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어버이날에 쓰는 사모곡(思母曲)
다시 어버이날을 맞습니다. 1956년부터 5월 8일이 어머니날로 지정되었으나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바뀌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에 아버지, 어머니 차별이 있어서 안 된다는 취지에서였지만 이런 일에 꼭 형평성을 따져야 하는지, 조금은 좀스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머니날이었던 시절 나머지 날은 모두 아버지날이라고 웃으며 넘겼습니다. 또 어머니날이라 하여 어머니만을 생각하는 자식도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곳에 신(神)이 존재할 수 없기에 신은 대신 어머니를 만들어 보냈다”는 유대 금언처럼 어머니는 세상 관념으로 생각할 존재가 아닙니다.
오래전 헤어진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자식 사랑이야 세상 여느 어머니나 마찬가지겠지만 어머니는 저에게 위대한 스승이었습니다. 생활에서 언뜻언뜻 보여준 처신이나 말씀이 그러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어릴 적 마루에서 놀고 있노라니 거지가 구걸하러 대문간을 들어섭니다. 저는 어머니가 계시는 안쪽을 향하여 “어머니, 거지 왔어요”라고 소리쳤습니다. 어머니는 쌀 한 움큼을 그릇에 담아 거지에게 건네시고, 거지가 돌아가자 저에게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은 다 손님이다. 이제부터 ‘거지’라는 말을 쓰지 말고 ‘손님 오셨다’라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 집에는 시골 고향에서 손님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때로는 번잡스러워 불평이라도 하면 “우리가 살 만하니 손님도 찾아오는 것이다. 잘살지 못하면 오라고 해도 오지 않는다. 복으로 알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손님이 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도 찾아오지 않는다”라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속담을 들었을 때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이지만 어머니의 그런 말씀은 제 마음에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느 책이나 강의에서 이보다 더 강렬한 인간존중 교육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제 생활에 영향을 주었고 특히 법관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선 법정에서 피고인을 인격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피고인에게 화내지 않았습니다. 어린 피고인이 아닌 한 존댓말을 썼습니다. 나중에는 판결 선고 방식까지 바꾸었습니다. 판결을 선고할 때, 경어를 쓰며 점잖게 이유 등을 설명하다가 마지막 결론인 주문을 말할 때 통상의 예에 따라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라는 방식으로 낭독하면 어쩐지 흐름이 고압적인 쪽으로 바뀌어 버린 것 같아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판결문에는 주문으로 “피고인에 대한 형을 징역 3년으로 정한다”로 바꾸어 쓰고, 법정에서의 낭독은 “피고인에 대한 형을 징역 3년으로 정합니다”로 하였습니다. ‘처한다’라는 형법 규정에 충실한 표현이지만 너무 권위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씀 중 하나가 “웬만하면 양보하고, 손해 보고 살아라”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말씀을 가끔 떠올리며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젊은 판사 시절 같이 근무하던 판사가 중간에 퇴직하는 바람에 그 재판부의 재판이 중단되었습니다. 원장님께서 판사 몇 사람을 차례로 불러 판사가 보충될 때까지 그 사건을 맡아 처리해주기를 부탁하였습니다. 자기 사건 재판만도 부담이 되는데 남의 사건까지 맡아 처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른바 손해를 보는 일이었습니다. 모두 난색을 표했습니다. 순서가 제게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원장님의 부탁을 받아들였습니다. 어머니 말씀 따라 손해 보는 셈치고서. 고마움을 느낀 원장님은 윗분 등 많은 판사를 만날 때마다 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덩달아 저는 훌륭한 판사로 과대평가되었습니다. 결국은 손해가 아니라 크게 남는 장사(?)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참 멋모르고 세상을 살았다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어머니에게 잘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알게 모르게 어머니를 서운하게 해드린 일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그 생각이 절실해지니 참 멋모르고 살았다고 할 수밖에요. 그래도 어머니는 서운한 생각을 안 하셨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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