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편 갈라야 票 이득” 싸움 부추겨 갈등을 먹고 사는 한국 정치

조선일보 2023. 5. 6.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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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통과한 간호사법에 반대하며 9일째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권지연(왼쪽)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지난 2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제정·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통과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덕훈 기자 뉴스1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간호법 제정을 놓고 보건의료계 내부 갈등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처음엔 간호법 제정을 요구하는 간호사와 반대하는 의사들 갈등이 중심이더니 이제는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등까지 가세해 곳곳에서 갈등의 실핏줄이 터지고 있다. 다른 직역과 충분한 조율 없이 간호사의 업무 범위 등만 떼어내 별도 입법하려고 하니 잠복해있던 보건의료계 갈등이 일거에 수면 위로 드러나며 폭발한 것이다.

정치권이 갈라 치기 입법으로 갈등을 조장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변호사와 회계사·변리사·공인중개사 등과의 업무 영역을 놓고 특정 직역에 유리하게 입법하려다 업종 간 싸움판을 만들었다. 지난해 미용사 출신 의원이 미용 산업을 진흥하는 법안을 발의하자 이용사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한우 농가 이익 대변 법안에 한돈 농가들이 반발하며 ‘한돈 산업 진흥법’을 요구한 사례도 있다.

사회적 갈등이 예상되는 법안일수록 사전에 충분한 논의와 조율 과정이 필요한 것이 상식이다. 특히 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걸린 직역 업무 범위 등에 관한 법 조항은 토씨 하나까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한쪽 편만 들거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절차 없이 덜컥 처리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조정과 중재는커녕 한쪽 편들기를 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이 사태가 직역별 파업 등으로까지 번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볼 수밖에 없다.

갈등을 조율해야 할 정치권이 도리어 갈등을 조장해 이득을 보려 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일상이 되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반일 몰이로 국민을 분열시켰고 ‘강남 대 강북’ ‘부자 대 서민’ ‘임대인과 임차인’이란 대립 구도를 만들었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은 “박정희 정권이 경상도에 집중 투자하고 전라도는 소외시켰다” “5000년 역사에서 백제가 주체가 된 적이 없었다”며 지역 감정을 노골적으로 선동했다. 국민의힘도 ‘여성가족부 폐지’ 등 ‘이대남’을 겨냥한 공약들을 줄줄이 띄우며 ‘이대녀’와 갈라 치기 전술을 썼다.

이번에 문제가 된 보건의료 관련 법은 일자리와 수입 등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직역도 쉽게 물러서기 어려운 입장이라는 것을 정치권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무리한 입법을 시도하는 것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편 갈라야 표 이득’을 먼저 생각한 결과일 것이다. 나라 전체에 대한 고민 없이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으로만 접근하면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 간호법 사태만큼 잘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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