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오월 속에서
연둣빛 이파리를 가득 단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립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헐벗었던 창밖의 저 나무들은 언제 저렇게 잎을 틔웠을까요? 새들이 지저귑니다. 하늘은 파랗습니다. 구름은 하얗습니다. 벌써 아카시아가 피기 시작했네요. 곧 향긋한 꽃 내음이 온 산을 뒤덮을 겁니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아직 세상 때에 물들지 않은 말간 얼굴의 젊은 계절을 이렇게 읊은 시인은 피천득입니다. 비취처럼 빛나는 오월을 사랑한 그는 노래를 이렇게 이어갑니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오월을 가장 반기는 건 어린이날 선물 받을 기대에 가득 찬 아이들 같지만, 오월의 소중함을 알고 푸르른 매 순간을 즐기게 되는 나이는 중년 이후가 아닌가 합니다. 오월은 생명의 계절, 아직 성장할 시간이 남았다는 징후, 늙음과 죽음을 잠시나마 잊게 되는 환상의 시간이니까요. 그렇지만 시간은 흘러갑니다. 청춘이 영원하지 않듯, 오월도 찰나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많은 이가 피천득의 이 시에서 다음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나 봅니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주말 내내 비가 온다고 합니다. 이 비 그치면 푸르름이 깊어지겠지요. 시인의 말처럼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습니다. 곽아람 Books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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