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유아차 끌고 지하철 16개역 가보니…"매 순간이 고난"
유아차 끌고 헤매고 돌아서 가니 시간 3배 더 걸려
(서울=연합뉴스) 임지현 조서연 인턴기자 = "지옥철과 함께하는 극기 훈련"
서울시 도봉구에 사는 김수민(30) 씨는 유아차를 끌고 지하철을 타는 과정을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유아차를 끌고 나오면 부모들의 시간은 빠듯해진다. 유아차를 끌기엔 가파른 경사로, 좁고 찾기 힘든 지하철 엘리베이터, 복잡한 환승 과정 등이 외출에 어려움을 더한다.
김씨가 50분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2시간이나 일찍 나온 것도 22개월 딸을 유아차에 태워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매 순간이 고난"이라는 김씨의 험난한 외출 길을 연합뉴스가 동행해봤다.
엘리베이터 찾고, 아이 돌보고, 남들보다 더 걷고
지난달 27일 오후 1시 쌍문역에서 만난 김씨는 딸을 유아차에 태운 채 편안한 옷차림으로 서 있었다. 아이를 낳은 후로 굽 높은 힐은 신을 수 없게 됐고 공들여 꾸미는 일도 없어졌다고 한다.
목적지인 공덕역으로 가려면 우선 지상 엘리베이터부터 찾아야 했다. 김씨가 사는 3번 출구 부근엔 계단밖에 없어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서야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쌍문역 4개 출입구 중 지상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은 1번 출구 단 한 곳뿐이었다.
지상 엘리베이터를 타고도 바로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승강장으로 가지는 못했다. 대합실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린 뒤 다시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80m나 떨어진 반대편 개찰구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지상과 대합실, 대합실과 승강장을 각각 연결해주는 엘리베이터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유아차 이용자는 남들보다 훨씬 먼 길로 돌아가야 한다.
"읏차"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 때문에 김씨는 유아차 앞바퀴를 힘껏 들어 올려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김씨는 행여 통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불편할까 봐 발목에 바퀴 축이 닿도록 유아차를 끌어당겼다.
유아차와 함께 외출하면 유아차가 차지하는 크기만큼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열차가 7개 역을 지날 때쯤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김씨는 아이가 졸려서 우는 것임을 눈치채고 아이를 달래주다가 재운 뒤에 멍하니 쉴 수 있었다.
김씨는 "오늘처럼 얌전히 자면 다행인데 평소엔 갑자기 배변 활동을 하거나 울거나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있다"며 "기저귀를 갈아주러 급하게 내려서 화장실로 달려가거나 우는 아이를 달래주느라 피곤했던 경험이 많다"고 전했다.
4·6호선 환승역인 삼각지역에 도착해서도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걸어야 했다.
김씨와 똑같은 승강장에서 내린 뒤 기자는 혼자 걸어 3분 44초 만에 환승 승강장으로 갔다.
4분을 더 기다리니 김씨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찾고 돌아서 가는 만큼 시간도 더 걸리는 것이다.
목적지인 공덕역에 도착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지하 승강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개찰구를 통과한 뒤 가까운 출구를 두고 150m를 더 걸어가야 지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그렇게 45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김씨는 1시간 20분이 지나고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 도착까지 엘리베이터를 찾아 헤매고, 남들보다 더 걷고, 아이 때문에 눈치를 보며 더해진 시간이다.
유아차 끌고 13개 환승역 체험해보니…"왜 이렇게 불친절해"
유아차와 외출하는 부모들의 고충을 이해하기 위해 5월 1일부터 이틀에 걸쳐 기자가 직접 유아차를 끌고 서울의 환승역 13곳을 가봤다.
아이를 태우고 유아차를 끄는 부모들과 동등한 조건을 맞추기 위해 8kg의 쌀통과 4kg의 단백질 보충제를 유아차에 싣고 출발했다.
지하철역의 지상 출입구에서 출발해 해당 역의 맨 밑에 있는 승강장까지 가는 경로를 계획했다.
제일 처음 간 곳은 4·7호선 환승역인 이수역이다. 이수역 1번 입구에서 시작해 지하 4층에 있는 7호선 승강장으로 갈 계획이었다.
시작은 어렵지 않았다. 1번 입구 근처 엘리베이터를 타니 바로 대합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합실 위에 붙어있는 7호선 환승 안내 표지판을 따라 3분 동안 걸어가니 곧이어 4호선 승강장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만났다.
유아차가 없었다면 친절한 안내였지만, 기껏 와서 유아차로는 다닐 수 없는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마주하니 힘이 빠졌다.
결국 왔던 길을 다시 돌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1번 출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상에서 다시 7호선 승강장으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300m를 걸어 10번 입구 엘리베이터를 타러 갔더니 '고장'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이제 이수역에 남은 지상 엘리베이터는 9번 입구 근처의 엘리베이터 하나뿐이었다. 횡단보도를 3번 건너서 도착했지만, 마지막 엘리베이터마저 '운행 정지'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결국 한 손엔 단백질 포대와 쌀통을, 다른 한 손엔 유아차를 들고 낑낑대며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까마득한 계단을 내려온 뒤엔 다시 유아차에 단백질 포대와 쌀통을 태우고 대합실에서 엘리베이터를 찾아 나섰다.
고난은 멈추지 않았다. 곧이어 찾은 대합실 내부 엘리베이터엔 진입 금지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승강장으로 가려면 다시 계단으로 내려가야 한다. 유아차를 한 손에 다시 들고 쌀통과 단백질 포대를 조심히 껴안았다.
심호흡한 뒤 내려가야 할 수많은 계단을 보니 "그냥 지하철 타지 말고 다시 돌아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부모들이 유아차 끌고 나가기 무섭다고 한 이유가 공감됐다.
온몸에 힘을 줘 계단을 겨우 내려오고 나서 환승할 수 있는 승강장에 도착했다. 4분이면 도착했을 거리를 돌고 돌아 41분이 걸렸다.
환승하기 어려운 역으로 악명이 높은 고속터미널역도 가봤다. 8-2번 출입구에서 시작해 지하 3층에 있는 7호선 승강장으로 가는 코스였다.
이번에도 시작은 쉬웠다. 60m만 걸으니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2층 3호선 대합실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초행길인 기자가 잠시 헤매기도 했지만, 친절한 시민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내려갔다.
한 층만 더 내려가면 7호선을 탈 수 있는데 다시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밖에 없는 통로를 마주했다. 근처에 있는 안내도를 아무리 봐도 7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왔던 길을 돌아 지상으로 나왔다. 7호선으로 이어지는 지상 엘리베이터를 찾아 다시 500m를 걸었다.
하지만 다른 지상 엘리베이터도 7호선 승강장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중간에서 엘리베이터가 끊겨 계단으로 내려가야 했다.
고속터미널역 지상에서 7호선 승강장으로 유아차를 끌고 혼자 가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다시 쌀통, 단백질 포대와 유아차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 7호선 승강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속터미널역 8-2 입구에서 계단으로 바로 갔으면 7분이면 갈 거리를 유아차를 끌고 다니니 52분이 걸렸다.
찾기 힘든 엘리베이터, 안내를 따라간 곳에서 마주한 계단 등을 경험하니 "유아차 끄는 사람에게 왜 이렇게 불친절해"라는 볼멘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처럼 똑같은 출입구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유아차 유무에 따라 승강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특히 이수역, 고속터미널역, 신당역은 환승 승강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헤매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유아차가 없으면 13개 역을 각각 평균 4.5분이면 내려갈 수 있었지만, 유아차를 끌고 갈 경우 평균 18.2분이 걸렸다.
유아차를 끄는 사람에겐 다른 사람들보다 3배의 시간이 더 필요한 셈이다.
문제는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아니라 접근성
현재 서울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90%가 넘는다지만 유아차를 끌고 지하철을 타보면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문제는 접근성이다. 많은 출입구 가운데 지상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출입구를 찾는 일부터 힘들었다. 서울교통공사 공공데이터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가 담당하는 1∼8호선의 총 239개의 역(중복 집계되는 환승역 제외) 중 지상 엘리베이터가 1개밖에 없는 역은 119개 역으로 50%에 달한다.
엘리베이터 위치를 알려주는 '편의시설 이용 안내' 지도가 없는 출입구도 있어 핸드폰으로 '○○역 엘리베이터 위치'를 검색하고 나서야 지상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 있었다.
지상 엘리베이터를 찾은 뒤에도 험난한 여정은 계속된다. 지상 엘리베이터가 승강장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으니 대합실에서는 다시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아 헤매야 했다.
엘리베이터 위치를 알려주는 그림은 작게 붙어있거나 어디 붙어있는지조차 몰라 한참을 두리번거리는 일이 잦았다.
빠른 길을 두고도 엘리베이터를 타러 돌아가는 길은 멀기만 했다.
엘리베이터가 아예 없어 지하철을 타려면 역무원을 불러 도움을 요청해야 하거나 직접 유아차를 들고 내려가야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 번에 승강장으로 내려갈 수 있는 역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위치 안내, 고장과 수리 안내도 부족해 번번이 헤매거나 돌아가야 하는 일이 많았다.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90%가 넘는다는 통계 뒤에 접근성이 낮다는 현실이 숨어있다.
접근성 올리기 위한 세이프로드…아쉬움도 남아
서울교통공사는 지난해 말 엘리베이터 이용 고객이 많은 종로3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등 9개 역에 엘리베이터 위치를 알려주는 '세이프로드'를 도입했다.
실제로 가보니 눈에 띄는 군청색 선이 엘리베이터 위치를 알려주고 있어 다른 역에 비해 엘리베이터를 찾기 편했다.
하지만 세이프로드만으로 접근성을 높이기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먼저 세이프로드가 역사 내 모든 곳에 설치된 것은 아니었다.
종로3가역 3호선 승강장의 경우 8-4부터 3-3 승강장까지는 세이프로드가 설치되지 않았다. 게시판이나 자판기에 가려지면 세이프로드가 안 보이기도 했다.
대합실이나 환승 통로에 세이프로드가 설치되지 않은 구간도 있었다.
세이프로드를 따라가려면 세이프로드를 찾는 일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세이프로드를 따라갔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종로3가역 5호선 승강장의 세이프로드를 따라가니 그 끝에는 계단밖에 없었다.
계단 위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역무원을 호출해 도움을 받아야 했다.
부족한 세이프로드와 엘리베이터 문제로 접근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동선을 안내하는 선에서 최소한으로 붙이다 보니 세이프로드가 없는 구간도 있다"며 "세이프로드 관련 선호도 조사를 한 뒤 개선 방안을 발굴해서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이어 "종로3가역 5호선 승강장의 경우 해당 동선을 이용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 공사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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