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유축 하세요” 육휴 없는 미국의 ‘모유 감소’ 해결법

2023. 5. 6. 06: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일하는 엄마들이 모유 수유를 포기했다면, 그 책임은 직장에 있다”

미국에서 수유부에 대한 모유 유축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 직장을 근로자가 고발할 수 있는 이른바 ‘유축법(Pump Act)’이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됐다. 여성의 직장 복귀와 동시에 급감하는 모유 수유율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코로나19 기간 ‘분유 부족’ 사태의 해법으로 주목받았던 유축법이 복직을 앞두고 모유 수유 중단의 기로에 선 엄마들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국의 모유 수유율이 우려의 대상이 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2019년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아기들은 태어나면서 83%가 모유를 먹지만, 생후 3개월에는 69%, 그리고 6개월이 되면 이 비율은 56%로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엄마들이 직장으로 복귀하면서 모유 수유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국가가 보장하는 유급 휴직이 없는 나라다. 즉, ‘워킹맘’이 아이에게 직접 모유를 줄 수 있는 기간은 가족·의료휴직법을 통해 받을 수 있는 12주간의 무급 휴직뿐이다.

케이시 로젠-캐롤 로체스터대 의료센터 박사는 “우리는 모유 수유율이 엄마가 직장으로 돌아올 때 극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정기적으로 모유를 비워내지 않으면, 모유가 줄어들고 결국 중단에 이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미 의회는 일찍이 모유 수유율을 높이기 위해 움직였다. 지난 2010년 직장 내 수유실 제공을 의무화 한 것이다. 당시 의회는 건강보험개혁법(ACA) 내에 생후 1년 미만의 아이를 둔 수유부 근로자에게 ‘합리적인 휴식 시간’과 ‘화장실이 아닌 개인적인 공간 ‘을 제공토록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로이터]

문제는 ‘수유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대상에 일부 제한을 두면서 법의 사각지대가 생겼고, 법이 생긴 이후에도 수많은 수유부들이 눈물을 머금고 수유를 중단해왔다는 점이다. 게다가 고용주가 근로자의 모유 수유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해도, 근로자 입장에서 이렇다할 법적 대응을 할 근거도 마련돼있지 않았다.

직장 내 모유 수유 문제가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였다. 지난해 공급망 불안으로 분유 생산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분유 제조업체의 리콜 사태가 겹친 것이다. 미국 전역은 ‘분유 대란’으로 들썩였다. 상점의 분유 코너는 텅 비었고, 분유를 구하지 못한 부모들은 발만 동동 굴려야하는 상황이 수 주나 이어졌다. 결국 여론의 시선은 분유를 대체할 수 있는 모유로 쏠렸고, 모유 수유를 지원하기 위한 각종 노력들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모유 수유에 대한 관심에 힘입어 2021년 발의된 유축법이 지난해 12월 23일 1조7000억달러의 연방 지출 패키지의 일환으로 상하원을 통과했다. 택시와 트럭운전사, 가정 간병인 등 그간 모유를 수유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근로자들이 법의 테두리에 포함됐다.

또한 수유부 근로자가 유축을 하는 동안 직장이 어떠한 시간적, 공간적 여건을 마련해줘야하는 지 구체적인 방안도 모두 법에 담겼다. 법은 지난해 29일 시행돼 일정 기간 계도기간을 거쳐, 지난 28일에는 법을 위반한 고용주를 근로자들이 고발할 수 있는 조항까지 모두 공식 시행됐다.

[로이터]

새로운 법에 따르면 수유실은 깨끗하고, 각종 시야로부터 차단돼 있어야하고 누군가가 갑자기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어야 한다. 또한 법은 수유실이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기능적’인 면도 모두 갖춰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수도시설과 모유를 저장할 수 있는 냉장고를 갖추는 것 등이 포함된다.

또한 유축법에 따르면 고용주는 근로자들이 모유 유축을 할 수 있는 충분한 휴식시간을 제공해야한다. 유축에 소요되는 시간은 근무 시간으로 간주된다. 한 미 언론은 “대략적으로 8시간 근무자의 경우 하루의 2~3번, 회당 15~30분의 유축 시간을 보장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유축법이 ‘모유 수유’의 책임을 엄마들이 아닌 고용주로 보고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야하는 것은 경제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수유를 중단해야하는 엄마들이 아니라 충분한 수유 여건을 마련해주지 않은 직장의 탓이라는 설명이다.

케이티 코지마늘 미네소타대 공중보건대학원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일을 하면서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은 너무 큰 부담을 안고 있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유축법은 책임이 직원이 아닌 고용주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balme@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