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주년 5·18] ② 특전사동지회 놓고 '둘로 갈라진 광주'
[※ 편집자 주 = 5·18 민주화운동이 마흔세돌이 된 올해는 '사죄'의 해였습니다. 오랜 세월 부정당하거나 왜곡에 시달리던 5·18의 역사에 비춰보면 상당한 진전이지만 공감대 없는 일방적인 화합 행보가 극심한 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연합뉴스는 43주년을 맞은 5·18 광주의 현실을 살펴보고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를 되짚어보는 3편의 기사를 송고합니다.]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5·18 일부 단체와 특전사동지회의 '대국민공동선언'을 두고 광주 5·18은 둘로 갈라졌다.
5·18 진상규명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5·18 단체와 기만적인 화합을 용납할 수 없다는 지역 사회의 비판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특전사 군가에 어그러진 화합 행사
지역 시민사회는 대국민공동선언을 처음부터 반대했다.
'용서와 화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사죄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이유였다.
이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가는 상황에서 특전사 군가인 '검은 베레모'를 대국민공동선언 행사에서 부르기로 한 것이 알려지자 분위기는 급속히 악화했다.
검은 베레모는 5·18 최후 항쟁을 유혈 진압한 특전사 대원들이 승전가처럼 부른 군가다.
행사에 호의적이던 5월 어머니들마저 "용납할 수 없다"며 돌아섰고, 5·18 단체 중 하나인 유족회도 행사 불참을 선언했다.
결국 검은 베레모를 부르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이미 떠나버린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5·18 단체 중에서도 일부만 화합하는 모양새가 됐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갈등
반쪽짜리 화합이라는 지적과 함께 행사를 미루고 충분한 공감대를 얻은 다음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5·18 부상자회와 공로자회는 대국민공동선언식 행사를 강행하면서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눈을 피해 5·18 묘지를 기습적으로 참배하기도 했다.
설상가상 특전사동지회는 이 과정에서 '우리도 피해자'라거나 '5·18 진압작전은 질서유지를 위한 행위였다'는 등의 발언을 내놓으며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광주 지역 사회는 크게 분노했다.
후속 대응을 위해 197개 시민사회단체가 '오월정신 지키기 범시도민 대책위원회'의 이름으로 모였다.
사실상 광주·전남에서 활동하는 주요 시민사회단체가 대부분 참여했다.
이들은 당장 대국민공동선언문 폐기를 촉구하며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섰다.
5·18 민중항쟁 행사위원회는 5·18 두 단체를 행사위원장단에서 제명했고, 민주화 원로들이 모인 전남대 민주동우회도 설립 이후 처음으로 부상자회 황일봉 회장의 회원 자격을 박탈했다.
대국민공동선언에 축사를 보낸 국회의원들과 지자체장들도 대부분 축사를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5·18 부상자회와 공로자회 역시 행사위에서 자진 탈퇴하는 등 강경한 태도로 맞대응하면서 5·18을 둘러싼 지역 내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체 진상규명' 반전 카드로 통할까
5·18 부상자회와 공로자회가 지역 사회 반대를 무릅쓰고 대국민공동선언 행사를 강행한 이유로 '진상 규명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것을 들었다.
특전사단체와 화합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5·18 진압군 출신 특전사들의 고백을 끌어내 직접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취지다.
수세에 몰린 두 단체가 2차례에 걸쳐 5·18 진압작전에 투입된 특전사 부사관·장교 출신 인사를 초청한 증언 행사를 연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곧이어 특전사동지회도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 활동을 시작하겠다고 공표했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특별법까지 만들어가며 겨우 출범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국가 차원의 공식 조사 활동을 하는 상황에서 독자 노선을 고집하는 자체 진상조사에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다는 이유다.
두 단체가 야심 차게 준비한 '진압군 증언 행사'도 공식 기구의 조사로 이미 알려진 '재탕' 수준이거나 핵심이 빠진 '맹탕'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월 대책위는 "국가 차원의 조사활동에는 협조하지 않으면서 자체 조사위 출범이 진실규명의 척도처럼 주장하는 것은 이율배반적 행위"라며 "책임 있는 진상규명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앞으로 활동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iny@yna.co.kr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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