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신발 만들어 억대 연봉? 요즘 뜨는 ‘장제사’를 아시나요

최인준 기자 2023. 5. 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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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힘들고 문턱 높은 전문직
2030세대 몰리는 이유는

누군가의 신발을 만드는 데 억대 연봉을 받는 직업이 있다. 신발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환불을 요구하는 진상 손님도 없다. 명품 브랜드 구두를 만드는 전문 디자이너나 수제화 장인? 아니다. 말[馬]의 발굽에 붙이는 쇠 편자를 맞춤 제작하는 ‘장제사(裝蹄師)’다.

한국마사회 강성규 장제사가 말발굽 편자를 교체하고 있다. 불에 달군 편자를 굽에 대자 연기가 났다. 강씨는 “말이 놀라면 뒷발차기를 할 수 있어 다리를 몸에 감싼 채 작업한다”고 했다. /최인준 기자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말의 발굽을 멋지게 장식하는 직업이다. 사람 신발과 다른 게 있다면 한 번에 신발을 4개 만들어야 하고, 부드러운 가죽이 아니라 단단한 철을 망치로 두들겨 신발(편자)을 제작한다는 점. 편자를 발굽에 달다가 말의 뒷발차기에 갈비뼈가 으스러지거나 뇌진탕까지 일으킬 수 있어 한때 나이 든 사람만 하는 기피 직종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장제사가 유망 직종으로 떠오르면서 젊은 2030세대가 몰리고 있다. 승마 인구 증가로 말 시장이 커지면서 고액 연봉을 받는 장제사가 나오기 시작했고, 정년이 없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

실제 지난해 만 17세의 고등학생이 최연소 장제사 국가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는 등 해마다 장제사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 2019년 국내 1호 여성 장제사가 나왔는데 합격 당시 스무 살이었다. 한국 마사회는 지난 5일까지 올해 장제사 국가 자격시험 응시자를 모집했고, 6월 필기시험을 거쳐 10월에 실기 테스트를 할 예정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장제사 시험에 대한 젊은 층의 문의가 크게 늘었다”고 했다.

장제사는 정말 억대 연봉이 가능할까.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현역 장제사는 80명 정도다. 경주마나 승마용 말의 숫자에 비해 말발굽을 관리할 장제사 인력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에, 일단 자격증을 따면 고소득이 보장되는 편이다. 특히 10년 이상 경력을 갖춘 베테랑은 마사회 등에 소속돼 일하다 독립해 개인 업체를 차리는데 평균 연봉이 8000만원을 상회한다. 장제사 1명이 한 달에 관리하는 말은 100~200마리. 1마리당 장제 비용은 15만원 안팎이다. 일정 경력을 쌓을 경우 빠르면 30대 후반, 늦어도 40대 초반에는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수도권 민간 목장에서 근무하는 한 장제사는 “경주마의 경우 신발 성능에 따라 기록이 달라지는 육상 선수처럼 좋은 편자를 다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실력 좋은 장제사는 마주(馬主)들이 백지수표를 주고 데려간다”고 했다.

높은 연봉만큼이나 진입 문턱도 높다. 한국마사회는 말 산업 성장에 맞춰 양질의 전문 말 산업 인력 양성을 위해 2012년부터 매년 장제사 국가 자격증 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말 조련사, 재활 승마 지도사 등 매년 40명 안팎 합격자가 나오는 다른 분야와 달리 장제사 합격자는 한 자릿수다. 자격증 취득에 최소 2년 정도 걸린다.

자격증을 따도 3년 이상 수련 기간을 거쳐야 한다. 장제 기술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은 없는 실정. 말 특성화고인 한국경마축산고에 진학하거나 마사과가 있는 대학에 들어가면 장제를 배울 수 있지만 현장에서 바로 근무할 수 있는 수준의 전문 기술을 익히려면 프로 장제사 밑에 들어가 도제식 교육을 받아야 한다.

업무 강도도 높은 편이다. 온도가 1000도 가까이 오르는 코크스(석탄) 화로 앞에 서서 막대 형태의 철을 달군 뒤 무거운 망치로 수십 번 두드려 U자 모양의 편자를 만드는 건 기본. 철제 줄로 발굽을 보기 좋게 다듬고, 발 건강을 챙기는 역할까지 장제사의 몫이다. 말에 의한 부상 위험과 만만치 않은 업무 강도에 장제사 교육 과정에서 포기하는 비율도 절반이 넘는다.

한국마사회 소속 2년 차 장제사인 강성규(29)씨는 “말 편자는 말의 걸음걸이, 성격에 맞춰 세밀하게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3D(입체) 프린터로도 찍어낼 수 없다”며 “수의사도 말발굽에 병이 생길 때에는 장제사에게 치료를 맡길 만큼 전문성을 인정받는 직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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