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진짜 큰일났다?” 일본 50조·독일 7조 ‘쩐의 전쟁’ 반격 [김민지의 칩만사!]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정부로부터 매년 3000억엔(3조원)의 국비를 지원 받아 사업 계획 달성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겠다.”(일본 주요 대기업과 정부와 공동 출자해 설립한 반도체 회사 ‘라피더스’의 히가시 데쓰로 회장)
반도체를 둘러싼 전세계 주요국의 ‘쩐의 전쟁’이 막을 올렸습니다. 미국에 이어 일본과 유럽도 자국 내 반도체 역량 확대를 위한 수조원의 지원금을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그간 전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70% 가량을 차지하던 한국과 대만에서 벗어나겠다는 강력한 의지입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0년 후면 반도체 시장이 지금과 전혀 다르게 변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자칫하면 20년 넘게 지켜온 ‘반도체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줘야 할 지도 모릅니다. 조 단위의 총알을 장착하고 공격적으로 반도체 역량을 강화하는 강대국들 앞에서 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독일 최대 반도체 기업인 ‘인피니언’은 지난 2일(현지시간) 독일 드레스덴에서 신규 반도체 공장 착공식을 열었습니다. ‘스마트 파워 팹’이라 불릴 이 공장에 인피니언은 무려 50억 유로, 한화 약 7조3800억원을 투자합니다. 인피니언의 역대 최대 규모 공장이죠.
이날 착공식에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언 유럽연합(EU) 진행위원장이 참석했는데, 그의 발언이 참 흥미롭습니다.
“유럽은 여전히 한국과 대만 반도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고, 이곳은 언제든 긴장감이 고조될 수 있는 지역이다. 우리 모두는 지정학적 위험이 얼마나 급격하게 커졌는지 경험하고 있다. 유럽 내 반도체 대량 생산을 더 늘려야 한다.”
한국과 대만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와 함께 반도체 자립을 강조한 셈이죠.
EU는 이번 독일 인피니언의 신규 반도체 공장 건설에 10억유로, 한화 약 1조 4700억원를 지원할 예정입니다. 지난달 최종 합의한 EU 반도체법의 일환입니다. EU는 유럽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기존 9%에서 2030년 20%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430억 유로, 한화 약 63조4000억원을 지원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현재 대만 TSMC, 미국 전력 반도체 업체 울프스피드도 독일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조율 중입니다. 미국 인텔은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메가 팹’이라 불리는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이탈리아에는 스위스 전력 반도체 업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통합 SiC 웨이퍼(반도체 기판)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고, 이탈리아 정부가 투자액의 30%를 지원합니다.
일본의 기세도 무섭습니다.
히가시 데쓰로 라피더스 회장은 최근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업 계획 달성을 위해 필요한 자금 5조 엔, 한화 약 50조원을 조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라피더스는 지난해 도요타, 키옥시아, 소니, NTT, 소프트뱅크 등 일본 주요 대기업과 정부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반도체 기업입니다. 출범 당시 2나노 공정 반도체를 2025년 시험 생산하고, 2027년부터 양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2나노 공정은 아직 전세계 어떤 기업도 성공하지 못한 차세대 기술이라서 전세계 반도체 업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라피더스의 믿는 구석은 바로 정부입니다. 라피더스는 목표 달성을 위한 기술 개발에만 2조 엔(약 20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부로부터 매년 3000억 엔(약 3조원)의 국비를 지원 받아 반도체 생산 라인 건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도입 등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민간 조달은 쉽지 않으니 국가 차원의 중장기적인 지원을 기대하는 겁니다. 반도체 공장 건설 등에 투입할 나머지 3조 엔(약 30조원)은 주식 상장을 통해 조달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한국과 대만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은 전세계 반도체 생산의 60~70% 정도를 과점해왔습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대만 TSMC는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과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죠.
하지만 미국과 유럽, 그리고 전통 강자 일본이 반도체 공급망 시장에 뛰어든 이상 앞으로의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정부는 경기도 용인을 중심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삼성전자가 300조원을 투자해 5개의 반도체 제조 공장을 신설하고, 150여개의 소재·부품·장비 업체들 및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들을 유치할 예정입니다. SK하이닉스도 용인에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 중입니다.
그러나 삼성·SK를 제외한 글로벌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생산 시설 투자는 아직 요원한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전문 인력을 대폭 늘리고 삼성·SK 인프라를 활용해 해외 투자 유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특히, 인재에 있어서는 국내 인력 유출을 방지하는 동시에 해외 고급 인력 유치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최근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김정호 KAIST 교수는 “삼성 파운드리에는 2만명, 대만의 TSMC에는 6만명이 있고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 삼성시스템LSI에는 1만명, 미국의 퀄컴에는 4만5000명의 인력이 있다”며 반도체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카이스트 등 국내 대학에 외국인 학생들이 많은데, 졸업한 뒤 한국에서 취업이 어렵다”며 “신속 영주권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덕균 서울대학교 교수도 “미국은 인도, 대만, 한국 등 고급 인력에 대해 H-1B(전문직) 비자 등을 발급하며 공격적으로 해외 인력을 유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해외 인재가 귀국하면, 연구비를 주거나 창업 시 창업 비용을 주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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