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교류 활발했던 가야...왜 역사에서 잊혀졌을까?

박종혁 2023. 5. 6.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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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주에 YTN이 삼국시대에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고대 가야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 전해드렸는데요.

이번 주에는 가야 문명이 왜 우리 역사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는지를 알아봤습니다.

가야 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준비한 두 번째 기획 보도, 박종혁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바다를 건넌 가야인'이라는 특별 전시회가 열린 국립 김해박물관.

전시장 입구의 배와 사람 모양의 토기가 눈에 띱니다.

사람 모양 토기는 일본 지바현 야마쿠라 1호분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웃옷을 포개는 방식과 장신구 등이 당시 왜인의 복식보다는 한반도 가야인의 복식에 가깝습니다.

배 모양 토기는 가야 시대 것으로 가야인의 배 건조 기술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야인이 배를 타고 일본 열도로 건너가 교류했음을 알게 해주는 사료입니다.

가야 고분군에서는 중국 남조 시대의 항아리, 북방 유목민의 쇠 솥, 로마제국의 유리 잔, 일본의 청동 장신구 등도 출토되었습니다.

가야인이 활발한 국제 교류를 했음을 보여줍니다.

[노은별 / 김해 중앙여중 3학년 : 가야가 정말 왜랑 교류했다는 걸 물건을 통해서 아니까 뭔가 가슴이 뭉클하고, 가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이번 특별전에는 일본에서 출토된 문화재 250여 점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농기구와 도량형, 장신구, 갑옷과 화살촉 등 철기 등입니다.

가야인이 건너가 당시 일본인 사회에 영향을 끼친 벼농사와 문자, 토기와 철기 문화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정근 / 국립 김해박물관장 : 가야의 사람뿐만 아니라 기술과 문화가 일본 열도, 당시 왜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이 유물을 통해서 직접 볼 수가 있습니다.]

가야는 1세기부터 6세기까지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한반도의 고대 문명을 형성했던 핵심 세력입니다.

배를 띄워 동아시아에서 국제 교류를 활발히 했던, 연맹이라는 독특한 정치 체계를 취한 나라입니다.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추구한 고대 문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왜, 가야는 그동안 우리 역사에서 조명받지 못했을까.

우선 가야인은 스스로 역사서를 남기지 않아, 역사적 자료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간략하게 소개된 정도이고, 조선 후기에 와서야 동국지리지에 한반도 남부의 삼한은 백제와 신라 그리고 가야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역사가들이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만들어 왜인이 가야인을 지배했다고 왜곡했습니다.

[하승철 /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단 조사연구실장 : (가야는 국제 교류를 통해) 많은 문화를 아주 폭넓게 수용했습니다. 이런 문화를 자체적으로 아주 새롭게 재생산해서 가야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가야사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움직임은 지난 1980년대 가야 고분군의 발굴 조사를 통해 시작됐습니다.

경남과 경북 그리고 전북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계기로 잊혀진 고대 문명 가야가 재조명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YTN 박종혁입니다.

YTN 박종혁 (johnpark@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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