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달콤한 힐링의 시대는 끝났다
독일·스웨덴의 수모를 보라… 공짜 안보·미사여구 시대 끝나
개인도 국가도 안전벨트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세이노의 가르침’이 10주 연속 1위다. 파죽지세. 교보뿐만 아니다. 인터넷서점 예스24도, 알라딘도 그렇다. 전자책으로 보면 무료인데도 돈 주고 산다. 세이노는 필명. Say No다. 공손한 예스가 아니라, 단호한 거절. 내용도 독설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속삭이지 않는다. 속이면 분노하라고 고함친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몸값 오른다고 쓴소리하고, 주 5일제 좋아하지 말라고 목청 높인다. 노는 날 많이 생겼다고 좋아하지 마라, 주 5일제 이후 돈과 시간 펑펑 쓰다보니 중산층에서 하층으로 내려가는 사람들만 늘어났다고 호통이다.
독설가의 인기가 처음은 아니다. ‘즉문즉답’의 법륜스님도 독한 소리로 지금의 법륜이 됐고, 강연으로 이름난 김미경도 ‘언니의 독설’이란 책으로 화제를 모았다. 사람 좋아 보이는 백종원도 원칙 안 지키는 식당 사장님들 깰 때는 무섭다. 하지만 최근의 독설 인기는 뭔가 징후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고 싶지만 떡복이는 먹고 싶어’라거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유의 나른한 책들을 읽었던 대중이 뭔가 대오각성이라도 한 것일까.
개인뿐만 아니다. 국가와 세계도 장밋빛 전망과 미사여구의 계절은 마침표를 찍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의 신세를 보라. 유럽을 넘어 자유 세계 전체의 리더로 존경을 받았던 메르켈은 이제 수모의 대명사가 됐다. 미국은 물론이고 영국과 프랑스도 구박하고, 심지어 폴란드도 윽박지른다. 달콤한 러시아산 가스가 영원할 거라고 믿고 흥청망청 취한 결과다. 숙취가 끝난 뒤 남은 것은 부끄러움. 독일의 리더십은 자력이 아니라, 러시아산 가스와 미국의 공짜 국방우산에 기댄 허상이었다는 깨달음이다. 한심한 처지의 스웨덴은 또 어떤가. 독재정권에 쓴소리하던 ‘중립’과 ‘비동맹’의 상징은 제발 나토 가입을 윤허해 달라고 애원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깜짝 놀라 비동맹 200년의 자부를 버리고 가입을 신청했지만, 비민주 국가라고 쓴소리 들었던 당사자 튀르키예와 헝가리가 딴청 피우며 동의를 늦추고 있다.
본격적으로 이 주제를 말하려면 별도의 지면이 필요하겠지만, 2차 대전 종전 이후 패전국과 신생국의 오늘을 이끌었던 무임승차의 시대는 이제 유효 기간이 다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더 이상 공짜 우산을 제공하지 않으며, 중국은 더 이상 우리를 값싼 노동력의 공장과 주방으로 보지 말라 선언했다. 사우디는 이스라엘만큼 증오한다던 이란과 포옹했고, 브라질과 러시아는 중국과 거래할 때 위안화를 쓰기 시작했다. 달러가 절대지존이던 시절이 끝났다는 의미다. 아프리카와 인도를 제외하면 선진국 거의 모든 나라에서 출산이 급감, 인구 쇼크를 겪고 있다. 노인은 늘고 젊은이는 줄고, 연금 곳간은 비어간다. 술과 장미의 나날은 끝나고, 곳곳에 계산서다.
달콤한 힐링만으로는 세계는커녕 나 자신도 구할 수 없는 시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정확히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법이다. 세계화는 끝났고, 덕담의 시절도 갔다. ‘세이노의 가르침’ 돌풍을 보며 예민한 촉수를 지닌 대중을 생각한다. 기회는 모두에게 제공되지만, 그 보상은 당연히 노력 여하에 따라 차등해서 돌아가는 법. 지금 아이들에게 먼저 가르쳐야 하는 건 자존감이 아니라, 뭔가 필요할 때 제대로 머리를 숙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안전벨트 꽉 잡아라. 제대로 된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만, 말뿐인 미사여구는 그렇지 않다. 국가건 개인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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