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에서 경제·금융정책 '빅스피커' 변신, 최연소 금감원장 이복현
[편집자주] 윤석열정부가 오는 5월10일 출범 1년을 맞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과 중국의 갈등, 공급망 재편 등으로 대한민국이 복합위기로 휩싸인 1년이었다. 윤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은 이 위기를 돌파하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1년이었다고 자평한다. 머니투데이가 쉼없이 달려온 장관들의 365일을 되돌아보며 윤석열 정부 1년을 정리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51)이 지난해 11월 라임펀드 판매와 관련해 손 전 회장이 중징계를 받은 다음날 기자들과 만나 던진 말이다. 금융권에서는 사실상 손 회장에게 불복 소송을 진행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금융권은 이 원장의 직설적 화법에 놀란 모양새다. 이전까지 금융당국 수장들은 주장의 핵심을 돌려 말하는 간접화법을 구사해왔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검찰 스타일 화법'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후에도 이 원장은 직설적 화법을 이어가며 경제·금융당국의 '빅스피커'로 자리잡았다. 은행들의 예대금리차가 과도하다는 지적했고, 고금리로 서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막대한 이자이익을 통해 성과급 잔치를 벌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원장의 말에 대통령실도 즉각 반응해 같은 기조의 입장을 냈다. 검찰 시절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던 만큼 대통령실과의 관계가 긴밀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 원장의 직설적 발언이 힘을 얻자 상대적으로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 원장은 메시지 대부분이 김 위원장과 협의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또 거의 매일 김 위원장과 통화하고 자주 만난다며 '원팀'임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빅스피커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특히 '소통'을 중요시한다. 금융위원장, 경제 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등 수장급뿐 아니라 내부 직원, 금융권과의 소통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금감원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전통시장 등 민생 행보에도 적극적이어서 출마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원장의 말이 다시 시작됐다. "예대금리차 공시를 손보겠다"는 말을 시작으로 은행들이 손쉽게 막대한 이자이익을 올렸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이런 행위를 '약탈적 금융'이라고 표현하며 막대한 이자이익을 통해 은행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일갈했다. 더불어 "은행이 상생을 외면한 채 이익추구에만 몰두하면 국민과 시장으로부터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고도 언급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며 이 원장을 지원했다.
시장도 빠르게 반응했다. 신한·KB·우리·하나은행은 각 은행별로 서민·중소기업과의 상생안을 마련했다. 대출금리를 깎아주고, 컨설팅 등 비금융지원까지 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올 초 8%에 달했던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금리상단은 5%대로 내려왔다. 은행들이 상생안을 발표하는 자리에는 매번 이 원장이 함께 했다.
은행의 금리에 금융당국이 개입하는 게 '관치금융'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 원장은 "시장이 왜곡되고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비난을 받더라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며 소신을 지켰다.
명석한 두뇌와 노력을 바탕으로 이 원장은 금융감독 업무를 직접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취임 후 빠르게 업무 파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업무 파악 능력이 너무 빨라 감독원 내부에서도 크게 놀랐다"며 "이후 이 원장을 비롯해 금융위원장, 경제 부총리, 한은 총재 등으로 구성된 주말회의에 매일 참석하며 거시경제 이해도 높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는 점도 이 원장의 자신감을 한층 높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원석 검찰총장 등 '윤석열 사단'에서 이 원장은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 불린다. 이 원장은 2006년 윤 대통령이 대검 중수1과장 시절 현대차 비자금,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수사를 진행할 때 손발을 맞췄다. 당시 이 원장은 검찰 내에서도 기업 회계자료를 볼 줄 아는 드문 인력으로 평가돼 차출됐다는 후문이다. 이외에도 2019년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조작 사건을 맡는 등 경제 관련 수사 경험이 많은 이유로 금감원장 자리에 오르게 된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 최측근인 탓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끊임없이 출마설에 휘말리고 있기도 하다.
소통의 형식도 파격적이다. 이 원장이 전 직원들과 처음 만날 때 '면바지와 티셔츠'를 입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당일은 금요일로 금감원 직원들이 일주일 중 유일하게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출근할 수 있는 '캐쥬얼 데이'였다. 이 원장은 직원들에게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 당일 복장을 면바지와 티셔츠로 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로부터 세 달 뒤 이 원장은 금감원의 전일 자율복장 시대도 열었다.
업무 소통 방식도 바꿨다. 기존에는 주로 임원들이 각 부서장에게 현안과 관련해 보고를 받은 뒤 이 원장에게 보고를 했다. 이 원장은 업무와 관련해 궁금증이 생기면 바로 부서장에게 전화해 설명을 듣는다. 이후 곧바로 지시까지 내려 기존의 업무 방식에 새 바람을 불러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감원 관계자는 "때로는 임원을 거치지 않고 원장과 즉시 소통하는 업무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대외적인 소통도 중요시한다. 취임 직후에 이어 올초에도 각 금융업권 대표(CEO)들과 간담회를 열어 자리했다. 간담회에서는 낮은 자세로 CEO들의 애로사항과 고충을 경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금감원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전통시장 방문 등 민생 행보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용안 기자 k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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