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글로벌픽] 새우의 고래 길들이기, 사우디아라비아의 밀당
글로벌 핫이슈의 맥을 보다<1>
한국인에게 중동은 석유와 사막으로 대변되는 열사의 지역이다. 한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한 고마운 나라들이 중동에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우리와는 다른 문화와 종교에 매몰된 먼 나라로 인식돼 왔다.
그런 중동이 수년 전부터 요동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2020년 화성 탐사선 아말(Amal, 희망)을 발사했고 화성 표면의 생생한 사진을 지구로 전송하고 있다. 카타르는 2022년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을 열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을 개최한다. 사막과 열사의 나라로 인식돼 온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겨울 스포츠 축제가 열리는 것이다. 또한 네옴 시티(Neom City)로 불리는 전무후무한 대역사(大役事)를 준비 중이며, 우리나라의 부산과 2030 엑스포 유치를 위해 경합하고 있다, 중동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이끄는 산유국으로서 막대한 석유 판매 수익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해온 중동의 실질적 리더 국가다. 1945년 미국과 동맹을 맺은 후 지난 80여 년 동안 미국의 안보 우산 하에서 비교적 안정적이며 수동적인 국가 운영을 해 오던 사우디아라비아가 2020년 이후 세계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 국가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석유 의존국에서 글로벌 산업 강국으로 국가 체제를 탈바꿈하려 하고 있다. 서아시아의 주요 산유국들이 탈석유화 정책을 펴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되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는 상상 이상이다.
비전 2030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주변국과의 외교적 안정이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는 그 동안의 타성에서 벗어나 외교적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전통적인 동맹 관계였던 미국과 전략적 거리 두기를 함과 동시에 G2시대 미국의 유일한 상대인 중국과의 거리 좁히기를 시도하며 미국과 중국을 저울질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이후 미국중심주의 정책을 펼치며 중동에서 점차 철수하고 있고, 현 바이든 대통령도 외교의 중심축을 중동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런 미국의 대중동 전략 변화와 이로 인한 중동의 힘의 공백을 메우고 싶어 하는 중국을 적절히 활용하며 중동의 맹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오랜 앙숙관계였던 이란과의 외교 관계 복원을 선언한 현장은 베이징이었고, 중국의 철강 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제철소를 건설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OC)에 부분적이지만 가입했으며,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지정하려는 중국을 지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 국제 무대와 세계 무역 시장에서 미국과 대등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중국을 활용해서 미국을 견제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치밀한 계산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중동의 역내 정치에서도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시 자국민에게 대량 살상무기를 사용한 책임을 물어 아랍연맹(Arab League)에서 퇴출된 시리아를 2023년 5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리는 아랍 정상회의에 초대하려 한다. 자국에 위협이 되는 쉬아벨트를 이루고 있는 이란과 시리아를 분리시키고 중동의 맹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며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함은 물론 비전 2030의 안정적인 수행을 위해 역내 정치적 안정을 기한다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마음이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오랜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이어온 미국과의 손절을 상상할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자국의 안보를 돈으로 사지는 않고, 정치·외교적 독립을 하겠다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야심과 정치적 판단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새우가 고래를 움직이는 진귀한 풍경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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