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지만 늘 서툰 나… 아이에게 배우며 비로소 ‘어른’이 된다
어른 이후의 어른
모야 사너 지음|서제인 옮김|엘리|1만8000원
펀 홈
앨린슨 백델 글 그림 | 이현 옮김 | 움직씨 | 1만5000원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코린 로브라 비탈리 글|마리옹 뒤발 그림|그림책공작소|1만4000원
서른 살이 되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마흔이 훌쩍 지나도록, 아이 넷을 키우면서도 여전히 내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이들 눈에 부모는 완벽한 어른처럼 보이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른으로서 내가 부끄러웠던 순간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을 살피는 아이들의 다정함 앞에서였다. 나는 부모님의 건강과 안전을 염려만 했지 마음을 헤아리는 데는 서툴렀다. 약을 챙겨드리며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는데, 아이들은 그렇지가 않다. “할아버지 우리 매봉산에서 또 만나요. 운동하고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까요?” 그러니 몸만 어른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다.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 어린 시절의 마음을 간직한 어른으로 나이 들어가기 위해 애쓸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가족 내에서 서로 간 성장과 변화를 어떻게 지지할 것인가 고민하던 중 저널리스트이자 심리상담사 모야 사너의 책 ‘어른 이후의 어른’을 만났다. 취직, 독립, 결혼, 육아, 주택 소유와 같은 ‘어른 됨’의 강박에서 벗어나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인생의 여정 속에서 겪어야 할 고충을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많은 이가 비슷한 고민으로 힘겨워하지만, 서로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다. 아이는 자라면서 좌절과 상실을 겪을 것이다. 다정하고 친절한 마음을 잠시 잃어버리기도 할 테다. 그렇지만 방황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가까운 사람을 잃고서야 애도의 과정이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픽 노블 ‘펀 홈’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딸의 탐색을 보여준다. 갑작스러운 사망 사고에서 미심쩍은 구석을 발견한 저자는 과거를 반추하며 가족 간 갈등과 비밀을 집요하게 파헤쳐 나간다. 독특하고 이례적인 가정사,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마주하기 위한 저자의 용기와 개성적인 그림에서 기존 틀에서 벗어나 삶을 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공부 잘하는 아이, 성공한 어른에 대한 집착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갉아먹는다. 우리 집 꼬마 아이의 꿈은 경비원이다. 개미, 지네, 쥐며느리 등을 관찰한다며 날마다 아파트 화단의 흙을 판다. 이 아이를 나무라지 않고 지지해 준 분이 경비원 아저씨다. 날마다 인사를 나누는 아이와 아저씨를 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의 운동화가 더럽혀지고 옷이 엉망진창이 되어도 참을 만하다. “어이 우리 꼬마 과학자.” 아저씨가 부르면 아이는 내 손을 놓고 부리나케 달려가 신나게 수다를 쏟아 낸다. 아이는 아저씨처럼 모자를 쓰고 랜턴을 든 채 야간 경비원 놀이를 즐긴다. 사칙연산보다 땅파기를 잘하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안 할 수 없지만 나는 완벽한 아이보다 즐거운 아이가 되길 바란다.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은 완벽함에 대한 환상을 깨주는 유쾌한 동화책이다. 어느 날 앙통의 가지런한 수박밭에서 수박 한 통이 사라진다. 앙통은 빈자리를 우두커니 바라보며 고통스러워한다. 완벽함이 무너진 자리에서 망상에 시달린다. 그런데 깊은 밤, 길고양이들이 수박밭에서 한바탕 즐겁게 뛰놀고 간다. 폭탄이라도 맞은 듯 송두리째 망가진 수박밭을 보고서야 앙통은 사라진 수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난장판 속에서 앙통은 그제야 싱그러운 수박밭을 본다. 수박을 나란히 줄 세우는 일의 무용함을 깨달은 것이다. 완벽함에 대한 추구는 어른도 아이도 병들게 한다. 과도한 질서와 억압도 마찬가지다.
좌충우돌할 때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한두 명만 옆에 있어도 우리 삶은 정말 괜찮아진다. “엄마 괜찮아”, 딸아이들의 긍정과 낙관이 나를 가르치는 날들이 많다. 성장을 자본주의 사회에 적합한 인물이 되는 일로 알거나, 희생을 통해서만 사랑을 배운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할 것 같다. 자기답게 살기 위해 계속 저항하는 것이 삶이라면 우린 살아가면서 계속 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쩔 것인가. 덜 아프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아프기 위해 이 5월, 책을 한 권쯤 들어보는 것이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나와 가족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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