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연구개발특구 50주년...홍릉에서 대덕, 다시 전국으로
한국 최초의 과학기술 연구단지인 대덕특구는 올해 50주년을 맞았습니다.
대덕에 어떻게 연구단지가 조성됐는지, 출연연구기관들은 왜 모여 있는지, 그리고 50주년을 맞이한 오늘날 대덕특구엔 어떤 고민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땅’ 얘기입니다.
● 1973년 한국 최초 과학연구단지를 만들다
블랙홀에 관한 새로운 논문이 발표되면 한국천문연구원을 찾습니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에서는 차세대 쇄빙연구선의 모형 빙성능 시험이 진행됐습니다. 챗GPT에 대한 자문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에너지, 항공, 화학, 생명공학 연구자들이 대덕연구개발특구(대덕특구)에 모여 있습니다.
1978년 3월 한국표준연구소가 출연연 중 최초로 대덕연구단지(현 대덕특구)에 입주한 이후 오늘날 대덕에는 총 26개의 출연연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속 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의 연구기관입니다. 이런 대덕특구의 시작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 최초의 연구단지는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홍릉이었습니다.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를 시작으로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 등이 이곳에 세워졌습니다.
과학기술 연구소 외에 경제 및 사회개발 정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도 설립됐습니다. 근처 공릉동(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까지 더해 ‘홍릉연구단지’라 불렸습니다. 단지 내 기관장들로 구성된 연구단지협의회도 구성됐습니다. 연구원 간의 교류와 기술정보 교환 등이 이뤄졌습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은 1970년대 초 당시 과학기술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전신)는 제2의 연구단지 조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연구기관을 한 곳에 모을 수 있으면서 이들이 확장할 것을 대비한 더 넓은 연구 부지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홍릉연구단지는 당시 산림청 임업시험장의 한정된 부지 내에 있었습니다. 계획된 단지가 아니었던 탓에, 입주 기관마다 협소한 부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좁은 부지에서 연구를 키우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1968년 발표된 ‘과학기술개발 장기종합계획’에서도 ‘연구학원단지’ 조성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연구 자료를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고, 통계와 분석 센터 등 연구 보조시설을 공동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보고서는 또 교육과 연구를 병행하면 과학기술 인재 양성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제2 연구단지를 구상하며 해외 과학도시도 참조했습니다. 과학기술처는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시에 있는 아카뎀고로도크와 일본 이바라키현에 있는 쓰쿠바연구학원도시를 살펴봤습니다.
1973년 1월, 과학기술처는 “연구단지를 조성해 전문화된 연구기관을 설립하고 이들을 한 곳에 집중하면 효율적인 운용과 투자가 가능할뿐더러, 연구원 간의 교류를 활성화하면 연구 능률이 오른다”는 ‘제2 연구단지 건설에 대한 업무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했습니다. 경기 화성시와 충북 청원군(현재 청주시와 통합), 그리고 충남 대덕군(현재 대전시에 편입)이 최종 후보지에 올랐습니다.
그 중 대덕이 한국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전국 모든 교통망이 연결된다는 점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같은 해 5월 28일, 대덕 일대 15km2 부지에, 대규모 계획도시 건설에 대한 대통령 최종 재가가 이뤄졌습니다. 50년 전, 대덕특구의 시작입니다.
50년 동안 대덕특구는 빛나는 성과를 냈습니다. IBS로 널리 알려진 기초과학연구원은 과거 대학과 연구기관 내에서 진행됐던 소규모의 기초과학 연구를 통합하고 정립해 한국 기초과학 연구의 저변을 넓혔습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나로호와 누리호로 이어지는 한국형 우주발사체 연구 및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핵융합연)은 핵융합 발전을 만들어내는 토카막, KSTAR로 1억℃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30초 유지하는 데 성공해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안전성평가연구소는 수십 년간 국내 안전성 평가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그 사이 대덕특구는 대전 유성구 일부 지역까지 포함해 총 49.7km2까지 확장됐습니다.
● 다시 밖으로, 출연연 61%가 분원 운영 또는 계획
현재 짓고 있는 건물 3동을 포함하면 대덕특구 내에만 무려 100개의 건물을 보유하는 거대 출연연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자력연)입니다. 원자력연은 거대한 본원 외에도 전북 정읍시, 경북 경주시에 분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분원에는 각각 첨단방사선연구소와 양성자과학연구단이 위치해 있습니다. 또 원자력연은 경주시 감포읍에 문무대왕과학연구소를 짓고 있죠.
대덕에 본원을 두고 다른 지역에 분원을 설치운영하고 있는 곳은 원자력연뿐만이 아닙니다. 현재 대덕특구에 위치한 총 26개의 출연연 중 16개가 대덕특구 밖에 분원을 운영하고 있거나 분원 설립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대덕특구 내 출연연들이 다시 밖으로 나가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4월 6일 대전에서 만난 이완로 원자력연 안전관리단장은 “원자력연의 경우엔 분원에서만 할 수 있는 연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단장은 바닷물을 원자로 냉각수로 이용하는 연구를 예로 들었습니다. 현재 이 연구는 경주 분원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출연연의 분원을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지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출연연은 연구를 목적으로 운영 재원의 일정 부분 이상을 정부 출연금으로 충당하는 연구기관이기에, 연구 예산을 운용할 때 기획재정부의 심사와 승인을 받아야 하는 까다로움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분원 부지를 확보해주고 연구에 편의를 봐준다면 출연연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원자력연의 정읍 첨단방사선연구소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정읍시는 정읍첨단과학산업단지를 조성하며 원자력연뿐만 아니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안전성평가연구소의 분원을 적극적으로 유치했습니다.
대덕특구의 부지가 확정된 상태에서 최근 새로 설립되거나 분리된 출연연의 경우엔, 더 이상 부지를 확보할 수 없는 점도 분원 설립을 고민케 합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부설 센터로 시작했다가 별도 출연연으로 독립한 핵융합연이 그렇습니다.
정현경 핵융합연 정책전략부장은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중수소를 재료로 연구해왔지만, 앞으로 핵융합에너지가 상용화되기 위해선 중수소-삼중수소 기반의 핵융합 연구가 필요하다”며 “대덕특구 내에선 연구 시설을 확보할 공간이 전혀 없어 분원 설립을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50년 전 대덕연구단지는 집적효과를 구상하며 만들어졌습니다. 출연연 간 교류를 활성화해 연구에도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섭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출연연이 전국 각지로 연구 공간을 옮기는 것이 융합 연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대덕특구 내 연구기관 간의 교류가 원활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연구기관들이 대덕특구에 모여있긴 하지만 폐쇄적인 구획 부지 내에 각각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전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대덕특구 재창조’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대덕특구의 향후 50년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대덕특구가 출범 10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도 우리나라 원천기술의 산실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모두가 관심 있게 지켜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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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5월, 대덕연구개발특구 50주년, 땅 이야기
[김태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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