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연탄, 탄광의 추억…아오지부터 삼척까지[석탄100년, 역사 뒤안길로①]

이승주 기자 2023. 5.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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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평양광업소부터 아오지, 이후 2025년 폐광까지
탄광이주에 설움·오일쇼크로 재기…최근 수요↓

출처=대한석탄공사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뉴시스]이승주 기자 = 눈 위에 잿빛으로 물든 연탄재부터 타국 탄광에 돈 벌러 나간 아버지까지, 누구에게나 석탄 관련 추억은 하나쯤 있을 테다. 그런 석탄이 국내에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전남 화순을 시작으로 내년 강원 태백장성, 오는 2025년 강원 삼척도계 등 대한석탄공사가 운영하는 탄광이 순차적으로 폐광한다고 5일 밝혔다. 전국적으로 민간 기업 경동그룹이 운영하는 탄광 한 개만 남고 모두 문을 닫는 셈이다.

그렇다고 국내에 석탄이 당장 자취를 감추는 것은 아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그래도 석탄 수요가 적지만 남아있을 것을 고려해 재고탄을 비축해둔 상태다. 이 물량은 석탄 수요가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오는 2050년까지 감당 가능한 규모"라며 "결국 석탄이 우리 삶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는 것은 그 이후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대한석탄공사가 발간한 '한국의 석탄산업 100년' 자료에 따르면 국내 최초의 탄광은 실제 개발에 착수한 시점 기준 1908년에 탄생한 평양광업소를 들 수 있다. 즉 우리 석탄 산업은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셈이다. 폐광 작업이 진행 중인 현재, 100년 넘는 석탄의 역사, 그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성균관대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이 19일 오후 서울 노원구 한 마을에서 사랑의 연탄나눔 봉사를 하고 있다. 2023.01.19. kgb@newsis.com

전쟁 따라 수요 증대…아오지부터 전국 곳곳 개발

석탄 산업은 지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더욱 성장했다. 석탄공사는 종전 이후 일본에서 도산하는 탄광이 속출하자 중국과 시베리아를 비롯해 국내 탄광이 대안으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그동안 개발되지 않던 함경북도에서도 아오지탄광을 비롯해 이 시점부터 경원·경성 등 곳곳에서 탄광이 개발됐다.

게다가 일본에 진출했던 국내 노동자들이 전쟁 후 귀국하면서 국내에 노동력이 풍부해졌다. 여기에 기술까지 발달하면서 채굴 범위가 확산된 것으로 풀이된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1931년 9월 일본이 일으킨 만주 사변도 국내 석탄 산업에 영향을 미쳤다. 일본이 만주 길목에 위치한 한반도를 병참기지로 이용하면서 석탄 수요가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국내 최대 유연탄광인 아오지탄광을 확대 개발하며 남부 지역의 탄광 개발에도 착수했다. 이 때 영월과 화순, 삼척 등까지 탄광 개발이 확대된다.

출처=대한석탄공사 *재판매 및 DB 금지

日탄광취업부터 '막장인생'까지…굶주림·외로움에 눈물

개광 초 석탄 생산은 인력에 의존하다 보니 탄광을 개발할 수록 광부도 늘어나는 구조였다. 1910년대에는 국내에서 일본 탄광에 취업하기 위해 바다를 넘어가는 이들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요 '백탄가'에는 남편을 일본 탄광으로 떠나보낸 아내들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슬퍼하는 내용이 잘 표현됐다.

1930년대부터 이 같은 분위기는 더욱 짙어진다. 만주 사변이 발발한 뒤 한반도 남부 지역에 흉년이 이어지자, 일본에서는 탄광이주정책을 시행했다. 석탄공사 관계자는 "만주의 미개간 지역으로 한국인을, 한반도에는 일본 농민을 이주시키려던 속셈"이라며 "일본은 경상·전라·충청 지역 주민들을 함경북도와 강원 삼척탄광 등으로 이주시켜 인력난을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당시의 탄광이민정책은 형식상으론 모집 형태였지만 이주민 입장에서는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수단이었다. 여기에서 '막장인생'이란 말이 생겨났다. 공사 관계자는 "일제 수탈정책으로 탄광촌은 단기에 확대됐다. 집단 강제 노동수용소나 다름없는 탄광촌 생활은 말 그대로 인생 생지옥"이라며 "이런 처참한 상황은 1945년 광복까지 계속됐다"고 말했다.

[원주=뉴시스] 김경목 기자 = 인도네시아가 1월 한 달간 석탄 수출을 금지한 가운데 5일 오후 강원도 원주시의 한 연탄 공장에서 근로자가 생산된 연탄을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2022.01.05. photo31@newsis.com

오일쇼크에 황금기 맞은 연탄…원가 뛰고 재고 바닥

석탄은 오일쇼크 이후 전례 없는 호황기를 맞았다. 1973년 10월 중동전과 아랍 산유국의 감산으로 오일쇼크가 시작됐을 무렵 국내에서는 석탄 생산을 늘리기로 정책을 선회했다. 원유 공급량이 줄면서 반대로 석탄 수요가 크게 증가하자 석탄은 생산되는 즉시 순식간에 팔려나갔고, 급기야 1974년에는 석탄기근 현상이 발생했다.

석탄공사 관계자는 "일부 탄광과 연탄 공장에서는 이익을 증대하기 위해 '석탄버력' 등 이물질을 섞는 일까지 벌어지자, 그해 10월 부산에서는 이에 항의하는 주부들도 나타났다"며 "연탄부족 사태에 가구 당 1회 연탄 20장 이상 판매금지 조치, 연탄구매카드제 실시, 연탄판매기록장제 등을 시행하는 정부 노력도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재고는 금방 바닥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출처=석탄공사 *재판매 및 DB 금지

아파트·환경규제에 연탄에서 가스로…연료전환 본격화

이 같은 연탄의 황금기는 국민들의 생활 방식 변화와 함께 져물었다. 연탄은 1980년대 중반까지 가정용 난방 연료로서 굳건히 자리매김했지만,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그 입지가 좁아졌다. 아파트 등 새로운 주거시설에서 무연탄 대신 가스로 연료 사용을 전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의 환경 규제도 영향을 받았다. 1986년 4월 정부는 연탄 사용 시 대기오염이 커질 것을 우려해 서울·대구 등 대도시 일부에 연탄 사용을 금지했다. 1989년 12월에는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에 액화천연가스(LNG) 보일러 설치를 지원했다.

석탄공사에 따르면 석탄 생산량은 1988년에 사상 최대치인 2430만t(톤)을 기록한 뒤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이후 정부의 감산 정책 영향으로 2000년에는 415만4000t, 불과 10년 만에 2000만t 감소했다.

공사 관계자는 "정부의 연료전환 계획이 알려지면서 석탄업계의 가스산업 진출도 본격화됐다. 화려했던 무연탄 역할은 끝나고 그 자리를 가스에게 내준 것"이라며 "1989년부터 석탄산업 구조조정인 폐광도 본격 시행됐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oo4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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