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상권이 힙해진 이유? '뜨는 상권'의 법칙[상권 리포트①]
임대료 2배 뛴 강남, 가장 성장한 업종은 병원
[스페셜 리포트]
상권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상권에 다시 피가 돌기도 하고 요란하게 뛰던 상권이 잠잠해지며 순환한다. 몰락하는 상권에는 쇠퇴의 이유가 있고 살아나는 상권에는 부활의 이유가 있다.
상권의 핵심은 변화를 이끄는 게임 체인저다. 사람들의 발길과 관심을 모으는 게임 체인저의 존재는 다양하다. 작은 가게가 될 수도 있고 유명 기업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될 수도 있다. 맛집일 수도 있고 대형 쇼핑몰일 수도 있다. 게임 체인저 하나가 거리 전체의 경쟁력이 되기도 하고 거리 하나가 도시 전체를 이끄는 힘이 되기도 한다. 대체 가능성은 상권의 회복력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소였다.
지난 몇 년간 상권을 뒤흔드는 가장 큰 외부 요인도 있었다. 코로나19 사태와 사회적 거리 두기다.
지난해 4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됐고 하늘길이 다시 열렸다. 거리 두기 해제 이후 1년 동안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상권들의 희비도 엇갈렸다. 유령 도시 같던 상권이 활기를 되찾기도 했고 어떤 상권은 시들해졌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요 상권의 변화를 따라가 봤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171만 명이다. 이들은 가장 먼저 ‘대한민국 상권 1번가’ 명동으로 향했다. 이 기간 서울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이 방문한 자치구는 명동이 있는 중구였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절반 이상이 비어 있던 공실도 대부분 채워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42.1%였던 명동 소규모상가의 공실률은 올해 1분기 21.5%까지 떨어졌다.
코로나19 사태 동안 유니클로·H&M 등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명동을 떠났지만 애플스토어·블루보틀·아이다스 등 명동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다시 거리를 채웠다. 그동안 부동의 1위였던 명동 상권 임대료는 2019년에 비해 절반 이상 떨어졌다(부동산R114). 임대료 조정과 외국인의 발길로 살아난 명동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명동이 뜨고 짐을 반복하는 이유는 대체할 만한 동네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지리적 특성, 남대문 시장과 대형 백화점을 끼고 있는 주변 환경, 고층 쇼핑몰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길거리 풍경 등은 명동만이 갖고 있는 유·무형의 인프라다. 이 인프라는 적정한 때가 되면 새로운 랜드마크를 끌어들이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또 다른 핵심 상권인 강남은 ‘오늘은 완벽하지만 내일은 미지수’라고 평가할 수 있다. 교통과 유동 인구가 떠받치는 만큼 코로나19 사태 이후 회복세는 빨랐다. 하지만 고공 행진하는 임대료로 대기업도 개인 사업자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선 상권의 회복세는 매출에서 볼 수 있다. 빅 데이터 전문 기업 나이스지니데이타에 따르면 올해 2월 강남역 상권의 평균 매출은 2746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7%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월 2210억원) 수준도 뛰어넘었다. 비었던 작은 상가에는 점포가 다 들어찼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22%였던 강남대로 소규모 상가의 공실률은 올해 0%를 기록했다.
치솟는 강남역 임대료는 2021년부터 명동을 앞질렀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강남역 9·10번 출입구 상권의 평당 평균 임대료는 2019년 54만4800원에서 2022년 110만8000원으로 2배 넘게 뛰었다. 반면 명동 상권의 평당 평균 임대료는 2019년 156만9300원에서 66만4000원으로 2배 넘게 줄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연구원은 “직장인 등 내국인 유동 인구가 많고 트렌드에 민감한 강남 상권은 시간이 지날수록 임대료가 올랐지만 관광객 의존도가 높은 명동 상권은 관광객이 줄면서 공실이 늘고 자연스럽게 임대료가 낮아지는 특징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나이스지니데이터에 따르면 강남 상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성장한 업종은 병원이었다. 올해 1분기 의료 업종의 월평균 매출은 전체의 68%를 차지했다. 방한한 외국인들과 마스크가 해제되면서 외모에 관심이 커진 의료 소비자들이 강남을 찾았다는 분석이다.
대학 상권은 이대와 신촌을 살펴봤다. 900m 정도 떨어져 있는 두 상권의 희비도 극명했다. 이대 앞은 메인 거리인 이화여대길 1층에도 공실이 넘쳐났다. 신촌 상권은 대부분 공실이 채워졌고 결제 금액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이대 상권의 몰락은 ‘고객 포트폴리오’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명동은 내국인·외국인·남녀노소 등 가장 다양한 고객층을 갖고 있다. 강남역은 직장인, 학생, 인근 거주자,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가릴 것 없는 다양한 수요를 끌어들인다. 신촌은 비교적 넓은 지역, 대학 상권의 상징성, 현대백화점을 끼고 있다는 장점으로 젊은 소비층을 유입시키고 있다. 이에 비해 이대 상권은 수요층이 대단히 협소하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의 규제까지 더해져 암흑기가 지속되고 있다.
재택근무가 풀리며 호황기를 맞은 오피스 상권은 여의도와 판교를 들여다 봤다. 이 두 상권은 ‘법인 카드’ 효과와 소득 수준이 높은 주 단지도 끼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두 상권에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한 것은 현대백화점이다. 더현대 서울의 등장으로 여의도에는 새로운 고객이 유입됐다. 경험을 중요시 여기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공유가 일상인 젊은이들이다. 이들 덕에 ‘주말 수요’도 생겼다. 오랜 터줏대감들이 자리하고 있는 여의도 상권과도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오피스 상권에 머무르던 여의도가 복합 상권으로 업그레이드됐다.
판교 상권은 정반대다. 여의도에선 더현대가 상권의 촉진제였다면 판교 현대백화점은 판교 상권의 빨대 역할을 했다. 기존 직장인들을 흡수하는 것은 물론 각종 팝업스토어와 럭셔리 브랜드로 새로운 소비자의 발길을 묶어 뒀다. 특히 남성 타깃 브랜드를 속속 입점시켜 정보기술(IT) 전문직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
이 때문에 작년부터 문을 연 ‘판교 알파돔시티’ 상가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카카오·네이버 등 굵직한 IT 공룡 기업이 입주한 테크원타워 등 4개 건물에는 상주하는 직장인 덕에 먹고살만 하지만 상가 위치가 판교역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힐스테이트 상가 등은 공실률이 90% 이상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표정이 바뀐 상권들은 대형 상권뿐만이 아니다. 골목 상권들도 새로운 수요를 등에 엎고 큰 변화를 보였다. 이 변화는 다음 주 하편에 이어진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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