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중국산 배터리' 함께 하는 이유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다변화 시행
미국·중국·유럽 등 지역별 맞춤전략
워치인더스토리는 매주 토요일, 한 주간 있었던 기업들의 주요 이슈를 깊고,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는 코너입니다. 인더스트리(산업)에 스토리(이야기)를 입혀 해당 이슈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과 기업들의 속내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미국 배터리 공장 설립 의미는
지난달 현대차그룹은 국내 전기차 부문에 향후 8년간 총 24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향후 지향점을 전기차와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로 정한 만큼 당연한 투자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곧이어 현대차그룹은 SK온과 미국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키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오는 2025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 바토우 카운티에 연간 35기가와트시(GWh), 전기차 약 30만대 분의 배터리 셀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입니다. 양측은 총 50억달러(한화 약 6조5000억원)를 공동 투자하고 지분은 각 50%씩 보유할 예정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SK온과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키로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양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선제적인 투자입니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 충분한 양의 배터리를 확보해둬야 합니다.
더불어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미국 현지에 배터리 공장을 세우는 것이 유리합니다.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공장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미국 현지에서 SK온과 합작 공장을 통해 생산된 배터리를 장착하면 미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SK온과 합작공장을 설립하게 된 배경입니다.
미국시장·중국시장 '따로따로' 전략
사실 미국 정부의 IRA는 중국을 겨냥한 것입니다. 전기차 배터리는 물론 이차전지 소재 등에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이 미국 IRA의 주된 목적입니다. 미국 정부가 IRA에서 "미국 내 전기차와 배터리 업체가 보조금 혜택을 받기 위해 미국이나 미국 우방국의 원료를 이용·생산해야 한다"고 규정한 이면에는 중국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완성차 업체 입장에선 마냥 중국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눈치만 보다가 자칫 중국 시장을 잃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현대차그룹은 현재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해야만 합니다. 현대차그룹에게는 북미도, 중국도 모두 중요한 시장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지역별 맞춤형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중국 배터리 업체 CATL로부터 수천억 원대 배터리를 공급 받았습니다.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EV), 기아 레이(2세대) EV 등에 CATL 배터리가 사용됩니다. 올해는 현대차그룹의 CATL 배터리 사용량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최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쩡위친(曾毓群) CATL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을 만나 협력 강화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만간 양측 실무진들이 만나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준비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현대차그룹이 CATL과 협력을 강화하려는 것은 중국 시장을 위한 사전 포석임과 동시에 안정적인 배터리 수급을 위한 선택입니다.
지역별 배터리 협력업체 다변화
이처럼 현대차그룹은 각 지역별로 배터리 수급 전략을 다양하게 가져가고 있습니다. 북미 시장의 경우 IRA에 대응하기 미국 내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중국 시장의 경우 CATL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기회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미국 포드가 CATL과 미국 합작공장을 설립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현대차그룹이 CATL과 미국 합작공장을 설립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현대차그룹은 중국과의 끈을 놓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 배터리 수급 효과도 볼 수 있습니다.
유럽 시장은 LG에너지솔루션과의 협력을 통해 배터리 수급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유럽에 배터리 공장이 있는 만큼 현대차 유럽 공장과의 협업이 용이합니다. 더불어 현대차그룹이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도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작사인 HLI그린파워를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전략을 세웠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글로벌 시장 여러 곳에 진출해 있는 만큼 현지 사정에 맞는 맞춤형 전략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경우 IRA가 있고 유럽도 리튬, 니켈 등 배터리 원료의 유럽 외 의존도를 낮추는 핵심원자재법(CRMA)을 도입할 예정이어서 어느 한 업체에만 의존해 배터리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물밑 움직임 빨라졌다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전기차 투자계획 발표 후) 배터리 투자 계획이 없어 아쉽다는 의견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대외적으로 아직 발표를 하지 않을 뿐이지 내부적으로 매우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고, 결과물이 시간을 두고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배터리 투자에 대한 내부 논의를 진행 중입니다. 그룹 전체가 전기차로 방향을 잡아둔 만큼 배터리에 대한 투자도 당연히 따라가야 한다는 분위기입니다. 통상 배터리는 전기차 가격의 약 40%를 차지합니다. 따라서 누가 얼마나 고성능의 배터리를 보다 싸게 확보할 수 있느냐가 전기차 시장의 패권을 쥘 수 있는 핵심입니다.
현대차그룹은 보다 다양한 업체들과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조만간 LG에너지솔루션과도 북미 합작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국내 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배터리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해외 현지의 규제 등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생각인 겁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배터리 수급 전략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는 2025년이면 배터리 수요가 공급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안정적인 물량 확보를 위해 중국을 포함한 공급망 다변화는 적절한 전략이라는 평가입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며 "현대차그룹이 중국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전략적으로 옳은 선택"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재웅 (polipsycho@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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