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어머니를 위한 기도
오월은 ‘가정의달’이다. 그만큼 가족 행사도 많고, 그간 신세 졌던 분들께 인사해야 할 경우도 많다. 그래도 기분 좋은 분주함이다. 그래서인지 오월에는 서로의 인연 따라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회상에 잠기기도 한다. 그 대상이 부모님이든, 스승님이든, 친구이든, 연인이든 살아가면서 의지한 모두에게 감사를 표시하게 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마음이 가는 곳은 부모님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께서 곁에 계시면 계신 대로 감사하고, 세상을 떠나셨으면 그리움이 더하게 된다. 산승에게도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
부모님의 은혜를 상세히 소개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란 대승불교의 경전이 있다. 학계에서는 위경(僞經) 논란이 있긴 하지만,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면서, 부모님에 대한 은혜를 되새기게 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중에는 어머니의 은혜를 그림과 함께 열 가지로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는 어머니께서 배 속의 아이를 지키고 보호해주신 은혜, 두 번째는 어머니께서 출산에 이르러 고통을 감내한 은혜, 세 번째는 세상에 나온 아이를 보며 모든 걱정 근심을 잊은 은혜, 네 번째는 쓴 것은 삼키고 단것은 뱉어 먹이는 은혜, 다섯 번째는 진자리 마른자리를 가려서 눕혀주신 은혜, 여섯 번째는 젖을 먹이며 키워주신 은혜, 일곱 번째는 더러운 것을 씻어 깨끗이 해주신 은혜, 여덟 번째는 먼 길을 떠난 자식을 잊지 않고 걱정해주시는 은혜, 아홉 번째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악업 짓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신 은혜, 열 번째는 마지막까지 애처롭고 사랑스럽게 여겨주신 은혜이다.
천도재에 동참했을 때 이따금 <부모은중경>을 합송하는 경우가 있다. 무심코 읽다가도 특히 여덟 번째, “먼 길을 떠난 자식을 잊지 않고 걱정해주시는 어머니의 은혜” 대목에 오면,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지고, 눈가에 눈물이 맺히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마(魔)의 구간’ 같은 대목이다. 그 부분 이후부터는 합송을 마칠 때까지 남몰래 장삼 자락으로 눈물 훔치기에 바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어머니는 수십년 전 집을 떠난 막내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리라.
출가한다고 부모님께 큰절하고 집을 나서던 날, 뿌연 안개 낀 새벽 아침, 어머니는 내가 길모퉁이로 사라질 때까지 멀리 서서 내내 손을 흔들어댔다. 집을 나선 아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나는 출가를 했고 스님이 되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청년이 장년을 지나 이제 삭발했어도 희끗희끗한 귀밑머리가 드러난다. 청년의 기백으로 깨달음을 염원하던 그때의 마음은 희미해져가고 부끄럽게도 머리를 밀고 회색 옷을 걸쳐 입은 모습에 스스로 익숙해지고 있다. 옛 어른 스님들로부터 출가해서 깨달음을 얻지 못해 도를 이루지 못하면 양가(兩家)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배웠다. 하나는 속가에 계신 부모를 모시지 못한 죄이고, 다른 하나는 승가에 일원이 돼 깨달음도 없이 시주물을 축내기만 한 죄라는 경책이다. 시간은 그렇게 덧없이 지나가고, 새삼 어머니가 그리운 날,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세속에서는 어버이날이 되면,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선물도 해드리거나 용돈도 챙겨드린다는데, 출가한 자식은 집 떠나와서,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기도뿐이다. 예불 때마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노모를 위해 하루 세번 부처님 앞에서 엎드려 절을 하며 축원과 기도를 올린다. 어쩌다 속가 누님으로부터 노모께서는 막내아들을 그리워하면서 하염없이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고 들었다. 아들과 생이별하고 많이 슬퍼하셨지만, 아들을 부처님 제자로 보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신다고 전해 들었다.
내 모든 것의 시작이자 만법(萬法)의 근원인 어머니, 윤회를 믿는 불교에서는 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전생 부모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아니 사랑하려고 한다. 부처님 가르침대로라면 모두가 전생 나의 어머니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속에서 살았다면 현생의 부모님만을 봉양하면서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고 여겼겠지만, 인연의 도리를 배우는 출가 수행자로서 어버이날을 맞아 전생과 현생 그리고 앞으로 올 내생의 어머니를 위해 기도한다. 좋은 인연을 맺고 깨달음의 길로 갈 수 있도록 해준 세상 모든 어머니의 은혜에 대한 감사 기도이다. “어머니, 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머니, 부디 건강하세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문기의 추석 선물’ ‘딸에게 보낸 동영상’···이재명 ‘선거법 위반’ 판결문
- 조국 “민주주의 논쟁에 허위 있을 수도···정치생명 끊을 일인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민심의 법정서 이재명은 무죄”···민주당 연석회의 열고 비상행동 나서
- 40대부터 매일 160분 걷는 데 투자하면···수명은 얼마나 늘어날까?
- 드라마인가, 공연인가…안방의 눈과 귀 사로잡은 ‘정년이’
- 중학생 시절 축구부 후배 다치게 했다가···성인 돼 형사처벌
- 은반 위 울려퍼진 섬뜩한 “무궁화꽃이~”···‘오징어게임’ 피겨 연기로 그랑프리 쇼트 2위
- ‘신의 인플루언서’ MZ세대 최초의 성인···유해 일부 한국에 기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