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치학자 “韓 여성이 쓴 책 두 권 덕에 우울증 극복”
“작년 10~12월 우울증 탓에 극단적인 생각마저 할 정도로 힘들었던 나를 구한 건, 한국 여성이 쓴 두 권의 책이었습니다.”
일본 정치학자인 아사바 유키(淺羽祐樹·47·리쓰메이칸대 동아시아센터 부소장) 도시샤대 글로벌지역문화학부 교수에게 ‘향후 한일 관계의 전망’을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백세희 저)와 ‘당신이 옳다’(정혜신 저)라는 두 권의 책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난달 26일 교토에 사는 아사바 교수는 화상 통화로 “원래 태어날 때 ‘부모 뽑기’를 잘못한 데다가 직장 상사 갑질로 인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남들이 보기엔 일본 TV·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 정치학자지만, 권위주의의 일본 사회에서 마음의 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 뽑기’란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뜻으로 최근 한국 젊은이들이 쓰는 말이다.
아사바 교수는 “변호사의 전문적 조언도, 아내의 세심한 돌봄도 도움이 안 됐을 때, 정혜신 의사가 30년 임상 경험을 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안정을 되찾았다”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불안 장애를 앓고 있는 저자가 우울증 상담을 받은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으로, 많이 공감과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사바 교수는 “몇 번이나 읽으면서 나에게도 교수·남편 등 사회적 역할에 대한 강박관념과 긴장이 컸던 걸 알았고 ‘이 책을 읽기 위해 24년간 한국말을 배웠구나’라고 느꼈을 정도”라고 말했다. 리쓰메이칸대를 졸업한 아사바 교수는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일본의 40대 남성도 한국처럼 여전히 체면을 중시하고, 고민거리를 혼자서만 떠안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우리 세대는 외계인 같은 상사에게 엄청 당하면서 직장 생활을 했는데, 지금 2030세대에게는 젊었을 때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하면 안 되는 낀 세대”라고 했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을 담았지만 보편성이 있는 두 권의 책은 회복의 큰 계기였다”며 “작년에 하루 2알이던 처방이 1알로 줄었다”고 했다.
아사바 교수는 “일본에 한국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정치학자로서가 아니라, 벌거벗은 한 사람으로서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를 도와줘요’라고 할 때, 그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게 일본에는 한국, 한국에는 일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그는 “현대를 사는 개인으로서 느끼는 고민이나 위태로움, 외로움은 한국 사람에게만 특이한 일이 아니다”라며 “한일 간 경제 격차가 사라지고, 과거와 같은 비대칭적 관계가 대칭적으로 바뀌면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공통의 고민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아사바 교수는 “일본인이 스웨덴 사람이 쓴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나’라고 동일시하겠는가”라며 “한일은 서로가 서로에게 고민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지침서 같은 관계가 되었다”고 했다.
아사바 교수는 “일본 여성들은 일본과 대등해진 한국을 온전히 인정하고 친근감을 느끼지만, 아직 일본의 남성, 그중에서도 50대 이상 중·장년층과 20대 남성에선 거부감이나 무관심이 여전하다”며 “일본의 거품 경제를 경험한 50대 이상은 한국에 추월당하는 위화감과 위기감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이대녀, 이대남과 같은 문제가 일본 20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며 “일본의 이대녀에게 한국은 따라 하고 싶은 멋진 존재지만 일본 이대남들은 한국에 무관심한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그는 “한국과 일본은 정말 비슷한 고민과 슬픔을 나눠 갖는 이웃 나라로, 앞으로 많은 문제를 함께 해결할 서로의 거울”이라며 “일본 중·장년 남성들도 조만간 나와 같이 한국이란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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