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산다] ⑨ 땅끝에서 '청년마을' 꿈꾸다…김지영 회계사

조근영 2023. 5.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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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번 아웃'…MZ세대 감성 한옥으로 워케이션 숙소 창업

[※ 편집자 주 =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인생의 꿈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위에서는 모두 서울로 서울로를 외칠 때,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저 자기가 사는 동네가 좋아 그곳에서 터전을 일구는 이들도 있습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지금 이 곳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만들어갑니다. '친구따라 강남가지 않고'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에서 꿈을 설계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삶을 연합뉴스가 연중 기획으로 소개합니다.]

김지영 마고 대표 [연합뉴스 사진]

(해남=연합뉴스) 조근영 기자 =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번 아웃이 왔어요. 굳이 서울에서만 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하면서 쉴 수도 있는 공간을 찾아다니다 아예 만들어 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죠"

서울 유명 회계법인에서 10여년간 치열하게 경력을 쌓아오던 엘리트 회계사는 전국을 뒤진 끝에 땅끝마을 전남 해남의 시골 마을에서 서까래가 아름답고, 천장이 높은 한옥을 만나 꿈에 그리던 워케이션 공간을 만들었다.

㈜마고의 김지영(38) 대표 이야기다.

그는 해남군 황산면 부곡리에서 워케이션 숙소 와카(WAKA)를 운영하고 있다.

워케이션은 'Work'와 'Vacation'의 합성어로 일과 휴식이 양립하며 여유롭게 머무르며 일할 수 있는 숙박 형태를 말한다.

1년여의 공사 끝에 지난해 6월 문을 연 와카는 어르신들만 남아있던 농촌마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한옥 '와카' [연합뉴스 사진]

"처음에는 웬 젊은 여자가 빈집을 고친다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다니니까 좀 이상한 사람인가 싶었대요."

"어르신들 보기에는 심심하기 그지없는 이 시골 마을이 뭐 좋다고 여기까지 오겠냐 싶었는데 막상 도시에서 젊은이들이 계속 찾아오고, 현지 사람처럼 며칠씩 머무르고 하니까 신기해하면서도 참 좋아하세요"라며 방긋 웃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던 지영씨의 인생 스케줄에 창업하고 해남에 정착하는 과정이 있었을 리 없다.

시작은 코로나였다.

해외 파견을 앞두고 시작된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이어지면서 답답한 일상을 바꿔보고자 전국의 여행지를 찾아다니며 일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노마드 시대가 도래했다 할 정도로 비대면 근무가 일반화되면서 업무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마음 편히 일도 하면서 내 집처럼 편안히 쉴만한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프로젝트 현장 실사단에 설명하는 김지영 대표 [연합뉴스 사진]

대학 시절 전 세계를 배낭여행 다닐 정도로 여행을 좋아했던 경험을 살려 여행과 일을 접목한 워케이션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또래의 젊은이들과 뜻을 같이해 사회적기업육성사업으로 주식회사 마고를 차리고, 시골마을 빈집을 수리해 워케이션 숙소로 활용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1979년도에 세워진 한옥은 뼈대와 지붕을 제외한 벽을 모두 재건축했다.

잠만 자는 숙소가 아닌 일상생활과 일을 함께해야 하므로 침실, 욕실 등도 내 집처럼 편안히 쉴 수 있도록 고급 소재를 사용했다.

와카 운영의 1년 성적표는 어떨까? 성수기에는 예약이 꽉 차는 것은 물론 일 년 절반 정도는 숙소가 대여되는 정도로,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한다.

김 대표는 빈집 고치기와 시골살이를 다루는 콘텐츠 유튜브 등에서는 상당한 유명 인사로 통하고 있다.

본업인 회계사 업무도 놓을 수 없지만 요즘 김 대표가 더 마음을 쓰는 곳은 따로 있다.

와카와 같이 농촌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올 사업 아이템들을 계속해서 발굴하고, 지역의 청년들과 함께 조금씩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지방에 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 아쉽기는 합니다. 그래도 꿈을 함께 실현해 보고자 하는 청년들은 어디에나 있고, 하나둘 마음을 맞춰가는 과정이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눙눙길 프로젝트 [연합뉴스 사진]

최근에는 김 대표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황산면 옥동마을에 청년 마을을 조성하는 사업도 첫 물꼬를 트게 됐다.

부곡리에서 5분여 거리인 황산면 옥동리는 한때 옥공예 마을로 이름을 날리던 곳이었다.

옥 광산이 사라지고, 공예 장인들도 흩어지면서 지금은 명맥만 유지할 뿐이지만 김 대표는 이곳에 청년공동체 공간을 조성해 볼 생각이다.

이름하여 '눙눙길'프로젝트.

황산면 옥공예마을 중심으로 구 옥동초등학교를 활용한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고 논두렁DJ페스티벌, 옥매광산 다크투어 등 세부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마을의 빈집들을 리모델링하면 지금의 와카처럼 제2, 3의 와카는 물론 청년들이 창업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도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도 가져본다.

김 대표는 6일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큰 자산을 가졌는지 모르시더라고요. 도시민들은 쉼을 얻으면서 정주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 지역민들에게는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고 마을을 가꾸어 가는 곳. 이제 시작이지만 살면 살수록 더 큰 꿈을 꾸게 된다"고 말했다.

chog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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