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1년]근로시간 논란·노조와 전면전…갈길 먼 노동개혁

이정현 기자 2023. 5.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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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9시간' 논란에 발목 잡힌 근로시간 개편안, 실태파악부터 다시
노조 회계 장부 제출 압박에 노-정 관계는 최악, "대화 복원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8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News1 오대일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윤석열 정부가 취임 1년을 맞았다. 새 정부는 3대 개혁(노동·교육·연금) 중에서도 노동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현행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부터 연공급 임금체계 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화 해소에 이르기까지 노동시장 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하지만 속도에 치중한 탓일까. 여러 정책과제 중에서도 우선순위로 추진한 근로시간 개편안 입법 작업은 부정 여론에 밀려 다시 논의 단계로 회귀했고, 임금체계 개편 작업도 덩달아 뒤로 밀린 모양새다.

여기에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추진 중인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 대책 탓에 노-정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노동개혁을 기치로 내건 정부가 과업을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4일 대한상공회의소가 302개사를 대상으로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에 대한 기업 의견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74.5%가 주 최대 예상 근로시간을 60시간 미만으로 활용하겠다고 답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주 최대 69시간'에 매몰된 근로시간 개편안…전면 손질

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용부는 정부안으로 입법 추진 중인 근로시간 개편안 수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3월6일 고용부는 연장근로 관리를 현행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해 일이 몰릴 때 최대 주 69시간까지 집중적으로 일하고, 일이 적을 때 장기휴가를 통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한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개편안 발표 직후부터 '주 최대 69시간'이라는 시간개념 논쟁에 불이 붙으면서 정부 입법안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고용부는 현행 주 52시간제에서의 연장근로 총량과 비교해도 근로시간이 늘지 않을 것이며 사업장의 특수성을 고려한 '근로시간의 자율 선택권'에 방점이 찍힌 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 제도 사각지대에 있는 중·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오히려 이를 악용, 장시간 노동사회로 회귀할 것이라는 비판 주장이 대두됐다. 대표적인 게 이른바 '공짜노동'으로 불리는 포괄임금제도의 문제다.

포괄임금제는 근로계약 체결 시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을 미리 정해 예정된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실 근로시간을 따지지 않고 매월 일정액의 시간외근로수당을 기본임금에 포함해 지급하기 때문에 이번 근로시간 개편안으로 주 69시간이 합법화되면 근로시간만 늘어날 뿐 그에 따른 보상도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문제제기다.

정부 입법안에는 보상으로 한 달 이상의 장기휴가도 가능해진다고 하지만, 정당한 연차조차 눈치가 보여 사용할 수 없는 대다수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는 사실상 공허한 대책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사태가 악화하자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주 69시간'은 무리라고 지적하는 등 성난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그러면서 현장 청년층, 이른바 MZ세대에 대한 여론수렴을 지시했다.

주무부처인 고용부는 즉각 여론수렴 작업에 나섰고, 현재 '주 최대 69시간' 근로 개편안의 수정·보완 작업을 위한 대국민 설문조사 및 FGI(표적집단면접법)를 추진 중이다.

총 사업예산만 4억6000만원(설문조사 4억1000만원, FGI 5000만원)에 달하는, 설문조사로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고용부는 설문조사를 통한 여론수렴을 거쳐 수정안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각계각층 의견을 들어 새 안(案)을 마련한다는 입장인 만큼 방향성도 다양하게 열려있다는 입장이지만, '주 60시간' 이상은 사실상 어렵지 않겠냐는 분위기도 읽힌다.

지난달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이정식 고용장관은 '60시간 이상으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있느냐'는 전해철 위원장의 질문에 "'주 최대 60시간' 이상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수정안 발표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미지수다. 설문조사는 8월중 끝날 것으로 예정돼 있지만, 내년 총선시기가 맞물린 탓에 아예 선거 이후로 발표를 미룰 가능성도 제기된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1일 오전 회계서류 비치·보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노동조합에 대한 현장조사를 위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들이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 들어서려하자 이를 거부하고 있다. 고용부는 이날부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노조 등 총 42개 노조를 상대로 2주간 현장 행정조사를 실시하며 법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노동조합에 대해 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2023.4.21/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노조회계 투명성 강화로 노-정 관계는 최악…"대화 복원 필요"

근로시간 개편과 더불어 정부가 강력히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책이 노사 법치 확립을 위한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다. 정부는 노조에 해마다 수십억의 국민혈세가 지원되고 있음에도 지출 용도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회계장부 제출' 압박에 나섰다.

고용부에 따르면 회계자료 제출 점검대상 노조 334곳 중 시정기간 및 의견제출 기간을 포함해 최종적으로 미제출한 노조는 52곳이다.

고용부는 이들 노조에 대해 정부 보조금 사업 지원 중단과 과태료 부과 방침을 밝힌 뒤 현재 후속 절차에 착수한 상태다.

최근에는 한국노총을 이런 이유로 올해 정부 보조금 사업 선정에서 제외했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약 26억원의 정부 보조금을 받았는데, 올해는 이 지원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정부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거대노조에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노-정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양대노총은 정부의 노동개혁을 '노동개악'으로 규정, 강대 강으로 맞붙고 있다.

회계장부 제출 거부 노조에 대한 정부 제재 조치에 양대노총은 공동전선을 구축했다. 양대노총은 지난 3월 이정식 고용장관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노조회계와 관련한 과태료 부과는 노동조합의 운영·재정에 관한 사항에 부당하게 개입해 자주권을 심대하게 침해하고, 노조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한 명백한 직권남용이라는 이유다.

지난 1일 노동절에는 대정부 투쟁의 서막이 올랐다. 당시 민주노총 집회에는 서울 등 15개 시도에서 13만명(주최 측 추산)이, 한국노총 집회에는 약 3만명(주최 측 추산)의 인원이 운집해 '정권 심판'을 외쳤다.

양대노총의 투쟁 의지는 확고하다. 민주노총은 6월 최저임금 인상 투쟁, 7월 총파업 등을 거쳐 올 하반기까지 투쟁 동력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지난 3월 대정부 투쟁기구를 설치‧운영 중인 한국노총도 활동에 박차를 가한다는 각오다.

노-정이 서로 물러서지 않고 '강대 강'으로 부딪히면서 노동개혁 동력 상실은 물론 갈등 확산에 따른 불필요한 사회비용만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전문가들은 정부에는 노조와의 관계개선에 대한 의지를, 노조에는 정부의 문제 제기에 대한 객관적 현실을 직시하면서 전향적인 태도 전환을 요구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 로스쿨 교수는 "정부가 나서 대화를 위한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면서도 "노동계도 이제는 좀 더 객관적으로 현실을 보고, 내부적으로 정부가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 전향적으로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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