. 그 중에서도 평양검무는 섬세하고 역동적인 춤사위가 일품이었다고 하는데요. 평양에서 전해진 검무의 역사와 춤을 잇는 그 현장으로 지금부터 함께 가보실까요.
평양검무는 현재 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평양검무 인간문화재인 정순임 예능보유자가 이 보존회를 이끌고 있는데요.
[정순임/평양검무 예능보유자 : "하나, 둘, 셋, 넷, 덩덩덩따쿵 왼손 위에 주고받고 한 번 더."]
이수자와 문하생은 100여 명 정도로, 일주일에 두 번 모여 검무를 배우고 있습니다.
칼을 가지고 추는 춤인 만큼 어떤 동작도 허투루 할 수 없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엔, 수련 과정에서의 고생담도 늘어놓습니다.
[윤현숙/평양검무 이수자 : "처음에 칼 돌리는 걸 굉장히 힘들었어요. 무섭기도 하고."]
오늘 교육을 위해 이른 아침, 홍성에서 출발했다는 정옥 씨는 평양검무만의 매력을 자랑합니다.
[이정옥/강원도 홍성/평양검무 이수자 : "평양검무는 속 깊숙이 호흡을 길게 하면서 내부에서부터 올라오면서 춤을 추잖아요. 그래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춤을 출 수 있잖아요. 어떤 춤보다도 정말 자부심을 갖고 제가 행복해하면서 춤을 추거든요."]
지금의 평양검무는 제1대 평양검무 예능보유자, 이봉애 선생이 1985년, 정순임 예능보유자에게 가르치면서 맥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정순임/평양검무 예능보유자 : "(어느 날) 검을 칼을 갖고 오셨더라고요. 이걸 갖고 오셔서 하라 그래서 첨에 하니까 엄청 어렵더라고요."]
1923년 평양에서 태어난 이봉애 선생은 평양의 기생학교에서, 김학선 선생을 통해 평양검무를 배웠다고 합니다.
6·25전쟁 뒤 남한에 정착한 이봉애 선생은 1985년부턴 본격적인 평양검무 복원에 나섰다고 합니다.
하지만 검무에 대한 자료가 대부분 소실돼 고증과 문헌 수집에 무척 애를 먹었다는데요.
[정순임/평양검무 예능보유자 : "옛날에 선생님께서 배우신 거 하나 하나 한 동작 한 동작을 가르쳐 주셔서 그걸 합쳐서 이렇게 작품을 만들 때까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선생님 가르쳐 주신 걸로 해서 작품을 한 시간 정도 하다가 지금은 13분으로 전승하고 있습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의상과 검, 춤사위 순서를 갖추게 되었고, 2001년엔 이북5도청이 지정한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검무 중에서도 그 움직임이 가장 역동적이라고 평가받는 평양검무.
저도 기본 동작 하나를 배워봤습니다.
[정순임/평양검무 예능보유자 : "오른손 위에, 왼손 위에. 니꺼 내꺼 돌리고."]
어설프긴 해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을까요?
[정순임/평양검무 예능보유자 : "너무 잘하는 거예요. 나는 몇십 년을 돌렸는데. 금방해도 잘하는 거 보니까 내 밑으로 들어와서 배우실래요."]
칼을 머리 위에서 돌리는 머리쓸기와 땅을 치는 동작, 또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아서 칼을 돌리는 모듬사위는 평양검무만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정순임/평양검무 예능보유자 : "땅을 콕 찍는 거 다른 검무와 다르고, 옆으로 도는 것도 평양 검무는 왼쪽으로만 도는 방향이 돼 있고. 또 머리쓸기와 번개사위는 다른 검무에서는 볼 수 없지 않나 싶고 저희는 ‘까치채’ 라는게 있거든요. 뒷꿈치부터 이렇게 이렇게 나가고."]
사용하는 검 역시 지역에 따라 모양과 재질이 다른데요.
평양검무 칼의 가장자리에 달린 일곱 개의 나비가 동작에 따라 춤을 추듯 움직입니다.
평양검무만의 전통을 이어 나가기 위해 고심하는 보존회에선 기록 작업도 중시하고 있습니다.
[민향숙/평양검무 이수자 : "전승자들의 교육지침서가 되는 평양검무 전수 교본이라든지 또 평양검무 후학들을 위해서 지금 평양검무의 역사. (연구를 위해) 우리 평양검무 보존회에 학술연구위원회가 있어요. 거기에서 평양검무를 기록하고."]
그러나 지원은 없다시피 하고 뜻 있는 사람들이 자비를 털어 운영하다 보니 쉽지 않기만 합니다.
북녘에선 더 이상 계승되지 않는 평양검무는 이제 그 명맥이 한국 남한에 이어져 오고 있는데요. 그리고 평양검무의 미래를 위해선 이북5도 무형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그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입니다.
현재 이북5도청이 지정한 무형문화재는 황해도의 화관무, 평안북도의 평안도다리굿, 함경남도의 돈돌날이 등 모두 스무 개지만, 법적 지원은 전무한 상황입니다.
전국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검무는 평양검무와 진주검무 등 5개인데 평양검무만 아무 지원을 못 받고 있는 겁니다.
[하응백/문화재청 무형문화재 전문위원 : "북한에선 민중예술이 아닌 계열은 다 사라졌습니다. 이분들이 가진 게 우리나라에 마지막 남은 예술이라고 볼 수 있죠. 이분들이 대게 80대 90대가 상당히 많습니다. 실례로 보면 2015년에 평안북도 무형문화재 1호 최학천 옹이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돌아가셨는데 제자도 없어요. 그니까 그 종목은 아예 없어져 버린 겁니다."]
이북5도청 지정 무형문화재를 지원할 수 있는 개정 무형문화재법안이 지난해 가을에 국회에 발의됐지만, 아직도 계류 상탭니다.
언젠가 모란봉 극장에서 평양검무를 추고 싶어했던 스승의 바람을 이루고 싶다는 정순임 예능보유자.
그녀의 마지막 꿈은 남북의 춤꾼들이 칼로 하나 돼 평양에서 검무를 추는 겁니다.
[정순임/평양검무 예능보유자 : "(평양 시민들이 평양검무를 보면 뭐라고 할까요.) 칭찬해주지 않을까요. 잊고 살았는데 남한에서 이렇게 그걸 계속 전승시켜서 이렇게 끌고 왔다는 거를 좋아할 것 같은데요."]
기생문화라는 이유로 북에선 외면받은 평양검무지만 이 역시 우리가 지켜야할 소중한 유산이라는 굳은 믿음이 어려운 가운데도 평양검무의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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