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아내 20년 돌본 이 남자 "이혼하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정지용 2023. 5. 6.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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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 현직 기자 '아내는 서바이버' 출간
정신질환 겪은 아내 20년 돌본 기록 담아 
어린시절 트라우마로 나타난 폭식, 알코올 의존증
죽으려는 시도 아닌 살기 위한 몸부림... 
"나만 힘든 게 아니다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나가타 도요타카 지음ㆍ서라미 옮김ㆍ다다서재 발행ㆍ179쪽ㆍ1만5,000원

여기 중증 정신병에 걸린 아내를 20년간 돌본 남자가 있다. 아사히신문 기자 나가타 도요타카(55). 부부생활은 전쟁 같았다. 아내는 폭식, 해리성 장애, 알코올 의존증을 차례로 겪었고, 자해와 자살 시도도 했다. 탄탄했던 나가타의 커리어는 꼬여 갔다. 집안 살림도 사채를 써야 할 정도의 상황까지 몰렸다.

나가타가 펴낸 '아내는 서바이버'는 신산했던 간병 과정을 기록한 에세이다. 변해 버린 아내에 혼란스러워하고, 미워하고, 어느 순간 이해하다가, 결국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이야기다. 나가타는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폭음을 반복하는 아내에게 크게 화를 내며 고함을 치는 등 따라 해서는 안 되는 내 행동을 있는 그대로 책에 담았다"며 "지금 (나와 같은 행동으로) 고뇌하는 정신질환 환자 가족들이 있다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반면교사로 삼아 주길 바란다"고도 했다.

아내가 낯선 모습을 보인 건 결혼 4년 차 때인 2002년이다. 나가타 33세, 아내는 29세였다. 사회부 기자였던 나가타는 집에 늦게 들어가는 날이 잦았다. 아내의 몸무게가 10㎏가량 줄어든 상황을 뒤늦게 깨달았다. 섭식 장애인 폭식증이었다.

아내는 라면 여러 개를 한꺼번에 끓여 먹고, 패스트푸드점으로 뛰어들어 엄청난 양의 햄버거를 먹어 치웠다. 그러고는 토하기를 반복했다. 무턱대고 화를 내거나 폭력을 썼다. 병원에 가자는 말에 "쇠창살에 나를 가두려고"라고 소리치며 저항했다.

나가타의 삶도 엉클어졌다. 비리를 파헤치는 탐사 보도를 하고 싶었지만, 출퇴근이 일정한 생활문화부로 옮겼다. 아내의 낭비로 살림은 파산 직전이었다. 나가타는 항불안제를 복용했다. 아내에게 모진 말을 하거나 벽에 의자를 던지고 바닥에 물건을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이혼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병원에서 퇴원한 아내가 새해 첫날 떡국을 끓였을 때, 나가타는 동글동글한 떡을 먹으며 '이걸로 일주일은 버티겠구나' 생각했다. 부부로서 책임감도 있었다. "이혼하면 아내는 병사하든, 자살하든 죽을 게 틀림없었다. 내 행동 때문에 한 사람이 죽는다는 공포를 이길 수 없었다."

아내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 성폭력도 있었다. 그 트라우마가 성인이 되어 폭식증, 알코올 의존증으로 나타났다. 아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과식이나 술은 고통을 잊기 위한 진통제였다. 삶을 포기하려는 듯 보였던 극단적 행동들은 오히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나가타는 "의존증에 대해 '의지가 약하니까' '쾌락에 빠졌다' 등 잘못된 인상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질병에 관해 배우고 당사자의 내면에 주목하면 그런 생각은 편견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나가타는 책에서 정신질환자를 폐쇄병동에 가둬 '보이지 않게' 하는 사회 분위기, 미흡한 사회복지 제도도 날카롭게 비판했다. "수많은 정신질환 환자가 의학적으로 입원할 필요가 없는데도 '사회적 입원'을 해 폐쇄병동에 있다."

'아내는 서바이버'의 작가 나가타 도요타카. 그는 "일본에서는 수많은 정신질환 환자가 의학적으로 입원할 필요가 없는데 '사회적 입원'을 해 폐쇄병동에 있다"며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의 강한 편견과 몰이해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의료와 사회복지가 뒷받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인 제공

평범한 도시 중산층이던 나가타는 아내의 병 이후 '사회적 소수자'가 됐다. 세상의 약자들이 기자인 그의 눈에 들어왔다. 빈곤, 생활보호, 다중 채무, 자살예방 등을 취재했고 아사히신문의 빈곤저널리즘 기자로 자리를 잡았다. 2007년과 2009년 빈곤저널리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내도 진지하게 치료를 받으며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아내는 2019년 알코올성 인지저하증(치매) 진단을 받은 게 계기가 돼 술을 끊었습니다. 무언가 자꾸 잊어버리는 등 불편한 점은 있지만 대신 웃음이 많아졌지요." 아내는 "나처럼 고통받는 사람을 줄이고 싶다" 했고, 나가타는 책을 출간했다. 정신질환 환자와 가족이 겪는 어려움과 사회적 편견을 가감 없이 드러낸 책. 나아가 부부관계의 본질까지 고민하게 한다.

한국의 정신질환 환자와 가족을 위한 조언도 남겼다.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연결돼야 한다는 마음을 잊지 않은 게 제게 큰 힘을 주었습니다. 요즘도 의존증 환자 가족 모임(자조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고통을 겪는 분들도 '타인과 연결되는 길'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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