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가 김수자, 파리서 새 작품 공개
하늘에서 영롱한 무지갯빛이 쏟아진다. 고개를 들어 보니 천장의 유리 돔이 마치 크리스털처럼 빛나고 있다. 신비한 느낌마저 주는 광선의 격자 속에서 현대인의 소비욕과 과시의 감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던 상업 시설은 일순간 형형색색의 빛이 춤추는 예술의 공간으로 변신한다.
명상적 설치미술로 유명한 현대미술가 김수자(66)씨가 파리를 대표하는 백화점이자, 유럽 최대 규모의 백화점인 갤러리 라파예트 본점 옥상에 새 작품을 선보였다. ‘호흡(To Breathe)’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여 온 연작 미술의 최신작으로, 1912년 지어진 이중 돔의 바깥쪽에 특수 회절 격자 필름을 붙여 만들었다. 이 필름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마치 프리즘처럼 여러 색으로 나눠 펼쳐 준다. 관객은 외부와 내부 돔 사이의 원형 테라스를 걸으면서 빛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시시각각 다양한 색채로 변하는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이 작품은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설치됐던 ‘호흡: 보따리’와도 맞닿아 있다. 파빌리온의 외부 창에 반투명 회절 격자 필름을 붙여 한국관 전체를 화려한 ‘빛의 궁전’으로 바꿔 놓았던 작품이다. 김 작가는 이번에 작품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 아닌, 19세기 말 아르 누보(art nouveau) 형식의 백화점 건물을 대상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다. 김 작가는 “‘호흡’은 보이지 않는 순간, 또 전환의 순간까지 스펙트럼(spectrum)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작업”이라며 “햇빛이 필름을 투과해 무지갯빛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기다리는 ‘들숨의 순간’이 ‘빛의 향연’이란 ‘날숨의 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호흡’이 전시된 갤러리 라파예트의 옥상 테라스는 이번에 처음 대중에 개방됐다. 갤러리 라파예트는 “보통 백화점 안에 작품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시각·음향적 소음이 심해 대안을 물색하다 이 공간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본래 이 백화점의 유리 돔은 프랑스의 유리 예술가 자크 그뤼버가 만든 스테인드 글라스로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때 훼손되면서 이후 투명한 유리 돔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백화점 측은 “이번 작품은 이전 돔의 초창기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지난달 14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6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이미 많은 파리 시민과 관광객이 이 작품을 찾고 있다.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6시,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토요일 오전 9시, 일요일 오전 10시 두 차례 각각 1시간 30분간 가이드 투어도 제공되며, 입장료는 15유로(약 2만2000원)다. 김 작가는 조만간 파리 지하철역 안에도 새 설치미술 작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파리 남서쪽 외곽 세브르의 국립 도자기 박물관, 독일 베를린 훔볼트 포럼에서 개인전 개최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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