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백과사전] '박스컵'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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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이 프로축구 40주년을 맞아 K리그 명예의전당 헌액식을 처음 가졌다.
대상 선수를 1~4세대로 나눠 최순호 전 포항 스틸러스 감독(61),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54),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감독(53), 이동국 대한축구협회 부회장(44) 등에게 첫 영예를 안겼다.
한국 프로축구는 지난 1983년 처음 리그를 꾸렸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1986년 이전까지는 그나마 이들 대회가 축구에 대한 갈증을 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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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이 프로축구 40주년을 맞아 K리그 명예의전당 헌액식을 처음 가졌다. 대상 선수를 1~4세대로 나눠 최순호 전 포항 스틸러스 감독(61),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54),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감독(53), 이동국 대한축구협회 부회장(44) 등에게 첫 영예를 안겼다. 이와 함께 지도자 부문에선 김정남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80), 공헌자 부문에선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을 호명했다.
한국 프로축구는 지난 1983년 처음 리그를 꾸렸다. 첫 리그에 참가한 팀은 프로팀 2팀(할렐루야·유공), 실업팀 3팀(국민은행·포항제철·대우) 등 총 5팀이었다. 지금과 같은 완전 지역연고제가 도입된 것은 그로부터 13년 뒤인 1996년의 일이다. 그러니 그 이전의 한국 축구를 이야기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1970년대 한국 축구를 이야기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대회가 있다. 바로 '박스컵'이다. 많은 분들이 예상하는대로 여기서의 '박'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말한다. 권위주의 시대이니 가능했던 작명법이긴 하지만 이는 축구팬들 사이에서 부르던 통칭이고, 공식적인 대회명은 '박대통령컵 쟁탈 국제축구대회'였다. 지난 1971년 5월 지금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자리에 있던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대회엔 한국을 비롯해 버마(미얀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대만, 베트남, 크메르(캄보디아) 등 8개국이 참가했다.
지금이야 축구하면 당연히 월드컵이나 EPL(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을 논하지만 1960~70년대 만해도 한국 축구는 아시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하고 권위 있던 대회는 말레이시아에서 매년 개최하던 메르데카컵과 태국에서 열리던 킹스컵이었다. 굳이 따지면 박스컵은 이들보다 뒤늦게 창설된 후발주자였던 셈인데, 흔히 이들 3개 대회를 '아시아 3대 축구대회'라 불렀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1986년 이전까지는 그나마 이들 대회가 축구에 대한 갈증을 풀어줬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박스컵은 당연히 대회명에서 '박'자를 뺏다. 그냥 담백하게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1993년 김영삼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는 아예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하지만 한국 축구 수준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축구팬들의 눈높이도 한없이 높아지면서 이 대회는 결국 새 밀레니엄을 맞이하지 못하고 1999년을 끝으로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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