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 만들고 시럽 따르고" 약사도 소아과는 절레절레... 속 타는 부모들
업무량 많지만 수가 낮아 약사들 기피
"진료처럼 조제도 필수의료 인식해야"
경남 창원의 한 아동병원 앞에서 6년간 약국을 운영한 약사 A씨는 올해 초 점포를 내놨다. 처방전마다 손은 많이 가는데 수입은 줄고, 함께 일할 약사를 구하기도 어려워서다. 소아 처방 약은 가루약이나 시럽 소분으로 조제해야 할 때가 많아 품도 배로 들었다. A씨는 5일 “소아가산이 있긴 하지만 시럽병과 라벨지, 지퍼팩 등 부자재 비용까지 감안하면 오히려 적자라 약국 운영을 접기로 했다”고 말했다.
약사들마저... "소아과 처방은 기피 1순위"
의사에 이어 약사들도 소아과 처방을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필수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에도 소아 외래 처방 및 조제와 관련한 지원 대책이 지지부진한 탓이 크다. 진료 보기도 어려운데 약까지 구하기 까다로운, 소아과 의료 접근성이 바닥으로 떨어진 셈이다. 피해는 결국 육아를 담당하는 부모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소아과는 과거 약사들 사이에서 내과, 이비인후과와 함께 문전약국 ‘빅3’로 불렸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요즘 위상은 처참한 수준이다. 한 약국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약국을 개업할 때 소아과는 빼고 알아봐 달라는 약사들 문의가 꽤 있다”고 귀띔했다. 심지어 약사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소아과 인근 개업은 인생 최대 실수”라는 자조까지 나올 정도다.
소아과 약국 인기가 시들해진 원인은 저출산, 낮은 수가 등 의사들의 기피 이유와 궤를 같이한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소아과 처방 건수는 2011년 5,368만여 건에서 2019년 4,977만여 건으로 8%가량 줄었다. 2014년을 기점으로 이비인후과에도 역전됐다. 24개 진료 과목 중 해당 기간 처방 건수가 감소한 곳은 시술 중심인 외과, 흉부외과를 빼면 소아과가 유일하다. 2020년부터는 정형외과 처방 건수에도 밀렸다. 처방 건당 평균 조제료도 소아과 2, 3건을 해야 내과 한 건과 맞먹는다.
약사들은 특히 업무강도에 비해 낮은 조제 수가를 문제 삼는다.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전체 가루약 조제의 64%를 6세 미만 소아가 차지한다. 업무량은 일반 조제 대비 3.35배 많은데, 조제 일수가 길어질수록 더 늘어나는 구조다. 한 40대 약사는 “손톱만 한 알약을 갈아서 20회분으로 나누는 일이 부지기수”라며 “환절기에는 가루약을 물에 타 현탁액으로 제공하는 항생제 처방도 많아 조제에만 최소 10분 이상이 걸린다”고 푸념했다. 만 6세 미만 소아 조제의 경우 소아가산 650원이 적용되지만, 가루약 조제 가산료와 중복 산정이 안 되는 것도 약사들이 소아 처방전을 기피하는 요인이다.
여기에 가루약 조제에 따른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여러 성분의 약을 한꺼번에 갈아 나눠 담는 과정에서 균일하게 분배된다는 보장이 없어 소비자 민원으로 이어질 때가 적지 않다.
"약국 어디 없소"... 조제 지원 병행돼야
애가 타는 건 부모들이다. 가까스로 진료와 처방을 받아도 다시 ‘약국 찾아 삼만리’에 나서야 한다. 경북 경주에서 4살, 6살 아이를 키우는 조민정(38)씨는 “전문 아동병원이 한 군데뿐이라 유행성 바이러스라도 돌면 병원, 약국 들르는 데만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고 토로했다. 소아과 처방 의약품은 주변 약국이 아니면 취급하는 곳이 드물고, 아이들이 먹기 편한 스틱포지로 주지 않는 약사들도 왕왕 있어 선택의 여지도 없다.
정부는 현재 필수의료 정상화를 위해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등 분만ㆍ소아 분야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소아 의료의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려면 처방ㆍ조제 영역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광희 대한약사회 보험이사는 “소아의약품은 저출산 여파로 시장성이 크지 않아 제약사들에만 투자를 강요하긴 어려운 만큼 대안 마련 등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은경 기자 chang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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