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함께 유럽으로 북상하는 ‘물 전쟁’
지난 3월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서부 되세브르주 시골 마을 생솔린의 들판에서는 회색 연기를 내뿜는 최루탄이 5000번 넘게 터졌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위대 3만명과 헬리콥터, 물대포, 시위진압용 장갑차 등을 동원한 헌병·경찰 3300명이 약 3시간 동안 충돌했다. 경찰과 시위대를 합해 모두 200명 넘게 다치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1명은 한 달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 지난달 26일에서야 깨어났다.
시위의 원인은 물이다. 시위대는 이날 생솔린에 건설 예정인 농업용 관개저수지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모였다. 생태주의자들과 환경단체는 축구장 200개 면적 규모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거대 분지를 조성해 물을 끌어다 쓰는 방식이 지하수 고갈을 앞당기고 물 위기를 촉발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지역 농민은 날로 가뭄이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저수지 건설이 꼭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16개의 저수지에서 저장한 물은 800여개 농가 가운데 저수지 건설을 위한 협동조합에 출자한 230개 농장에 공급될 예정이다. 주로 사료작물인 옥수수를 재배하는 농가이다. 그렇다고 해서 농민들의 입장이 모두 같은 것도 아니다. 대규모 기업농을 위한 지원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농민단체인 소농연합은 저수지 건설에 반대한다.
물 전쟁은 생솔린 지역이 처음은 아니다. 빈번해지고 극단화되는 가뭄에 대응하기 위해 201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관개 시설의 조성과 정비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었다. 하지만 대규모 관개시설이 만들어지는 곳마다 수자원 독점 논란과 시위,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전 등이 벌어지고 있다.
2014년 프랑스 남부 툴루즈의 타른강에 시벵스댐을 건설할 때에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1명이 경찰이 쏜 기절 수류탄에 맞아 사망했다. 프랑스 동부 퓌드폼의 물을 채취하는 생수회사 비텔은 2019년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파이프라인 확장 계획을 중단했다.
올해의 가뭄은 과거의 수준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정부에 따르면 지난 4월 1일 기준 전국 지하수의 75%가 저수위라고 집계됐다. 1년 전 이 수치는 58%였다. 현재 프랑스 본토에 있는 96개 주 중 20개 주에서 물 사용을 제한하고 있으며, 동남부에 있는 3개 주는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대 식품 기업 네슬레의 생수 부문 자회사 네슬레 워터스는 4일 가뭄을 우려해 프랑스 동부에서 일부 광천수 우물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3월 새로운 국가 물관리 계획을 내놓으면서 절수를 강조했지만, 기존의 대규모 관개시설 정비 위주 물 정책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식량과 농업 정책을 뿌리부터 바꿔야 가능한 일이다.
크리스토프 베쉬 프랑스 생태전환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식수 문제가 있는 지자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지원할 수 있는 장관급 협의체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그는 “피레네 조리앙탈의 상황은 올해 겪을 문제를 미리 보여준다”고 말했다. 피레네 조리앙탈과 인접한 스페인의 카탈루냐의 레리다 지방은 지난달 25일 161년 만에 처음으로 건식 관개 수로가 폐쇄되어 5만㏊의 곡물과 과일이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관개시설의 물마저 마르는 기후 앞에서 농업과 물을 둘러싼 고민은 더욱 깊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https://www.khan.co.kr/world/europe-russia/article/202305060600001
페르피냥 | 박은하 유럽 순회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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