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미국은 왜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나

기자 2023. 5. 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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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한자로 아름다울 ‘미(美)’를 쓴다. 아름다운 나라라는 뜻이다. 다른 나라도 그럴까? 일본은 쌀 ‘미(米)’자를 쓴다. 우리나라도 쌀 미자로 미국을 표기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름다울 미(美), 미국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는 왜 미국에 아름답다는 의미를 덧붙였을까. 1910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종묘사직은 종말을 맞았다. 망국은 엄청난 충격이었기에 사람들은 조선이 망한 이유를 찾아야 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때는 사회진화론에 근거를 둔 제국주의가 한창이던 시기였기에 자연스럽게 조선이 망한 것은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조선은 왜 힘을 갖지 못했나? “조선은 유교 나라였습니다.” 조선이 망한 것은 유교 때문이라는 답이 나왔다. 그러면 어떻게 힘을 기를 수 있을까?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유교를 대신할 대안으로 대두된 사상이 기독교와 공산주의다. 당시 한국인들에게 기독교는 단지 종교가 아니었다. 나라를 지탱하던 유교를 대체할 사상이자 개인들의 정신세계에 안정을 줄 질서, 그 자체였다. 더구나 부강한 서양 제국들은 대부분 기독교 국가였고, 따라서 ‘기독교=부국강병’이란 도식이 성립됐다.

공산주의도 마찬가지다. 세계는 19세기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초기 자본주의의 역기능에 몸살을 앓고 있었고, 그 해결책의 하나로 제국주의가 시도되었으나 제국주의의 폐해 또한 심각해지던 상황이었다. 똑같이 생산해서 똑같이 나누자는 공산주의는 새 시대를 이끌 사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러시아와 소비에트 연방, 중공의 위세는 그러한 생각을 굳히게 만들었다. 공산주의가 소련과 중공으로 대표되었다면 기독교라는 새 질서를 대표하는 나라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국제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강대국으로 프로테스탄트(개신교)의 나라였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한국인들은 미국을 통해 기독교(개신교)를 접해왔다. 구한말 한국에 왔던 많은 선교사는 거의 미국인이었고, 이들은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와 병원 등을 세워 한국의 근대화에도 많은 이바지를 한 바 있다.

분단과 6·25, 냉전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는 두 사상의 축을 기독교 쪽으로 기울게 했다. 공산주의를 내세운 북한이 한반도의 공산화를 목표로 전쟁을 일으켰고, 거의 공산화될 뻔했던 남한은 기독교를 대표하는 나라 미국이 참전하면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진영에 참여하면서, 또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에 의해 공산주의는 거의 사장되고 말았다. 6·25와 이후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지원은 한국인들 입장에서 미국이 가진 이미지들이 한층 증폭되는 계기가 됐다. 재조지은(再造之恩)이라 했던, 임진왜란 때의 명나라가 연상될 정도였다. 쌀 미(米)자가 아름다울 미(美)가 될 만도 하다. 그런데 미국에 대한 좋은 감정 저변에는 기독교가 있다는 사실은 잊기 쉽다.

미국과 기독교는 한국의 민초들에 의해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미국과 기독교가 결합된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미국이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일정 부분 선교사들의 역할이기도 한데, 선교사들은 조선사람들을 기독교화하기 위해 쉬운 전략을 사용했다. 미국의 발달한 문명과 풍요를 보여주고 ‘기독교(개신교)를 믿으면 미국처럼 잘살게 된다’고 한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였다. 유교와 유교적 질서를 버리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그야말로 새 질서로 다가왔다. 기독교 세상에는 양반도 노비도 없고 남녀차별도 없으며 배움과 풍요가 가득한 것처럼 보였다. 미국이 하는 일은 다 옳고 미국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우리도 잘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새 질서를 받아들였다. 세계에 유례없는 남한 기독교 성장의 원동력은 여기에 있다. 한국인들은 잘살기 위해 기독교를 열심히 믿는 것만큼 미국을 따라가려 했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 유학을 다녀왔다는 것, 미국에 연줄이 있다는 것은 부귀와 권세를 보장받는 일이었다. 그렇게 미국은 한국인의 마음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여기까지가 대략 1980년대까지의 일이다. 지금은 2023년이다. 지난 40여년 동안 세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우리나라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으며 미국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누군가는 그런 일들이 관심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몰라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불행히도 그런 일들을 잘 알아야만 하는 사람이 정작 그런 일들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것이 한 사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큰 불행이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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