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푸라기]전동자전거·전동킥보드 운전도 알려야 한다?
"상시사용·소유 땐 알려야"…고지의무 위반 땐 보험금 못 줘
여기 억울함을 호소하는 A씨가 있습니다. A씨는 최근 교통사고로 아버지(피보험자)를 잃었는데요. 아버지의 상해사망 보험금 6000만원을 청구하니 보험사에서 "고지의무 위반"이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전동기가 부착된 자전거(전동자전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보험계약 체결 당시 이 사실을 보험사에 알리지 않았다는 게 이유입니다.
애초에 보험사를 속이고 계약을 맺었으니 돈을 줄 의무도 없다는 거죠. 업계에서는 이를 고지의무 위반이라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교통사고가 났을 때도 전동자전거를 타고 있었다고 해요. ▷관련기사 : [보푸라기]보험가입 전 세 가지 의무 꼭 지키자!(2021년 7월 24일)
A씨는 황당했답니다. 질병·상해보험이나 실손의료보험 등에 가입할 때 작성해야 하는 '보험 계약전 알릴의무(고지의무) 사항 질문서'에는 운전 여부를 묻는 질문과 함께 운전차종을 체크하도록 돼 있는데요. 과거 아버지의 질문서에는 '오토바이(50cc 미만 포함)'만 명시돼 있고 전동자전거는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아버지도 전동자전거를 타는 걸 말하지 않은 거고요.
보험사가 보험금을 끝끝내 주지 않자 결국 A씨는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고요. 보험사와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서 다시 대면하게 됐습니다. '전동자전거 사용이 보험사에 알려야 할 중요 사항인지'와 '고지의무 위반이라면 아버지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죠.
고지의무 위반은 맞는데…
논의를 거듭한 뒤 분조위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고 합니다. 우선 분조위는 아버지가 전동자전거를 몰고 다닌 게 보험사에 알려야 하는 중요사항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아버지가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전동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걸 미리 말했다면, 보험사는 '오토바이 등 이륜자동차 운전 중 상해는 보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부담보 특별약관을 적용했을 거라는 겁니다.
아버지가 가입한 보험의 질문서에는 전동자전거가 포함돼 있지 않았죠. 하지만 과거 대법원이 개인형 이동장치인 전동킥보드 등도 오토바이를 비롯한 이륜자동차에 포함된다고 보고, 상시적으로 이용한 경우엔 고지의무 대상이 된다고 판단한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이 분쟁 사건에 관련된 전동자전거도 전동킥보드 등과 매우 흡사한 유형의 개인형 이동장치이니, 오토바이를 몬 것과 사실상 마찬가지라고 본 거죠. 개인형 이동장치의 사고빈도 및 사고심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요.
최종적으론 A씨에 '손'
그래도 분조위가 A씨의 편에 선 이유가 있습니다. A씨의 아버지에게 고지의무 위반 책임을 모두 지우기 어렵다는 겁니다. 사망한 아버지는 운전면허가 없었고요.
전동자전거를 마트를 가거나 자녀를 버스정류장에 데려다주는 등 근거리 이동수단으로만 사용했다고 합니다. 고지의무 질문서에 적힌 '오토바이'를 운전한다고 본인 스스로 생각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겁니다.
보험설계사가 오토바이 운전여부만 물어본 것으로 추정되는 점도 정상참작 됐고요. 여기에 아버지가 지적장애가 심한 장애인이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하면 A씨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게 맞다고 분조위는 최종결정한 겁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계약 체결 당시의 정황을 상세히 살펴 피보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했죠.
실제로는 어떨까…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최근 들어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교통수단이 다수 등장하면서 A씨의 분쟁이 남 일이 아니게 됐다는 겁니다. 전동자전거를 비롯해 전동킥보드, 전동휠을 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에요.
당장 찾아보면 아시겠지만 과거에 작성된 고지의무 질문서에는 A씨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전동자전거나 전동킥보드·전동휠을 타는 걸 알려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적으로 표시된 건 없더군요. 2020년 7월 이후에나 전동자전거·전동킥보드·전동휠 등의 운전여부를 묻는 구성으로 고지의무 질문서(표준사업방법서)가 개정됐다고 해요.
그래서 보험업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지금이라도 전동자전거 등을 탄 경험이 있다면 보험사에 알려야 하는지를요. 돌아온 답변은 "고지의무 위반을 판단하는 기준은 지속·반복적 사용에 달렸다"고 하더군요.
어쩌다 한 번 전동자전거 등을 탔다면 나중에 보험금을 받는 데 문제가 없다는 거예요. 하지만 통학·출퇴근할 때나 여가시간에 상시적으로 사용하고, 개인형 이동장치를 소유까지 했다면 보험사에 꼭 알려야 한다는 거죠.
불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들 겁니다. 과거 보험계약을 체결했을 때는 개인형 이동장치 사용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고지의무에도 포함되지 않았는데, 지금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해 보험금을 못 주겠다는 보험사들의 주장이 다소 몰인정해 보이기도 합니다.
옛 보험계약 사례에 대해선 고지의무에 개인형 이동장치가 미포함됐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 보험금을 지급하고, 시대가 빠르게 바뀌고 있는 만큼 향후엔 고지의무 항목을 수시로 재정비하는 건 어떨지 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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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kh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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