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선언에 北 복잡한 속내…복잡한 셈법

CBS노컷뉴스 김학일 기자 2023. 5. 6.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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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북한의 모순적 반응, 민감 대응과 빈껍데기
규탄 속에서도 수위조절로 복잡한 속내 시사
워싱턴선언으로 북한 핵전략에 중대 변수 발생
복잡해진 北 전략적 셈법…어떤 결론 나올까?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 소인수 회담에서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미 워싱턴선언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 복잡한 속내가 읽힌다. 한미 핵 억제력의 강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빈껍데기'라고 폄훼한다. 워싱턴선언을 강력 규탄하고 있지만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수위조절도 하고 있다.

한미 워싱턴선언에 대한 북한의 첫 반응은 김여정의 입장 발표로 나왔다. 김여정이 파악한 워싱턴선언의 핵심은 '한미 확장억제력의 실행력 제고 방안'이다.

김여정은 한미 핵 협의(NCG)그룹의 운영과 핵잠수함 기항 등 미 핵전략자산들의 "정기적이며 지속적인 전개와 빈번한 군사훈련"으로 인해, '지역 군사정치 정세의 불안정한 흐름'이 불가피해졌고, 그 결과 한반도에 '새로운 안전 환경'이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새롭게 조성되는 안전 환경은 불리해진 정세변화이다. 한미 억제력 강화에 따른 힘 관계의 변화에다가, '가장 적대적이고 침략적인 행동의지가 반영된 극악한 대조선적대시 정책의 집약화된 산물'이라는 김여정의 평가에서 나타나는 듯 한미의 강한 의지가 합쳐져 발생한 정세 변화이다.

그러면서도 김여정은 워싱턴선언을 미국으로부터 '배려' 받은 '빈껍데기 선언'이라고 깎아내린다.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워싱턴선언에 따른 안전 환경의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빈껍데기'로 폄하하는 모순적인 반응은 사실 김여정의 입장 발표이후 북한에서 나온 거의 모든 기사에서도 반복되는 것이다. 북한의 이중적 반응은 그만큼 이번 선언에 대한 복잡한 속내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워싱턴선언 이후 이를 규탄하는 집회를 연일 전국 각계각층으로 확산해 열고 있다. 청년들의 복수결의모임을 시작으로 직업총동맹, 여성동맹, 농근맹의 집회를 연달아 개최했다. 국제사회의 반응은 물론 남한 언론, 민간단체 및 정치인 발언까지 소개하며 워싱턴선언에 대한 비난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지난 3일 반미반제 투쟁의 상징적 장소인 신천박물관에서 열린 청년들의 복수결의집회에서는 한미정상을 겨냥한 허수아비 화형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미국의 늙다리 전쟁괴수와 특등하수인인 괴뢰역도의 추악한 몰골들이 재 가루로 화할수록 징벌의 열기는 더 더욱 가열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5일 현재 이 화형식에 대한 사진과 영상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전국 각계각층에서 열고 있는 비난집회의 사진과 영상도 미공개이다. 내부적으로 한미에 대한 적개심을 끌어올려 체제단결을 강화하면서도 수위조절을 통해 외부자극을 가급적 피하려는 의도로 관측된다.

이 같은 북한의 이중적 반응은 물론 아직은 모호한 측면이 있는 한미 핵 협의 그룹(NCG)에도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 정상이 "핵억제에 관해 보다 심화되고 협력적인 정책결정에 관여할 것을 약속"하고, 이를 위해 '핵 및 전략 기획을 토의하고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는 핵 협의 그룹을 신설하기로 했으나, 앞으로 한국의 목소리가 어떻게 어떤 수준으로 반영될지는 지켜봐야한다. 향후 한국과 미국에 들어서는 정부의 성격에 따라 '워싱턴선언'의 위상이 변화될 수도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이 선언이 핵 억제의 '빈껍데기'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북한이 복잡한 속내를 비치는 보다 중요한 이유는 한반도를 둘러싼 힘 관계의 변화, 즉 대북 확장억제력의 실행력 제고에 대한 대응 방안의 모색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 워싱턴선언으로 북한의 핵전략에 중대 변수가 생겼고, 북한의 전략적 셈법이 더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김여정은 "새로운 안전환경에 상응한 보다 결정적인 행동"을 언급하며, 한미를 향해 "더욱 강력한 힘의 실체에 직면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우리는 핵전쟁억제력 제고와 특히는 억제력의 제 2임무에 더욱 완벽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신 한다"는 것이 김여정의 결론이다.

미국 전략핵잠수함. 연합뉴스


이 말은 미국 핵잠수함 한국기항, 한미 핵 협의 그룹(NCG) 등을 통한 핵 억제력 강화에 대응해 자신들의 '힘의 실체'를 현시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방안 마련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적의 공격을 받은 뒤에도 살아남아 2차 핵 공격에 나서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탑재한 핵 잠수함이다. 화성포 계열의 ICBM도 미국에 대한 2차 타격 수단이 되지만 요격 가능성 등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도 지난 2021년 1월 8차 당 대회에서 핵잠수함 개발을 밝힌 바 있다. "새로운 핵 잠수함 설계 연구가 끝나 최종 심사단계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잠수함 개발 소식은 없었다.

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핵잠수함의 한국 기항 등 보다 적극적인 한반도 수역 전개는 북한이 앞으로 핵잠수함 개발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 잠수함을 미국 본토 연안은 물론 아예 한반도 인근 수역에서부터 차단할 것"이라며, "한반도 수역에서 은밀하게 보다 자주 움직이는 미 핵잠수함의 공격력은 북한의 신중함을 유도해 선제타격에 대한 유혹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성윤 연구위원은 군 정찰위성과 ICBM 정각발사, 7차 핵실험 등 향후 예상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핵 억제는 핵무기를 사용하는 주체가 아니라 핵 보복을 당할 불확실성 자체로 인해 작동 한다"며, "북한이 핵 능력 고도화 도발을 강화함으로써 미 본토와 우리에 대한 위협을 동시에 높이면 한미는 자연스럽게 핵 협의 그룹(NCG)을 통해 다양한 핵 보복 옵션을 기획·시연함으로써 북한에 핵 보복 가능성을 강하게 인식 시킬 것이고, 북한이 핵 보복을 염려하는 그 순간부터 억지는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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