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담장에 핀 서민풍 황금색 오월 매화 ‘황매화’[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2023. 5. 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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홑꽃은 황매화, 겹꽃은 겹황매화·죽단화·죽도화로 불려
진달래처럼 화전 재료로도…최대 서식지 계룡산 갑사 황매화 축제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서울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에 녹색잎과 조화를 이루며 황금빛 겹황매화(죽단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2021년 5월2일 촬영

<노오랑 매화 피는 날에 / 안산은 / 화창함과 더불어 바람도 초대했다 / 길손들이 그 바람을 타고 와 / 너의 품 섶에서 안겨 노닌다 / 우리가 날마다 스쳐 갈 동안에 / 이름조차 서로 몰랐더라 / 내 사랑하는 님의 손에 이끌리어 / 너의 품에 나를 안길 적에 / 너의 그 이름 / 황매화라 들어 / 내 님을 향해 소리쳤다 / 나! 저 ~아이 안고 싶어~ / 순간 덥석 / 너의 말 없는 품 섶은 되레 / 나만을 포옹하였다 / 황매화 ~ 너! / 피는 날에 / 내 사랑하는 님은 / 너로 인한 질투마저 접었더라 / 아니! 너를 / 나로 사랑하라 하더라 / 봄날이 있는 한 / 영원히 ~ / 나의 님은 / 너의 처소에 / 질투 없이 / 같이 한다 하더라>

서울 안산에 핀 홑꽃인 황매화. 벚꽃이 지고 겹벚꽃이 피어나듯, 황매화가 지기 시작하면 겹황매화(죽단화)가 피기 시작한다. 2020년 4월15일 촬영

최인택 시인의 시 ‘황매화 피는 날에’다. 시인이 언급한 안산이 경기도 안산인지, 아니면 면 서울 서대문구 안산을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서울 안산은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에 걸쳐 자락길 등에 황매화가 먼저 핀 다음 넓은 곳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죽단화가 무릉도원을 이룬다.

황매화(Kerria japonica (Linne) DC.)는 장미과(Rosaceae) 황매화속(Kerria DC.) 식물이다. 겹황매화는 죽단화·죽도화라고도 불린다. 겹황매화는 꽃이 겹으로 피는데 열매를 맺지 않아 꺾꽂이로 후손을 잇는다.

봄이 한창 무르익어 갈 즈음인 4월 말이나 5월 초에 걸쳐 양지바른 정원의 한 구석에서 유난히 초록빛이 짙은 잎사귀 사이에 샛노란 꽃을 잔뜩 피우는 자그마한 나무다. 잎과 함께 피는 꽃이 매화를 쏙 빼닮았고 색깔이 노랗다고 하여 ‘황매화(黃梅花)’라고 부른다.

황매화란 홑꽃으로 다섯 장의 꽃잎을 활짝 펼치면 5백원짜리 동전 크기보다 훨씬 크다. 황매화는 백매화를 진노란 물감에 착색한 느낌이 든다. 봄이 무르익은 매화랄까. 황매화의 꽃말은 높은 기풍, 숭고함, 죽단화 꽃말은 기다림, 숭고함이다. 중부 이남의 절이나 마을 부근 울타리에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서울 서대문구 안산의 겹황매화(죽단화)가 꽃사태를 이루고 있다. 2022년 5월1일 촬영

이른 4군자 중에서도 으뜸이어서 그런지 봄을 여는 매화(백매·청매·홍매화)를 따르는 이름이 많다. 황매화, 금매화, 물매화, 옥매, 매화바람꽃, 매화마름, 매화노루발, 매화오리나무 등. 5장의 갈래꽃잎과 수술을 가진 장미과 식물 중에 유독 매화란 이름이 많이 붙는다.

이름에 매화가 들어갔지만 매화처럼 고이고이 대접하지 않아도 별 불평 없이 잘 자라주는 나무다.

중국에서 들어온 황매화는 정원 구석에 팽개쳐 두어도 어김없이 꽃을 피우고 담장 밑에 저 혼자 줄지어 잘 자란다. 선비들이 읊조린 시 속에 가끔 등장하는 영광도 누렸지만 매화에 밀려 뒤뜰을 지키는 꽃, 울타리 담장을 지키는 데 만족하며 조용히 살아간다.

특히 죽단화, 겹황매화는 녹색의 줄기가 가늘고 길며 담장을 넘을 만큼 잘 자라 작은 가지마다 노란색의 아름다운 공 모양의 겹꽃으로 핀다. 가지의 선을 살려 수반화로 하거나 계절의 화목류와 곁들여도 풍정이 있는 화재이다. 소품화나 다화 등에도 퍽 잘 어울린다. 황매화는 꽃뿐만 아니라 진달래와 같이 화전(花煎)의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황매화는 사람 키 남짓한 작은 나무이며 많은 곁줄기를 뻗어 무리를 이룬다. 가지나 줄기는 1년 내내 초록빛이며 가늘고 긴 가지들은 아래로 늘어지는 경우가 많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때로는 깊게 패고 이중톱니가 있다. 열매는 초가을에 꽃받침이 남아 있는 채로 안에 흑갈색의 씨앗이 익는다.

서울 안산의 겹황매화(죽단화). 2022년 5월1일 촬영

전국 최대 황매화 군락지인 충남 계룡산 갑사 주변에는 매년 황매화 축제가 열린다. 개화 시기가 빠른 올해는 지난달 20일부터 4월 말까지 열렸다. 철쭉 축제로 유명한 경남 합천·산청 일대의 황매산에도 이름처럼 황매화도 많이 피어있다.

덤불져 무더기로 자라는 생태 특성과 연관돼 황매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에 황부잣집 딸이 사랑하는 총각은 가난해서 결혼 승낙을 못받고 먼 길을 떠나간다. 처녀가 자신 갖고 있던 거울 반쪽을 사랑의 정표로 갖고 떠나간 총각을 기다리던 사이 도깨비 심술로 집안은 망하고 가시덤불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다시 찾아온 총각한테 반쪽 거울을 밖으로 던져 줘 합체한 거울의 반사 빛으로 도깨비를 물리쳤다고 한다. 도깨비가 죽자 가시덤불은 황매화로 변했다.

전설처럼 황매화는 소박하고 씩씩한 서민풍 이미지가 와닿는다고 한다. 매화처럼 고귀하지는 않지만 까탈부리지 않고, 가시덤불이나 울타리에서도 씩씩하게 무성한 꽃을 피우는 서민적 이미지의 꽃으로 친근하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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