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만 국민이냐"…후배에 월급 역전당하는 '중장년의 한탄' [김성훈의 디토비토]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나이 차서 입사한 것도 서러운데, 7살이나 어린 후배한테 벌이마저 역전당하겠어요."
늦깎이 직장인 37세 A 씨는 자신보다 2년 늦게 입사한 직장 후배보다 소득이 줄어들까봐 불만입니다. A 씨의 회사는 근속연수에 따라 연봉이 조금씩 올라가는 구조로, 후배보다 약 10만원 가량 월급을 더 받습니다.
문제는 30살인 후배는 만 34세까지만 대상인 청년내일저축계좌에 가입할 수 있는데, A 씨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청년내일저축계좌는 매달 10만원을 저축하면, 정부가 10만원을 더 얹어주는 정책입니다. 이것만으로도 A 씨와 후배는 벌이가 거의 비슷해집니다.
다음달에 나오는 청년도약계좌까지 따지면 A 씨는 후배에게 벌이를 아예 역전당합니다. 후배가 청년도약계좌에 들어 매달 50만원을 넣으면 정부가 2만3000원을 얹어줍니다. 시중 저축 상품보다 더 높은 이자와 비과세까지 따지면 혜택은 더 크죠.
A 씨는 "후배는 어리고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저보다 더 많이 남아 있잖아요. 왜 제가 낸 세금을 후배에게 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청년의 자산 형성을 위한 정책을 속속 내놓으면서 수혜를 입지 못하는 이들의 불만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청년만 국민이냐", "청년이 벼슬이냐"는 원성이 넘쳐납니다. '청슬아치(청년+벼슬아치)'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입니다.
특히 이달 1일부터 접수를 받고 있는 청년내일저축계좌와 내달 시작할 청년도약계좌는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퍼주기'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청년내일저축계좌는 중위소득 이하의 19~34세 청년이 매달 10만원씩 3년간 저축하면 정부가 다달이 10만원씩 얹어주는 정책입니다. 3년간 360만원을 저축하면, 총 720만원에 이자까지 받을 수 있죠. 연 수익률이 무려 30%에 달합니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은 정부가 얹어주는 돈이 30만원이나 돼 3년 뒤 1440만원과 이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달에는 청년도약계좌가 나옵니다. 매달 70만원 한도 내에서 원하는만큼 5년간 납입하면 정부가 납입액의 일정 비율(3~6%)을 더 얹어주고, 이자와 비과세 혜택까지 주는 상품입니다. 5년 뒤에는 5000만원이라는 목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청년내일채움공제라는 정책도 있습니다. 청년이 중소기업 정규직으로 취직하면, 청년·기업·정부가 2년간 각각 400만원을 적립해 1200만원을 청년에게 주는 것입니다.
펀드 투자 상품 중에는 '청년형 장기집합투자증권저축'(청년 소장펀드)이 있습니다. 연소득 5000만원 이하(종합소득 3800만원 이하) 청년이 매년 최대 600만원씩 3년간 납입하면 납입금액의 40%(최대 720만원)를 소득공제받는 펀드 투자 상품입니다. 세율 16.5%를 적용하면 최대 119만원을 절세하는 것입니다. 이상은 모두 중복 가입 가능합니다.
개별 지자체에서 진행 중인 사업도 많죠. 서울시의 '희망두배 청년통장', 경기도 '청년노동자통장', 인천시 '드림 포 청년통장' 등인데, 청년내일저축계좌처럼 청년이 저축하면 지자체가 돈을 얹어주는 형식의 지원을 합니다.
심지어 청년은 빚투(빚내서 투자)가 실패해 대출을 못갚게 된 경우 빚을 탕감해주는 '신속채무조정 청년특례'라는 혜택도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시행된 후 5개월 동안 4900명이 724억원의 이자를 감면받았습니다.
정부는 이 같은 정책에 '자산 형성 지원'이라는 명분을 붙입니다. 아무래도 그 배경에는 집값(자산 가격)이 너무 높다는 반성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저금리 국면에서 집값이 급등해 소득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지경이 됐으니, 정부가 보전해주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KB금융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수도권에서 집을 사려면(중위소득, 중위주택 기준)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12년을 모아야 합니다. 뉴욕(7.1년), 런던(8년), 토론토(10.5년)보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주택시장에 뒤늦게 진입한 청년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아득한 시간입니다.
집을 살 수 없으니 결혼은 엄두도 못 내게 되고, 출산율이 떨어지고, 결국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에 정부는 청년이 주택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기회 또한 넓혀줬죠. 바로 청약입니다. 기존의 청약은 가점제의 비중이 높아 나이가 많을수록, 가족이 많을수록 유리했지만, 지난해부터 가점제 물량을 줄이고 추첨제를 확대해 청년 1~2인 가구도 당첨될 수 있게 한 것이죠. 또 공공분양에서 미혼 청년을 위한 특별공급도 신설해, 5만여호를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중장년층이라고 삶이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청년 지원정책 상당수는 정부가 청년에게 현금을 직접 살포하는 만큼, 중장년에게 세금을 걷어 청년에게 주는 셈인데, 소득이나 재산이 아닌 세대를 기준으로 나눠 분배정책을 시행한다면 오히려 분배역진적(가난한 사람 것을 뺏어 부자에게 주는)이고 역차별적인 정책이 될 소지가 있습니다.
일례로 통계청에 따르면, 40대 이상 중장년층 가구의 셋 중 하나(35.4%)가 무주택자입니다. 40대 초반(40~44세) 가구는 42.3%가 무주택자죠. 가구가 아닌 개인으로 따지면, 중장년의 절반이 넘는 56.2%가 무주택입니다. 이들도 집값이 너무 올라 사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대로 한국부동산원은 1분기 연령대별 아파트 매입 비중을 발표했는데요, 30대의 비중이 26.6%로 가장 높았고, 특히 서울은 30대 비중이 30.9%나 됐습니다. 서울의 중위 아파트값은 10억원에 육박합니다.
집도 못사는 40·50대가 10억원 짜리 집을 턱턱 사는 30대를 지원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정부는 국민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습니다.
청약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도록 청약점수를 쌓고 자신의 차례가 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청년층에게 우선권을 주겠다고 하면 '새치기' 아니냐는 것이 중장년층의 불만입니다. 입맛에 따라 아침에 바꾸고 저녁에 바꾼 '누더기' 청약제도 때문에, 한국 경제의 허리라고 할만한 40대는 특별공급에서는 청년층에 밀리고, 가점제로는 50·60대에 밀리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돼버렸습니다.
C : "요즘 청년들 참 안됐어요. 취업 어렵지, 집값 뛰지. 결혼도 못하고. 희망이 없잖아요.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얼마 전 한 기업 임원과의 술자리에서 임원이 꺼낸 말에 가벼운 논쟁이 시작됐습니다.
D : "상무님이 성공한 인생을 살아오셔서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에요?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에 비해 '꿀 빨았다'(편하게 살았다)는 주장은 그 시대를 안 겪어본 청년들의 망상이거나, 기성세대 중에서도 성공한 강자들의 성급한 일반화에요. 본인이 순탄했으니 '우리 세대가 다 순탄했을 것'이라는… 기성세대 중에도 취업 못하고 집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이 듣기에 참 야속한 주장이죠."
'88만원 세대'(당시 최저임금인 88만원을 받고 일하는 세대)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2007년,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2011년입니다.
"편하게 취업해서 집 장만했잖아"라고 양보를 강요받는 지금의 중년은 당시 그렇게 불렸던 20대입니다. 2007년 20대의 고용률과 실업률은 각각 60.1%와 7.1%였고, 올해 3월 20대는 각각 60.4%, 7.2%입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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