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발 폭락 사태, 2007년 루보 사건과 닮은 듯 다른 주가조작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송은경 기자 = 대규모 금융다단계 세력의 주가조작 의혹이 여의도 증권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5일 증권가에선 이번 외국계 증권사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 창구 매물로 인한 주가 폭락 사태로 수면 위로 드러난 대규모 주가조작 의혹은 200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코스닥 상장사 루보 주가조작 사건과 유사하지만 몇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분석한다.
두 사건은 조직적인 자금 동원과 치밀한 주가 관리 등으로 금융감독당국과 수사망을 피해 온 점은 닮았다.
그러나 루보 사태는 ▲ 대상 기업의 대주주가 작전에 가담한 점 ▲ 기간이 6개월 정도로 짧다는 점 ▲ 증권사 출신의 전문 주가 조작 기술자가 끼었다는 점 ▲ 특정 차명계좌를 활용해 매매가 이뤄졌다는 점 ▲ 피의자와 피해자가 나뉜다는 점 등에서 이번 사태와 차이가 있다는 것이 증권가의 분석이다.
루보 사건은 과거 제이유그룹의 전 부회장 김모씨 형제 등이 2006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회원모집 형태로 1천600억원대 자금과 800여개 차명계좌를 동원해 코스닥 상장사 루보 등의 주가를 조작해 1천억원 안팎의 이득을 챙긴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이들은 당시 전국을 순회하며 투자설명회를 개최해 다단계 사업의 피해자로서 궁박한 처지에 있던 옛 제이유 회원 등을 상대로 기업인수합병 등을 통해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현혹해 단기에 대규모 계좌와 자금을 동원했다. 계좌와 자금을 제공한 사람 수가 3천여명에 달했다.
당시 이 세력은 돈과 회원을 모으기 위해 전국 지역별 팀장과 교육팀, 홍보팀, 회원관리팀, 사업설명회 운영팀 등을 두고 증권사 출신의 시세조종 전문가 등으로 주식팀을 구성했다. 중앙에서 지시사항을 이메일과 팩스 등으로 보내면 지역팀장이 회원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써 수사망을 피할 수 있었다.
시세조종은 증권 전문가들이 김씨 형제가 각자 동원한 계좌를 이용해 고가 매수나 통정매매 주문을 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수사와 감독기관이 작전세력의 IP를 추적하는 것을 따돌리기 위해 사무실 한 곳에는 유선인터넷과 무선중계기,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다른 사무실에서는 무선으로 주문을 내도록 했다.
특이한 점은 기업 대주주가 작전에 가담했다는 점이다. 이 세력은 사전에 대주주와 접촉해 지분 처분을 합의하고서 실제 사채를 동원해 지분을 사들였다. 루보 주가는 1천원대에서 5만원대까지 40배까지 올랐다. 검찰 수사 발표 이후 주가는 2천원대로 폭락해 깡통 계좌가 속출했다.
반면 이번 사태는 자금 규모가 조단위에 이른다는 점에서 루보 사건과 비교해 상상을 초월하는 역대급이다.
또 투자 종목이 9개로 여럿인 데다, 모두 시장에선 작전 대상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자산가치주로 꼽히는 종목들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대성홀딩스, 삼천리, 서울가스 등은 보유 부동산 등 자산가치 대비 주가가 저평가된 종목으로 유명하다. 다우데이타, 선광, 세방 등도 가치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종목 주가는 2020년 이후 최고 18배 가까이 뛰었다.
대규모 주가 조작이 감시망을 피해 3년여간 가능했던 것은 증권사의 장외파생상품인 차액결제거래(CFD) 계약이 활성화된 데 따른 것이다. CFD는 현물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초자산의 진입가격과 청산 가격 간 차액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장외 파생상품 거래다. 개인이 국내 증권사와 계약을 맺으면 이 증권사가 다시 외국계 증권사에 맡겨 실제 투자 주체가 외부로 노출되지 않고 기관이나 외국인으로 잡힌다.
금융위원회가 2019년 11월 개인 전문투자자 지정 요건을 완화하면서 CFD를 하는 개인 전문투자자가 2만5천명으로 늘어났다.
증권가에선 CFD를 개인이 매수했다고 하더라도 겉으로는 기관과 외국인이 이들 가치주를 장기 투자 목적으로 사들인 것으로 나타나 눈속임이 가능했던 것으로 풀이한다.
세력 집단을 보면 다단계식 조직력과 치밀함이 엿보인다. 주가조작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라덕연씨는 증권가에선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주식시장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라씨는 2019년 한 세미나에서 스스로를 주식·선물·옵션 증권방송 출연경력 10년의 전문가로 내세웠다.
이번 세력은 라씨가 미등록 투자컨설팅업체 H사를 설립해, 영업팀과 매매팀을 두고 투자자를 모집한 뒤 팀원들이 매매를 대리해왔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들 세력은 투자자 명의로 휴대전화 수백대를 개통하고 주식 계좌를 만들어주고 직접 가서 매매를 대리해줬기 때문에 감시망을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드러난 이번 사건의 주력 세력을 보면 증권사 직원이 연루되지 않았고, 대상 종목을 장기간 투자했다는 점에서 다른 주가조작과 다르다"며 "라씨 등 주요 가담자의 시장 교란과 불법 유사 수신과 투자자문 행위는 명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자금 동원 방식을 보면 투자 수익률이 30%가 넘으면 정산해주고 다시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가 이뤄져 먼저 투자한 사람은 이익을 거두고 뒤에 자금을 댄 투자자는 피해를 봤을 수 있다. 초반에 진입했다가 빠져나오지 않고 재투자를 한 경우 역시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투자자는 적극 가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과거 주가조작 사건에서 통정매매 입증은 특정 계좌들을 대상으로 매수와 매도 주문이 오간 내역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가능하지만, 이번 사태에선 꼬리표가 달리지 않은 다수의 CFD 계좌의 거래내역을 봐야 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경우에는 매매주문을 낸 다수의 CFD 계좌의 실제 투자자 정보와 거래내역, 주요 인물들과 다단계에 들어간 투자자 간 대화 내용 등을 확보해 가담자를 가려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indigo@yna.co.kr, nor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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