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02] 디폴트 세팅에 대하여
SG증권발 3연속 하한가 충격에 폭락주의보 기사가 뜨던 날, 친구에게 “미수금 발생. 익영업일 반대매매 및 연체이자 등 불이익이 없도록 계좌 확인 및 조치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처음에는 ‘피싱’ 문자로 치부했지만 마음이 찜찜했던 친구는 직접 증권사에 가서 정황을 확인했다. 문제는 그녀의 HTS(홈 트레이딩 시스템) 디폴트 세팅(default setting·초기 설정)이었다. 증권 계좌에 들어있는 현금보다 훨씬 많은 주식을 미수금으로 살 수 있게 기본값이 설정된 것이다. 이렇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본인이 가진 현금보다 훨씬 많은 주식을 외상으로 거래했다.
디폴트 세팅은 미리 지정된 옵션이라 사용자가 설정을 ‘일부러’ 바꾸지 않으면 자동으로 적용된다. 디폴트는 주식 계좌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많은 곳에 스며 있다. 처음 스마트폰을 사면 앱 알림이 ‘울림’으로 설정돼 있는 게 대표적이다. 디폴트를 내 의지로 ‘재설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소음 같은 정보에 자주 노출되고, 개인 정보를 너무 많이 노출하게 되며, 생각보다 더 많은 돈을 쓰게 된다. 전자제품의 각종 ‘알림 설정’은 ‘오염된 시간’이라 부르는 ‘집중력 저하’의 대표적인 원인이다.
인생을 가장 효과적으로 바꾸는 방법은 사표나 긴 여행, 내면 상담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사소한 것을 자신의 의지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 바로 내 삶의 숨어 있는 디폴트를 점검해 보자.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미수금 문자를 받은 내 친구의 경우처럼 디폴트 세팅은 고객인 나의 이익이 아닌 사업자인 타인의 이익을 위해 개발되거나 설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장 SNS와 스마트폰에서 ‘on’으로 되어 있는 수많은 알림과 정보 공개를 ‘off’로 바꾸는 것만으로 복잡한 삶이 한결 가벼워질 수 있다. 배의 키를 1도나 2도만 바꿔도 최종 목적지는 처음과 엄청나게 달라진다. 단언컨대 디폴트 모드로 살면 ‘나의 생각대로’가 아니라 ‘타인의 생각대로’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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