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日 육사 엘리트 장교 내던지고 어린이운동 나선 조철호
‘어린이날’ 하면 소파 방정환(1899~1931)을 떠올릴 만큼, 소파는 어린이 운동의 대부다. 하지만 1923년 소파와 함께 ‘어린이날’을 만드는 데 앞장섰고, 한국 보이스카웃 창설을 주도한 관산 조철호(1890~1941)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드물다. 더구나 그가 일본 정규 육사(제26기)출신으로 탄탄한 미래가 보장된 엘리트 군인의 길을 내던지고 민족운동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조철호의 일본 육사 동기로는 훗날 광복군 총사령관이 된 지청천(제헌의원, 초대 무임소장관), 일본군 대좌 출신으로 대한민국 첫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응준, 조선인으로는 최고위 계급인 중장까지 진급해 필리핀 포로수용소장을 지냈다가 일본 패전과 함께 전범재판에 회부돼 처형당한 홍사익이 있다.
◇대한제국 무관학교에서 일본 육군사관학교 생도로
조철호는 대한제국 무관학교에 들어갔다가 2학년 때인 1909년 7월 학교가 문닫으면서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에 파견됐다. 무관학교 2학년 재학생 중 18명, 1학년생 26명이 유학시험을 통과했다. 조철호는 그해 9월3일 경성을 출발, 동기생들과 함께 도쿄 중앙유년학교 예과 3년생으로 입학했다. 육사 예비과정이었다.
이듬해 8월 청천벽력 같은 전갈이 전해졌다. 당시 용어로 합방(合邦), 실은 망국(亡國)이었다. 조국이 아니라 일본 제국을 위한 간성(干城)이 될 판이었다. 이기동 전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의 책 ‘비극의 군인들’(79쪽)에는 비분강개한 유학생들이 집단 자퇴, 나아가 집단 자결까지 논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연장자인 지청천의 제안에 따라 이왕 군사 교육을 배우러 왔으니 끝까지 배우고 중위가 되는 날 일제히 군복을 벗어던지고 조국 광복을 위해 총궐기하기로 맹세했다.
이 맹세를 정확히 지킨 사람이 조철호였다. 조철호는 1914년 5월 임관 후 센다이 제2사단 예하 제29연대 3중대에서 근무했다. 1918년 중위로 진급하자 전역해 귀국했다. 남강 이승훈이 세우고 고당 조만식이 교장으로 있던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그는 이듬해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참고로 강제병합 당시의 맹세를 지킨 이로는 3.1운동 직후 망명한 지청천(26기), 이종혁(27기) 등이 있다. 이들보다 선배인 기병장교 김경천(23기)도 3.1운동 직후 중국에 망명했다.
◇100년 전 첫 어린이날 제정 주도
감옥에서 나온 조철호는 1919년 중앙고보 체육교사가 됐다. 보이스카웃 전신인 ‘조선소년군’을 창설한 것은 1922년 10월5일 중앙고보 뒷뜰에서였다.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을 강건하게 훈련시켜 미래의 역군을 길러내자는 취지였다. 조선소년군 창설과 함께 소년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조철호는 이듬해 4월 소파 방정환과 ‘소년운동협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5월1일을 ‘어린이 날’로 제정하고 어린이 보호를 위해 시위와 행사 개최 등 대대적 선전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소년협회운동 창립과 어린이날 제정은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자래(自來)로 조선의 어린이(소년·少年)들은 어른의 밑에 있어 ‘자유’라는 것은 절대로 얻지 못하고 자라났음으로 장년이 되었어도 역시 그 영향을 받아서 모든 일에 장애가 적지 않던 터임으로 이 일에 대하야 여러 가지의 단체가 났으나 전 조선의 통일적 기관이 없어 심히 유감으로 지나오든 바 금번에 이에 대하야 취미를 가지고 있던 몇몇 유지가 지난 18일에 천도교당에 모여 회의한 결과 소년운동협회를 조직하고 동시에 5월1일을「어린이날」로 정하야 당일은 전 조선 각 소년단체에서 오후3시에 선전운동을 일제히 하고 밤에는 강연을 하리라는데 당일에 의결할 것은 아래와 같다더라. 일(一),매년 5월1일을「어린이날」로 정하고 우선 5월1일에 제1회 선전을 하되, 소년문제에 관한 선전지 20만장을 인쇄하야 5월1일 오후3시에 조선 각지에 일제히 배포함. 이(二),5월1일 오후7시반부터 기념소년연예회와 소년문제강연회를 개최하되 연예회는 소년을 위하야, 강연회는 어른을 위하야 개최하기로 함 등의 계획을 정하고 현금 여러 방면으로 진행중이라더라’ (’소년운동협회의 剏起, 조선일보 1923년4월21일)
이어 ‘전 조선에 대선전, 5월1일은 어린이 날이다’(조선일보 1923년4월29일)같은 후속기사가 나가고 소년운동협회 활동을 기대하는 사설까지 실렸다. ‘우리 소년의 구일누습(舊日陋習)을 혁제(革除)하게 하고 우리도 국민의 일분자(一分子)요 사회의 일개인(一個人)이라는 각오을 주입(注入)하는 그 점이 절대로 추허(推許)할 바이라. 그럼으로 아(我)는 이 협회(協會)를 간주(看做)하기를 소년(少年)에게 대하여 무상(無上)한 교육방침(敎育方針)으로 인(認)하노라.’(‘소년운동협회 창립에 대하야’, 조선일보 1923년4월30일)
첫 어린이날 행사는 대대적으로 열렸다. 경성을 비롯, 전국 각지에서 가두 행진을 하고 선전지를 나눠주려 했지만, 경찰이 제지했다.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선전지를 나눠주는 것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6.10 만세운동 참가로 체포
조철호는 1926년 6.10만세운동을 배후에서 지도하다 또다시 교단에서 추방됐다. 북간도로 망명해 간도 용정의 동흥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그는 이곳에서도 독립운동을 쉬지 않아 일제 경찰에 검거됐다.
1930년 8월 귀향한 그는 이듬해 조선소년군 총사령에 다시 추대돼 소년운동을 재정비한다. 항일 전력 때문에 학교로는 쉽게 돌아갈 수없었던 모양이다. 1931년 10월 동아일보 수위로 입사한 그는 발송부장을 거쳐 1939년 10월 퇴사했다. 그는 1937년 파고다공원에서 열린 시국강연회때 조선소년군이 태극마크와 무궁화가 도안된 복장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일제는 조선소년군을 어용단체로 만들려고 했으나 그는 강제해산의 길을 택했다.
1939년부터 보성전문에서 교련을 담당하다가 오십을 갓 넘긴 1941년 3월22일 별세했다. 냉수마찰을 즐기고 절대로 눕는 일조차 없을 만큼 건강했던 그였는데, 입원 9일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나는 일을 다 하지 못했는데…”라며 아쉬워하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고 한다.
◇ 1998년 7월 ‘이달의 문화인물’
일본 육군의 위세가 대단하던 시절, 엘리트 장교로 얼마든지 영화를 누릴 수있었던 그였다. 육군 대장 출신이 조선 총독으로 오던 시절이었다. 그가 ‘문지기’로 일하던 시절, 고급 장교로 위세를 떨치던 동기, 선후배들이 수두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소년운동, 민족운동의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해방의 날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문화관광부는 1998년 7월의 문화인물로 그를 기렸다.(‘한국 보이스카웃 창설자 조철호 선생’ 조선일보 1998년6월27일)
◇조철호의 생애, 부정확한 기록 많아
아쉬운 것은 소년운동, 독립운동에 굵직한 자취를 남긴 관산 조철호의 생애를 다룬 기록과 논문에 기본적 사실관계가 엇갈리는 내용이 많다는 점이다. 일본군 예편과정, 망명 등을 둘러싼 배경은 그렇다 치더라도 육사졸업연도를 틀리게 쓴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네이버’에 제공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철호’ 항목은 그가 1913년 졸업했다고 썼고, ‘네이버’ 두산백과는 1910년 중위로 임관했다고 썼다. 이때문인지 최근까지 졸업연도를 1913년으로 쓴 논문들이 나온다. 문화관광부가 1998년 7월 ‘이달의 문화인물’로 발표할 때도 1913년에 졸업한 것으로 썼으니, 그럴만도 할 것이다.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공예, 디자인문화진흥원이 관리하는 ‘전통문화포털’에는 여전히 잘못된 졸업연도를 싣고 있다. 일본 방위성(우리 국방부) 산하 방위연구소 웹사이트에 따르면, 조철호가 포함된 육사 26기는 1914년 5월(28일) 졸업했다.
◇참고자료
이기동, 비극의 군인들,일조각,2020
이병구, 관산 조철호 선생의 민족교육과 체육활동, 한국체육학회지 제60권제6호, 2021.11
조찬석, 관산 조철호에 관한 연구, 경인교대초등교육연구원,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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