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이 유니콘 출현 막고 있는 셈” [낡은 규제에 발목 잡힌 K스타트업]

신수민 2023. 5. 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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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정유신 교수는 2일 “국내 유니콘 상황은 우려할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1.2%. 지난해 말 글로벌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중 국내 기업 차지 비중이다. 이 중 글로벌 유니콘에서 부상하고 있는 산업군인 핀테크(FinTech·금융기술) 부문에서 그 실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글로벌 유니콘 1204개 중 21%(252개)가 핀테크로, 국내 기업은 1곳(비바리퍼블리카) 뿐이다. 핀테크 유니콘 순위는 3년 만에 18위→26위(2021년)로 하락했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이 유니콘의 출현을 막고 있다”며 “신산업으로 기존 산업이 파괴되고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흑백논리에서 벗어나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기술경영 전반을 연구해왔을 뿐 아니라, 핀테크지원센터장과 금융위원회 규제혁신회의 위원으로 활동하며 국내 유니콘 생태계를 속속들이 들여다 본 전문가다.

Q : 국내 유니콘 상황, 심각한가.
A : “4차산업 시대 경쟁은 더 치열하고 빠르다. 숙명적으로 산업 생태계 자체가 신산업과 신생기업을 양산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거다. 4차산업의 특징은 ‘융합’인데, 산업·섹터·기술·비즈니스모델 간 경계가 없어진다는 얘기다. 그 중 핀테크가 부상하는 건 기업은 수익창출이 목적이기에 금융은 필수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핀테크 유니콘 상황이 국내 유니콘 실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Q : 걸림돌이 되고 있는 건.
A : “산업 간, 정부부처 간 융합이 잘 되지 않고 있다. 핀테크 스타트업 중 인슈어테크(보험+기술) 같은 의료금융서비스 업체가 의료서비스업과 금융업을 관할하는 부처 간 융합이 잘 안 돼 난항을 겪고 있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핀테크 분류 기준이 엄격한 것도 융합을 저해하는 이유다. ‘배달의 민족’이나 ‘직방’과 같은 플랫폼 기업도 정보기술(IT) 요소와 금융이 융합된 것으로 핀테크로 분류가 가능한데, 우리는 엄격한 금융법 안에 IT를 갖고 들어와야 핀테크로 구분 짓는다. 해외 유니콘 통계에서 국내 성적이 저조한 건 이같이 경계간 구분이 너무 심해서 일 수 있다. 신산업을 먼저 제도·법제화하려는 식의 접근도 유니콘의 출범을 막고 있다.”
정 교수는 “근본적으로 신산업을 ‘파괴적 혁신’이라고 인지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사전예방식 대처가 많았고, 이것이 유니콘 성장을 막는 요인이 됐다”고 덧붙였다. 인공지능(AI) 산업과 핀테크를 포함한 플랫폼 기업의 데이터 문제가 대표적 예다. 현 단계에선 번들링(맞춤형 서비스 묶음상품)을 모아놓은 플랫폼에서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다음 혁신 단계는 타 산업과 융합한 서비스를 AI가 선별해 제공하는 거다. 하지만 AI가 기존 산업과 일자리를 파괴할 것, 데이터 제공이 개인정보를 침해할 것이란 우려로 당장 데이터 확보부터 가로막힌 상황이라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지난 4년간 신산업 육성차원에서 정부는 핵심 규제를 일정기간 완화해주는 규제 샌드박스를 시행했지만, 그 다음 단계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정 교수는 “사실 금융 쪽만 보면 규제 샌드박스 쪽에선 할 만큼 다 한 것 같은데, 데이터 문제는 여전하다”며 “3년 전 핀테크지원센터장 당시 금융데이터 기반의 혁신서비스인 테스트베드 사업을 했는데 아직도 진전이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Q : 유니콘이 성장루트로 기업공개(IPO)를 택하던데.
A : “지금까지 핀테크 유니콘만 해도 상장한 경우가 18개 정도다. 상장을 안 하고도 덩치를 키울 수 있는데 그러기 어려우니 상장을 택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유니콘 성장 생태계를 바꿔야 하는 문제다. 외국은 인수합병(M&A)과 IPO 비율이 8:2인데, 국내는 반대로 1:9 수준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M&A가 안 되는 건 자금회수가 어려울 거 같기 때문이다. 창업을 해서 벤처캐피탈(VC)이 유니콘에 투자하기까지 5~7년, 이후 코스닥에 상장할 때까지 10~15년 걸리면 자금 회수까지 평균 20년은 더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투자할까. 특히 지금처럼 기술 변화가 빠를 땐 자금을 빨리 회수하고 재투자를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국내는 정부 주도 모태펀드라든지 투자를 해줘야 성장이 쫓아가는 식이 많은데, 시장 매커니즘에서 작동하지 못 하고 있다는 얘기와 같다. 게다가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으로 인한 피해와 같은 전례가 있다 보니 M&A에 대한 적대적 시각이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있다.”

Q : 그럼 어떤 수익모델이 필요한가.
A : “기업 가치가 커지려면 산업 간 확장 또는 글로벌 확장이 필요하다. 산업 간 확장이라면 국내 산업이 제조업 중심인 것을 역으로 이용해, 제조업과 금융을 융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 섹터 내 포션을 넓히는 게 쉽지 않아 해외 진출이 지금으로선 더 적합할 수 있다. 국내의 아세안(ASEAN) 수출 비중이 10%가 넘기 때문에 타깃 지역을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로 정해볼 수 있다. 해당 국가엔 제조업 인프라도 갖춰져 있어 금융 유니콘 진출엔 더 좋다. 또 하나의 수출창구가 되는 셈이다. 우선 핀테크 허브를 만드는 것부터 해야 한다. 인바운드 아웃바운드 글로벌리제이션을 허브로 연결해 투자, 성장, 유니콘화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단 양국 간 상호 크레디트(신용)을 쌓는 게 필요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정부 간 양해각서(MOU)를 통해 신뢰의 틀을 구축하고, 양국의 관련 업체 간 지분투자를 하거나, P2P 투자를 통해 인터넷뱅크를 만들 수 있다. 자금 마련안도 중요한데, 국내 자체 유니콘 펀드를 만들어야 한다. 모태펀드는 민간이 들어올 수 없는 문제가 있고, 양국 간의 공동출자펀드는 외국과 샅바 싸움을 할 가능성이 커 대안이 될 수 없다.”
더는 이전과 같은 공식으로 유니콘 경쟁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유니콘의 잠재가치 규모는 더 커지고 그 속도는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CB인사이트 조사를 보면,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1680만 달러(약 209억원)로 전년 대비 32% 감소했지만, 투자 라운드 비중을 뜯어보면 초기투자가 66%로 2018년(63%) 이후로 가장 높았다. 그만큼 신산업의 잠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 교수는 “국내 유니콘에서 다수 비중을 차지하는 플랫폼 시장은 디지털을 통해 시·공간 제약이 없는 것이 특징으로, 순식간에 플랫폼을 통해 모든 국가의 소비자가 잠재고객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플랫폼 자체 가치보다 몇 십 배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같은 유니콘 생태계는 국가 경쟁력에서 우려할만한 수준”이라며 “파괴적 혁신이 아닌 융합혁신에 초점을 두고 신산업이 양산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고, 인식 변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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