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단지 돌려주는 일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조종엽 기자 2023. 5. 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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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가 말기로 치닫던 1986년의 남아공.

농장주 가족의 일원인 아모르는 사춘기 소녀다.

어느 날 아모르의 엄마 레이첼이 병을 앓다가 죽는다.

아프리카너(남아프리카에 사는 네덜란드계 백인)인 아모르의 고모와 고모부는 유대교로 개종한 레이첼의 죽음을 오히려 반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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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데이먼 갤것 지음·이소영 옮김/512쪽·1만8000원·문학사상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가 말기로 치닫던 1986년의 남아공. 농장주 가족의 일원인 아모르는 사춘기 소녀다. 어느 날 아모르의 엄마 레이첼이 병을 앓다가 죽는다. 아프리카너(남아프리카에 사는 네덜란드계 백인)인 아모르의 고모와 고모부는 유대교로 개종한 레이첼의 죽음을 오히려 반기는 것 같다. 엄마의 영구(靈柩)를 마주하기 싫었던 아모르는 집 밖 멀리서 엄마의 방을 지켜본다. 엄마의 방에서 일하고 있는 흑인 하녀 살로메를 보고 살아있는 엄마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땅과 함께 사들였던’ 살로메는 엄마의 병시중을 정성스레 도맡았다. 생전 엄마는 살로메에게 보상을 해 주자며 살로메 가족이 얹혀사는 작고 낡은 판잣집을 주라고 남편 마니에게 부탁했다. 아모르는 아빠에게 ‘약속을 지켜달라’고 하지만 마니는 제대로 듣지 못한다.

군인인 오빠 안톤은 시위를 벌이던 여성을 총으로 쏴 죽이고 마음이 동요하던 와중에 어머니 레이첼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집으로 향하던 그는 시위대의 돌에 머리를 맞아 다친다. 그리고 자신이 어머니를 총으로 쏴 죽였다는 착란에 시달린다.

레이첼의 시신을 염하는 동안 다른 한쪽 방에서는 유족들이 말싸움을 벌인다. 마니는 아내가 유대교로 개종한 것이 다른 유대인 가족들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심지어 아내는 마음속으로까지는 진정한 유대인이 아니었고, 단지 남편을 괴롭히려고 개종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농장은 오빠가 물려받지만 가족의 죽음과 장례식은 뒤에도 이어진다.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지켜지는 걸까.

등장인물은 모두 다른 꿈을 꾼다. 죄책감과 혐오, 지워지지 않는 상처, 비밀스러운 욕망을 가지고 각자의 세계를 산다. 몰이해와 차별, 억압으로 점철된 세계에 구원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포스트아파르트헤이트 세대 작가로 주목받은 저자는 이 소설로 2021년 영국 부커상을 받았다. 역사와 개인적 도덕, 실존을 매끄럽게 한데 버무리는 전개와 문체가 매력적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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