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된 물량만 12만 가구, 연말에 몰린다”... 불황기의 ‘분양 세태’
봄철에 몰렸던 ‘계절성’ 사라져
완판 도달 시간도 길어져
“버티다 버티다 연말에 쏠려”
경기도 광명2구역 재개발 단지인 베르몬트로광명(3344가구). 대우건설과 롯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이 시공하는 이 곳은 당초 2020년 분양 예정이었지만 3년째 미뤄지고 있다. 2021년말, 처음 분양을 시도했을땐 분양가상한제가 발목을 잡았다. 광명 뉴타운 내 첫 적용 단지가 되면서 분양가가 주변 시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됐고 조합원들이 반발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분양을 다시 준비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일정이 뒤로 밀리는 와중에 내부 갈등이 불거졌고 새 조합장 마저 쫓겨났다. 이후 분양 타이밍을 조율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주택경기 침체’라는 파고를 맞았다.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분양가에 공사비 문제까지 겹치면서 연내에도 기약이 없는 상태다.
주택시장 침체에 따른 관망세가 길어지면서 브랜드 대단지들의 분양 시점을 놓고 시행사와 건설사, 분양대행사 등 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작년에 소화되지 못한 물량이 이월되면서 미분양·미계약 물량이 넘치는 상황이라, 버티기와 눈치싸움 끝에 결국 ‘연말 분양’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6일 조선비즈가 부동산R114에 의뢰한 결과에 따르면 작년 민영아파트 계획물량(2021년 12월 28일 조사분)은 전국 41만6142가구였지만 실제 시장에서 소화된 물량은 28만6836가구(올해 5월 4일 조사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2만9306가구가 이월된 셈이다.
올해 민영아파트 계획물량은 총 7만2169가구다. 월별로 보면 1월과 2월에는 각각 8858가구, 5880가구 등 1만가구에도 채 못 미치는 물량이 분양됐고 3월과 4월에는 1만4170가구, 1만754가구에 그쳤다. 다만 오는 5월과 6월에는 각각 2만2729, 2만8145가구로 보다 많은 양이 공급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과거에 통상 3~5월에 분양물량이 몰렸던 공식이 깨졌다고 보고 있다. 주택시장 침체기가 계속되면서 미분양·미계약 물량이 넘치자, 일정을 미루고 또 미루며 ‘버티기’를 하는 상황이다. 분양대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른바 ‘괜찮은 단지’의 분양일정을 보면 오는 6월부터 시작되는 분위기”라며 “버티다버티다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했다.
주요 단지를 포함한 대부분의 분양 물량은 오는 9월말이나 10월이 돼야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비수기인 여름 휴가에 이어 추석 연휴가 지나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나오는 물량들이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10월에는 2만8170가구로 월별 기준, 연내 가장 많은 물량이 예정돼 있다.
업계에서는 불황기때 분양 전략은 다르게 가져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우선 ‘분양가 합의’가 쉽지 않다. 원자재값과 인건비 상승을 감안하면, 서울 조합 사업들은 연내 분양 일정을 잡았어도 기본 1~2년 연기된다고 봐야 한다.
계절성이 없어졌다는 것도 특징이다. 과거엔 봄철에 분양이 몰렸지만 최근 2~3년간 이례적인 호황기를 거치면서 ‘계절타는 특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원래 한여름, 한겨울에는 분양신청 안하는게 룰처럼 여겨졌지만 유례없는 호황기를 거치면서 계절성이 사라졌다. 호황기땐 말 그대로 분양하는 대로 족족 팔려나갔기 때문”이라며 “옛날엔 계절 마케팅도 많이 했는데 그게 벌써 10년전이라 까마득하다”고 말했다.
코로나 종식 효과도 크지 않다는 평가다. 코로나19가 끝났으니 고객들을 모델하우스로 오게 해야 하는데 휴가철 등으로 분산되다보니 분위기 조성이 안 되고 있다고 했다.
‘조기 완판’이 사라졌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과거보다 완판까지 걸리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진 셈이다. 예를 들어 최근 두산건설은 인천 소재 아파트가 ‘완판까지 7~8개월 밖에 안 걸렸다’는 취지로 대대적 홍보를 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러한 현상을 두고 “비정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분양업계에서 오랫동안 종사해 온 한 관계자는 “아파트가 자동차도 아니고 사실 몇억원 대출을 받아야 한다. 주택구매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상으로 돌아갔다고 본다”면서 “과거엔 조기완판 하면 분양소장들이 ‘분양가를 너무 싸게 책정한 것 아니냐’는 잔소리를 들으며 시말서를 쓰곤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시장이 어렵다보니 버티던 물량들을 연말에 진행하면서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땅은 사실상 한정돼 있다는 점에서 특정지역에 몰릴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분양 시기까지 겹쳐버리면, 분양업계는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업자들 사이에서 ‘반경 5㎞내에서 분양률이 60~70% 나온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같은 지역에서 적은 파이를 놓고 나눠 먹는 꼴 밖에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분양 늦추기’가 결국 공급을 줄이면서 향후 2~3년 뒤 집값 상승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민간의 신축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2~3년 뒤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면서 “3기 신도시 추진을 서두르는 분위기가 아닌데, 그러다 실기하는게 공급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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