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싸우다와 겨루다
부산민주공원의 모든 공간은 한자어와 순우리말 이름 두 가지로 부른다. 원형의 야외극장을 순우리말로 ‘바깥놀이마당’이라 이름 지었다. 최근 또 다른 바깥놀이마당이 생겼다. 바로 ‘부산민주공원 풍물패 바깥놀이마당’이다.
필자의 당숙은 상쇠였다. 초등학생 때 당숙이 후배들의 연습을 보러갈 것인데 같이 가지 않겠냐 하여 따라간 적이 있다. 학교 음악실에서 봤던 북이며 장구가 곳곳에 있었고 넓은 연습실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꽹과리를 치며 사람들을 이끄는 당숙의 모습이 어린 눈에 멋있어 보였다. 그때부터였다. 나도 언젠가는 꽹과리를 배워보고 싶다고, 나도 상쇠가 되어보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꽹과리는 피아노처럼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학예발표회 때 소고도 치고 중학교 음악 실기시험으로 단소도 불어보고 고등학교 체육대회 때 응원 구호에 맞춰 북도 쳐봤지만 꽹과리를 배울 기회는 없었다. 그렇게 ‘꽹과리 치기’는 달성하기 어려운 버킷리스트가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쩌면 내 꿈을 이룰지도 모른다는 섬광이 번쩍. 교육문화팀장이 대학생 때 풍물패를 했으며 연희패 소속으로 활동도 한 상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틈만 나면 교육문화팀장에게 꽹과리를 배우고 싶다는 굳센 의지를 피력했다. ‘나도 풍물을 배워보고 싶다’ 하는 사람이 한둘 생기기 시작했고, 지난해 가을 풍물패를 결성하게 되었다. 드디어 꽹과리를 내 손으로 쳐보는 날이 온 것이다!
풍물패는 꽹과리, 북, 장구 등 악기에 따라 나뉘기도 하고 상쇠, 부쇠, 수장구, 끝장구 등 순서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구분이 있고 제1 바이올린, 제2 바이올린 등으로 구분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케스트라는 연주회 무대 위에서 절대 틀리면 안 되지만 풍물은 틀려도 괜찮다는 것이다(물론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풍물패에서 틀리는 것은 틀리는 것이 아니다. 일부러 혼자 아니면 모두가 틀리게 연주하며 변주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다르면 다른 대로 함께하는 것이 풍물이다. 누가 더 세게 치는지, 이렇게 빠르게 치면 따라올 수 있는지 서로를 자극하기도 한다. 같은 다툼이라도 싸우는 것은 서로를 이기기 위해 무력을 쓰는 것이지만 겨루는 것은 서로 버티어 가는 데 더 중점을 둔다. 그렇게 우리는 내가 더 잘났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우리 더 신나게 해보자고 겨룬다. 여러 악기가 겨루는 동안 전체 판은 더 즐거운 분위기가 된다.
TV를 켜도 신문을 펼쳐도 온통 내가 옳은지 네가 옳은지 한번 싸워보자는 얘기뿐이다. ‘내가 무슨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아느냐’ 하면 ‘나는 너의 어떤 약점을 알고 있는지 아느냐’ 하는 협박이 오간다. 그렇게 싸워서 승패가 결정되면 도대체 무엇이 남을까 싶다.
얼마 전 부산민주공원 소장 사료와 기증 사료를 보존하고 전시할 부속건물 착공맞이 한마당에 풍물패 바깥놀이마당이 공식 데뷔를 했다. 길놀이부터 안전한 공사를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다. 상쇠가 부쇠인 필자를 자극해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장구와 북이 주거니 받거니 치다가 연습 때보다 더 세게 치기도 했다. 한바탕 겨루고서 남은 것은 ‘같이(가치)’다.
김예선 부산민주공원 홍보 담당 청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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